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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화해위원회 35

검찰의 돌변한 태도, 민간인학살 유족들이 참 걱정이다

정권이 바뀌면서 여러 분야에서 비상식적인 일들이 속출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내가 걱정스러운 것은 민간인학살에 대한 정권과 그 하수인들의 태도다. 얼마 전 한 유족을 만났다. 아버지가 한국전쟁 발발 후 영장도 없이 체포되어 끌려간 후 학살되었는데, 이후 알고 보니 군법회의에 회부돼 국방경비법 위반이란 죄명으로 학살됐다는 것이다. 이와 똑같은 사건에 대해 대한민국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불법 학살이라는 진실규명 결정을 했고, 대한민국 사법부 역시 재심을 통해 국방경비법 위반죄를 무죄로 판결한 바 있다. 그게 불과 2년 전인 2020년의 일이다. 당시 대법원은 형사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고, 검찰은 이들 희생자에게 무죄를 구형했다. 재판부 역시 당연히 무죄를 선고했다. 그런데 이와 똑같은 사건에 대..

누가 일본의 전쟁범죄를 비난할 수 있는가

20세기 인류 역사에서 가장 야만적인 인권침해 사례를 꼽으라면 나는 서슴없이 일본군 성노예(sex slaves, 이른바 '위안부')와 민간인 집단학살(genocide)을 든다. 불행히도 두 사건은 모두 우리나라가 최대 피해국이다. 국가권력이 가장 힘없는 국민을 희생자로 삼았던 범죄라는 것도 공통점이다. 그러나 두 사건의 다른 점도 있다. 성노예가 제국주의 일본의 식민지 백성에 대한 범죄라면, 민간인학살은 대한민국 국군과 경찰이 자국민을 죽인 것이다. 독일의 홀로코스트도 집단학살이라는 점에선 같지만, 나치가 유대인을 죽였다느 점에서는 대한민국의 경우와 다르다. 범죄의 가해 주체가 달랐던 만큼 잘못된 과거에 대한 청산 과정도 확연히 다르다. 독일의 경우 1945년 패전 후 전범재판에서 주모자급 12명이 교수..

민간인학살 피해배상 판결문 전문을 보니...

울산 보도연맹사건으로 억울하게 희생된 피해자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은 1심 승소, 2심 패소, 대법원 승소로 결론이 났습니다. 지난 6월 30일 대법원 1부의 판결이었지만, 판결문 전문이 나온 것은 최근이었습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한국 현대사의 미해결 과제 중 하나인 민간인학살 사건에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이 덕분에 울산 이외지역에서도 유사 사건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과거 관련기사 : 민간인학살 상반된 판결 왜 나왔나? ☞과거 관련기사 : 민간인학살 국가상대 손배소 줄 잇는다 ☞과거 관련기사 : 국가가 입 막아놓고 이제 와서 시효소멸? 이번 소송에서 가장 핵심은 '손해배상 청구권 소멸시효'를 언제로 볼 것이냐는 것이었는데, 이번 대법원 재판부..

진실화해위원회 직원들의 마지막 호소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12월 출범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활동이 31일을 끝으로 공식 종료되는군요. 1999년부터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활동에 참여해왔던 저로서도 참 착잡하기 그지없습니다. 착잡한 이유는 이번 활동 종료가 위원회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하고 마무리되는 게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진실화해위원회의 활동은 갈수록 위축되어 왔고, 급기야 뉴라이트 계열의 위원들이 대거 자리를 차지하면서 오히려 진실이 축소 또는 왜곡되는 일도 비일비재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오늘 제 메일로 진실화해위원회 공무원직장협의회(대표 임채도)의 편지가 들어왔군요. 이명박 대통령이 임명한 이영조 진실화해위원장의 기자회견과는 사뭇 다른 내용을 담고 있는 편지를 보면서 다시 한 번 침울해졌습니다. ..

11년만에 밝혀진 미군의 곡안리 학살

어제(14일)는 참 기분좋은 날이었다. 기자로서 정말 뿌듯한 날이기도 했다. 1999년 10월 4일 처음으로 '곡안리 재실(齋室)에서 일어난 민간인학살 사건'을 세상에 알린 후, 약 11년만에 한국정부 차원의 공식 진실규명 결정이 난 사실을 다시 우리 신문지면으로 알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마산 곡안리 학살 '진실' 확인 : 경남도민일보) 최초 보도에서 마무리까지 11년이란 세월이 걸리긴 했지만, 어쨌든 우리 신문이 둘 다 단독보도를 하게 된 것이다. 당시 나는 1999년 5월 11일 창간된 경남도민일보의 창간기획으로 지역현대사를 발굴해 보도하는 '지역사 다시읽기'라는 기획시리즈 기사를 20회째 연재 중이었다. 그 해 여름부터는 1950년 마산지역에서 발생한 한국전쟁 당시 보도연맹원 학살사건을 내보내고..

감사원의 진실화해위 감사결과가 반가운 이유

오늘 낮, 후배 기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감사원이 진실화해위원회 등 과거사 관련 기구에 대한 감사결과를 발표했는데, 그게 감사원 홈페이지에 공개되어 있으니 한 번 보라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MB 정권의 감사원이 또 무슨 트집을 잡으려고 그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 정권이 사사건건 과거사 진실규명에 발목을 잡아온 전력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뉴라이트 계열에서 활동하던 보수인사들을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과 위원으로 임명하고 있다. 과거사 진실규명에 반대해온 인사들에게 그 일을 담당하는 기구의 자리를 맡긴다는 건 넌센스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감사원 홈페이지에서 감사결과를 열어보니,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사뭇 내용이 달랐다. 용역 예산 정산이 철저하지 못했다는 몇 몇 지적사항과 함께 '발굴..

집단학살 진실규명 결정을 보는 특별한 감회

마산형무소 재소자 학살에 이어 마산·창원·진해 보도연맹원 학살사건의 진실이 마침내 밝혀졌습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위, 위원장 이영조)가 이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물론 진실위의 내부적인 결정은 지난달에 이루어졌습니다만, 관련 법률에 따라 국회 보고를 거친 후 공개하도록 되어있기 때문에 오늘에야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이 또한 진실위는 아직 공식발표하지 않았지만, 확인된 희생자 유족들에게 전달된 '진실규명 결정서'를 제가 입수해 보도함으로써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그동안 적지 않은 민간인학살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결정이 있었지만, 특히 저는 이 사건에 대한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1961년 5·16쿠테타 세력이 진상규명운동에 나선 유족회 간부들을 ..

마산 민간인학살 희생자 명단 공개합니다

요즘 나에게 민간인학살 사건 희생자 명단에 자신의 아버지가 포함되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려는 전화가 가끔 걸려온다. 올들어 마산 민간인학살 사건에 대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안병욱)'의 진실규명 결정이 내려지고, 이후 결성된 마산유족회(회장 노치수)가 48년 만의 합동위령제를 개최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재개하면서 나타나고 있는 일이다. 확인해 드리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명단을 공유하기 위해 블로그에 올려놓는 것도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올리는 명단은 4·19혁명 직후인 1960년 이 당시 유족회로부터 받아 7월 23일자에 보도한 것이다. 이 명단이 실린 신문스크랩 덕분에 이번 진실규명 결정 과정에서도 적지 않은 분이 희생자로 확인될 수 있었다. 물론 이 명단이 ..

박정희가 해직시킨 교사 3008명 아직도…

박정희·전두환 등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뭘까? 그것은 바로 자신들의 정권 찬탈 음모에 걸림돌이 될만한 사람들, 즉 이른바 '운동권'을 싸그리 잡아들여 조지는 것이다. 그걸 일컬어 이른바 '예비검속'이라고 한다. 법적 근거도 없고 구속영장 같은 것도 없다. 따라서 그건 명백한 '불법 구금'이다. 1961년 박정희 소장을 중심으로 하는 5·16쿠데타 세력이 가장 먼저 한 일도 바로 전국의 '운동권 세력'을 '일망타진'하는 일이었다. 16일 쿠데타를 일으킨 그들은 이틀 뒤인 18일부터 교원노조, 양민피학살자유족회, 민족통일학생연맹, 민족자주통일협의회, 영세중립화통일추진위원회 등 사회단체는 물론 사회당, 사회대중당, 혁신당 등 진보정당 간부들을 잡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여 예비검속..

60년대 진보인사들 명예회복 길 열렸다

1961년 5·16쿠데타가 일어난 이틀 뒤인 18일, 마산에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운동을 하던 노현섭 씨와 교원노조 중등지회장 이봉규 씨, 그리고 영세중립화 통일운동가인 김문갑 씨 등이 집으로 들이닥친 군인들에게 전격 연행됐다. 그들과 함께 전국적으로 구금된 이들이 수천 명이었다. 구속영장도 없었고, 처벌할 법률도 없었다. 박정희 쿠데타세력은 헌법도 무시하고 뒤늦게 특별법이라는 걸 만들어 그들에게 사형, 무기징역, 15년, 10년씩 중형을 때렸다. 천만다행으로 풀려나온 사람들도 제각각 수개월씩 불법구금을 당한 뒤였다. 이렇게 5·16쿠데타 직후 억울하게 죽거나 징역을 살았던 사람들이 마침내 피해구제를 받을 길이 열렸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위원장 안병욱)가 21일 '5·16쿠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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