1987년 4·13 호헌조치에서부터 6·29 대국민 항복선언에 이르기까지 전국민적인 분노가 불타오르던 시기, 당시 기득권 세력들은 뭘하고 있었을까.

전두환의 4·13 호헌 발표가 있던 그날 유일한 지역신문이었던 < 경남신문>의 1면은 '현행헌법으로 내년 정부 이양' '고뇌에 찬 역사적 결단' 등 기사로 도배됐고, 사회면 머리기사도 '안보·안정 다지는 불가피한 조치' 였다. 그 후 6월항쟁에 이르기까지의 보도도 정권옹호 일색이었다.

항쟁 불타오르는데 꽃씨 뿌리기 행사?

15일자 사회면은 '개헌논의 빙자 불법행동 엄단, 김 법무 지시 전국 공안검사 비상근무체제 돌입, 중범자엔 법정최고형 구형'이란 기사가 나왔는데, 그 옆에는 '봄맞이 대청소'라는 제목으로 사진이 실려 있다. 비상한 시국에 비해 참으로 한가롭게 여겨지는 풍경이었다.

17일 사회면에 보도된 '꽃씨 뿌리기 시범행사'도 그랬다. 당시 경남도지사였던 조익래씨를 비롯한 도단위 기관장과 도청·창원시청 직원 550여명이 창원시청과 중앙로터리변에서 백일홍과 맨드라미·봉선화 등 꽃씨를 뿌리고 잡초를 뽑았다는 기사였다.

1987년 6월 10일 경남 마산 어린교 오거리(현 경남도민일보 앞)를 가득 메운 시위 군중.


22일에는 '급진좌경 의식화 오염방지 주력'이라는 무시무시한 기사 옆에 <경남신문> 박정명 사장이 진해 이충무공호국정신선양회(회장 이상인)로부터 진해군항제 행사에 대한 협조와 성원에 감사하는 표시로 감사패를 받았다는 기사와 사진이 실려 있다.

반상회 열어 호헌조치 정당화 안간힘

27일에는 전국적으로 일제히 반상회가 열렸는데, '우리마을 반상회'라는 명패와 '4·13담화 배경·의미 설명'이라는 제목으로 이날 도내에서 열린 반상회의 내용들을 소상히 소개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모든 시장·군수와 간부들은 물론 경남도지사와 부지사, 실·국·과장들까지 총출동, 4·13호헌조치가 나라 안정을 위한 최선의 결단이었다고 주민들에게 강변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당시 정권이 전국의 행정력을 총동원, 국민적인 항쟁을 저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음을 알 수 있다. 이날 조익래 도지사는 창원시 내동사무소에서 열린 반상회에 참석했는데, "4·13 특별담화의 배경을 설명하고 있는 조익래 지사"라는 설명과 함께 사진도 실려 있다.

또한 이날 반상회에서는 "28일 하오 7시를 기해 전국에서 일제히 실시되는 '쥐잡기운동에 다함께 참여하자'는 내용이 공지사항으로 전달됐다"고 전하고 있어 쓴웃음을 짓게 한다.
 
5월 1일에는 5일간의 일정으로 마산시민의 날 축제가 개막됐고, 법의 날을 맞아 마산시근로청소년복지회관 강당에서 도지사와 마산지법원장·마산지검장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준법정신 함양에 앞장서온 7명에게 표창을 수여했다.

총장들, 교수 시국선언 탄압 혈안

5월들어 민주화와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국민적 항거가 더욱 격렬해지는데, 7일 오후 8시에는 가톨릭 마산교구 소속 신부와 수녀·신자 등 1000여명이 시국관련 특별미사를 갖고 한국은행 마산지점까지 침묵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다음날인 8일에는 경남대 교수 35명이 교수식당에 모여 호헌조치 철회를 요구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한데 이어 9일에는 울산대 교수 35명, 11일 경상대 교수 38명, 30일 창원대 교수 13명이 연달아 시국선언을 발표한다.


이런 교수들의 집단행동에 대해 전국 4년제 대학 총·학장들의 모임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9일 "최근 일부 대학 교직자들의 시국에 관한 집단성명 행위는 교육자로서의 본래적 직분에 비추어 바람직하지 못할 뿐 아니라 학원의 면학기풍을 해칠 우려가 있다"면서 "엄격하고 단호한 조치로 학원과 교권을 수호해갈 것을 다짐한다"고 밝혔다.

양산이 낳은 자랑스런(?) 서울대 총장 박봉식씨도 이에 앞서 담화문을 내고 "우리대학의 일부 교수들이 현금의 정치문제에 대한 견해를 집단적으로 표명한 것은 유감"이라면서 "그것이 비록 순수한 동기에서 출발했다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정국의 불안을 조장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문인들 권력 아부성 결의문 채택

역사의 전환기마다 권력에 빌붙기 바빴던 문인들도 이런 아부의 기회를 놓칠리 없었다. 경남문인협회 회장이자 <경남신문> 이사였던 이광석씨가 기명칼럼을 통해 전두환 정권을 옹호하는 데 앞장섰고, 그가 속한 한국문인협회(이사장 김동리·소설가)도 9일 오전 대구시 수성구 뉴영남호텔에서 가진 제22회 문학심포지엄에서 문인들의 자세를 밝히는 3개항의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날 심포지엄에 참석한 150여명의 문인들은 "민족중흥의 계기인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오늘날 사회일각에서 사회혼란을 야기시키고 있는 비국민적 행동에 대해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전제, "문인의 경우 그것이 전체 문인 가운데 극소수라고 하지만 문학과 자유에 관한 그들의 양식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처럼 독재정권을 감싸고 국민의 민주열기에 찬물을 끼얹는데 앞장섰던 문인이란 자들은 세월이 흘러 세상이 바뀌자 다시 앞다퉈 '민주'라는 이름을 붙인 백일장 등에 심사위원을 맡는 등 전형적인 기회주의자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

가든파티에다 룸살롱 폭탄주 파티까지

87년 3~6월 마산의 지도층 인사들은 어디에서 뭘하고 있었을까.

당시 마산시장은 박종택씨였는데, 그는 마산지역 유지들과 함께 3월부터 미국과 캐나다 등지의 자매결연 도시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동행했던 유지들은 최위승 당시 마산상의 회장, 이성근 마산시정자문위원장, 배대균 바르게살기운동마산지부장, 추한식 시민버스 사장, 이광주 전 마산상의 회장, 최종렬 전 경남은행 전무, 이상기 전 칠서공단 이사장 등이었다.

89년 마산시정자문위원들 모습. 87년 6월항쟁 당시의 유지들이나 2007년 현재의 유지들이나 거의 변함이 없는 얼굴들이다. /사진=박종택 회고록


이들은 또한 5·18광주항쟁 7주년을 맞아 경남도내 대학가에 최루탄 가스가 자욱하던 5월 19·20일 미군에서 인연을 맺었던 노스플로리다대학교 총장 일행을 맞아 호텔과 마산시장 관사에서 가든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박종택 당시 마산시장 회고록에 실려 있는 호텔 리셉션과 가든파티 사진을 보면, 박재규 경남대 총장과 이성근 자문위원장, 최위승 회장 등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마산 창동의 한 룸살롱까지 외국대학교 총장 일행을 데리고 가 폭탄주 파티를 벌이기도 했다.

다음은 당시 룸살롱에서의 상황에 대한 박종택씨의 회고.

"처음에는 술이라면 절대 사양하지 않는 이성근 시정자문위원장, 김동규 대유통상 부사장, 김만열 한국철강 전무, 배대균 바르게살기 마산지회장 등 우리끼리만 (폭탄주를) 한 잔씩 했다. 두번째 폭탄주가 돌림잔으로 돌아갈 때 누군가가 총장, 부총장에게도 한 잔씩 권했다. 폭탄주의 내력을 통역을 통해서 설명했더니 총장, 부총장도 흔쾌히 한 잔 마시고는 분위기에 젖어 또 한 잔, 또 한 잔 하고는 밴드소리에 맞추어 춤도 추고 노래도 불러 서로가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뜻깊은 창동의 밤을 보냈다."

항쟁이 한창 고조되고 있던 87년 5월 20일, 마산지역유지들이 시장 관사에서 외국인들과 함께 가든파티를 열었다. /사진=박종택 회고록


이처럼 시민과 학생, 사제들이 목숨을 걸고 투쟁하고 있던 바로 그 시간, 고위공직자와 어용 문인, 지역 유지들은 권력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펜을 휘갈기고 민중을 협박하며, 반상회를 통해 주민을 회유하는 와중에도 가든파티에다 룸살롱 폭탄주 파티를 즐기는 여유를 잃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20년 전 그들은 지금도 여전히 지역사회의 기득권 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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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기록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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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사니.. 2009.06.10 16: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금하고 상황은 똑같네...

  3. 꿈나누미 2009.06.10 16: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숨이...
    투표 잘 합시다.
    20년 동안 투표를 잘 못해왔다는 반증.
    씁쓸하군요.

  4. 최창곤 2009.06.10 17: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막아내지 못하면 우리는 20년 후에도 지금과 같습니다.

  5. 구냥 2009.06.10 17: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때나 지금이나 왜 이리 같은것들이 많을까요

  6. 김군 2009.06.10 17: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 현대사에 민중의 시위만 있었지 혁명이 없어서 그런거 같습니다.

    민중이 들썩하면 조금 바뀌다가 다시 돌아오고 그게 반복되고

    결국 같은 놈이 완장 바꿔차는 격 밖에 되지 않잖아요. 혁명이 있고 그 혁명세력은

    반혁명을 숙청해야 하는게 건겅한 역사를 만드는 필수 조건이 아닌가 합니다.

    숙청이라고 해서 꼭 다 죽여야 한다는게 아니라 사회적 낙인 정도는 있어야 하는데..


    쩝. 그래서 지금도 똑 같지요. 국민들이 들썩하는 것 같긴 한데 별로 그들은 겁내지 않습니다.

    어짜피 혁명이 아니기 때문에. 시간 지나면 또 잠잠해 지기 때문에.



    에휴..

    • 강새봄 2009.06.10 21:15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그게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숙청이니 뭐니로 사회를 한바탕 뒤집어 엎어버리기엔 너무나 사회가 복잡해졌군요...

      지금보다 훨씬 사회가 단순했던 18세기에 일어난 혁명은 끊없는 숙청을 반복하다가 결국에는 나폴레옹 황제라는 반동적 결과를 낳고 말았습니다.

      물론 그 때의 시민혁명이 세계 역사의 흐름을 바꿔 놓은 건 분명하지만 그렇게 해서야만 사회가 변한다고 할 정도면 우리 사회도 이미 끝장이라고 할 수 있겠죠...

      지금은 운동을 통해 조금씩 바뀌어 가야 하는 시대라고 봅니다. 그래서 90년대부터 수많은 시민단체들이 들어서지 않았습니까?

      다만 문제는 그런 운동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다가 이렇게 상황이 악화되고 나서야 비로소 민주주의를 지키려 하는 우리들이겠지요...

      같은 놈이 완장차더라도 그 중 열 놈이 바뀌고, 또 다음 선거에서 10놈이 더 바뀌고... 그러다 보면 100명이고 200명이고 있더라도 사회가 점점 더 나아져 가겠지요...

      물론 요즘 이명박 정부는 그걸 한방에 뒤엎을만한 막강한 막장 파워를 보여주고 있지만;;; 그렇기에 국민의 이성과 감시가 더욱 더 필요한 요즘입니다...

  7. 부끄러운 현실 2009.06.10 17: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는 반복 되는군요

  8. eoemfl 2009.06.10 17: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것들이 한나라당 전신인 민주정의당 수구골통 세력으로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고 그때도 국민들은 적이고 지금도 국민을 적으로 생각하고 탄압하는 친일파,군사독재세력들이 왜 대한민국의 기득권과 통치세력으로 있는지 국민들은 반성해야 할것이다

  9. 00 2009.06.10 18: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때나 지금이나 자신들에 반하면 모두 좌경용공빨갱이 취급하는건
    똑같네..
    어떻게 20년전으로 되돌아가지 정말 답답한 익사이팅코리아..

  10. 그때 나 고3이었다. 2009.06.10 18: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청에서 그리 멀지않은 우리 학교는 고3인 나로서도 잊지 못한 기억이 나네요. 최류탄냄새로 수업을 코와 입을 막고 수업을 받고 선생님들도 기침을 하시며 수업을 진행하셨죠. 수업을 마치고 교문을 나설때 쯤 줄지어 뛰어가는 대학생들.. 시민들... 골목길로 사라지고... 그 뒤를 당시 백골단이라 부르던 청자켓을 입은 전경들이 쫒아가고 두둘겨 패고, 잡혀가고... 집으로 가기도 무서워... 학교안에서.. 그 비참한 상황이 끝나기만 기다렸습니다. 저녁늦게 집에가려고 학교교문을 나설 때 몇번의 검문을 받고 가방을 뒤지고... 고딩이라 말해도 막무가네.. 뒤지고 욕하고.. 그땐 그런 현실이 두려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배부르던 부자들은 지금도 부자고 힘이 세고, 그들의 자식들은 더 부자가 되고, 세금내기가 억울하다고 종부세 부당청구 소송을 내기도 하더이다. 그냥 어영부영 살아가는 내 자신이 부끄러울 뿐이죠.

  11. 체리 2009.06.10 18: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때나 지금이나 권력에 영혼을 판 넘들이
    나라 위하는 척은 엄청했네요.
    에효~ ㅉㅉㅉ

  12. ^^ 2009.06.10 18: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좌파세력들의 난동이라고 했지요.

  13. hermein 2009.06.10 19: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막을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내년 지방선거에서 결판이 나겠죠...
    이를위해 인간 노무현에 대한 재고찰과 더불어 이를 영화화해서 선거 2달전에 상영한다면 좋을것 같습니다. 여기에 관심있는 영화감독이 있을지 의문은 드네요....

  14. mundison 2009.06.10 19: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저 때 중학교 2학년이었는데... 당시 마산 공설운동장에서 대통령배 국제 축구대회가 있었어요.
    마산 시내 중학교 2학년들이 죄다 관중으로 동원 됐었죠.
    앞 경기가 끝나고 한국과 이집트 경기가 막 시작 되자...
    밖에서 펑펑 거리면서 하늘에는 최루탄이 터지더군요. 이집트 골키퍼는 최루가스에 쓰러지고...
    마치 마산 운동장은 마치 영화를 방불케하는...
    운동장을 뛰쳐나가는 인파들로 난리도 아니었구요. 당시 저기 어린교 근처 마산교육청 옆에 있던
    친구네집에 피신해 있다가 저녁이나 되어서야 버스를 타고 집에 간 기억이 있습니다.
    버스도 원래 노선으로 안가고 삥 돌아가더라는...
    당시에 밤만 되면 우리 재워놓고 아버지랑 어머니는 랩을 감고 나가셨었는데...
    흐.. 그랬던 분들이 요즘 이명박을 옹호하는 걸 보면... 쩝...
    이게 다 김영사미 때문인가요?

  15. 강새봄 2009.06.10 21: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다음 뉴스 종합란 메인을 보니 '6.10 기념대회, 긴장고조' 뭐 대충 이런 제목의 기사 바로 밑에 '사랑에 빠진 벌새는 비행기보다 빠르다'라는 쌩뚱맞은 기사가 메인으로 올라 왔더군요... 둘 다 연합뉴스의 기사였습니다.

    마치 지금 이 포스팅에 올라와 있는 신문의 상황과 비슷한 것 같아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16. 지금상황은 2009.06.10 21: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국민들이 많이 깨어서 인터넷으로 어떤 정보든 알아내는세상이니..
    기득권층은 어떻게든 현상황을 유지시키고싶지만
    세계가 그렇게 돌아가지않고있죠. 복지 우선정책으로 부자들에게 세금엄청때리는구조이니
    기득권층은 어떻게든 현상황을 유지시키려 할것같습니다.

  17. 마산청년 2009.06.10 22: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린시절... 육호광장..창동지역에서 왜그렇게 많이 최루탄 냄새가 많이 나는지 이해를 못했다.

    육호광장옆에는 제비산(이라 불리는 지금 상남교회자리), 용마산 두개의 작은 산이 있는데.. 거기서

    수많은 사람들이 시위를 하며 걷는 것을 보았다. 정확히 기억을 할수는 없지만 7살~8살..정도였다.

    30을 바라보며.. 6.10항쟁의 의미를 20년이 넘은 후에 알수 있었고... 노무현 대통령을 통해 한국의 민주화의 소중함과 가치를 더욱 깊이 느꼈다.

    오늘 이기사를 보면서 마산시민의 한사람으로 부끄럽고.. 또한 그들을 권력에서 내려오게 하지 못하는 마산시민의 무지가 밉고..나의 무능력과 무지가 밉다.

    인터넷의 시대에..세상은 변해갈것이며 진실은 더욱 진실해져 갈것이라 믿는다.

    마산을 변하게 하기 위해 선거의 소중함을 다시한번 뼈져리게 느낀다.


    p.s: 잘읽었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18. ㄱㄱ 2009.06.10 22: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박봉식 그 놈 요즘 뭐하고 있을까...
    그 자리를 이장무라는 이병도의 증손이 대신하고 있는 오늘이 참 슬프네요.

  19. jj 2009.06.10 23: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벌써라기보다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피흘린게 아직 20년뿐이 안지났다고 생각합니다
    50년 100년이 지나간거도 아닌 그래봤자 겨우 20년뿐이 안지났는데 다시 이렇게
    민주주의가 위협당하는 상황이 왔다는게 참 착잡합니다...

  20. 제이 2009.06.10 23: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발 서민들은 정신 좀 차리자...기득권은 절대로 서민을 위해서 살지 않는다...

    평생을 서민을 위해서 살았던 노무현대통령님 같은 인격을 갖춘 분들만 그렇게 살 수 있다....

    다음에는 명바기와 딴나라당 같은 넘들 좀 찍지 마라...

  21. Favicon of http://blog.daum.net/ligase ring 2009.06.11 03: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화가 나다가 지금은 슬퍼집니다.
    저들이 아직도 헤게모니를 쥐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