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화해위원회 썸네일형 리스트형 49년만에 열리는 위령제 '제2회'인 까닭 1950년 이승만 정권에 의해 집단학살된 마산지역 희생자들에 대한 합동위령제가 1961년 5·16쿠데타로 중단된 지 49년만에 다시 열린다. 또 박정희 군사쿠데타 세력의 소급입법으로 부당하게 옥고를 치른 민간인학살 유족회와 교원노조 간부들에 대한 명예회복도 마침내 이뤄질 전망이다. 한국전쟁전후민간인학살마산유족회(회장 노치수)는 29일 오후 경남도민일보에서 임원진회의를 열어 1961년 이후 단절됐던 희생자 합동위령제를 오는 10월 16일 오후 1시30분 마산공설운동장 내 올림픽기념관에서 개최하기로 했다. 유족회는 또한 1960년 8월 27일 당시 마산역 광장에서 1000여 명의 유족이 참석한 가운데 노현섭(현 노치수 회장의 작은 아버지) 씨의 주도로 열렸던 제1회 위령제를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49년만에 열.. 더보기 드러난 암매장 유골, 어찌해야 할까요? 지난 59년간 진주시 외곽의 한 산골짜기에 암매장돼 있던 54구의 집단학살 희생자 유골이 마침내 세상으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들 유골은 또다시 갈 곳이 없어 떠돌아야 하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국가에 의해 억울하게 학살당했지만, 국가가 그 안식처를 마련해주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13일에도 이 블로그를 통해 알려드렸듯이 진주시 문산읍 상문리 진성고개에서 한국전쟁 당시 국군에 의해 학살된 민간인 희생자들의 유해가 무더기로 발굴됐습니다. ▷관련 글 : 김주완 '기자정신(?)' 많이 죽었다 ▷관련 글 : 학살 암매장 유골, 발굴해도 갈 곳이 없다 ▷관련 글 : "겨우 찾은 아버지 유골 모실 곳이 없네요" 어제(30일) 오후 2시 이들 유해에 대한 현장설명회가 열렸습니다. 설명회에 많은 보도진이 다녀갔지.. 더보기 "겨우 찾은 아버지 유골 모실 곳이 없네요" 진주유족회 강병현(59) 회장은 유복자로 태어났다. 어머니 뱃속에 있는 동안 아버지가 학살당한 것이다. 그는 지난 6월 20일 마산유족회 창립대회 자리에서 이렇게 털어놓기도 했다. "나는 유복자입니다. 세상에 나오니까, 아버지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원래 가정마다 다 아버지가 없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저만 없더라고요. 지난 60년간 공산당이 싫습니다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이게 뭡니까? 제 나이 60입니다. 살면 얼마나 더 살겠습니까? 이제 아무것도 무섭지 않습니다." 강 회장의 아버지처럼 1950년 7월 국군과 경찰에 의해 영문도 모른 채 학살된 사람은 경남 진주에서만 1200여 명이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올해 초 이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을 결정했고, 당.. 더보기 62살이 되어서야 처음 불러보는 '아버지' 1961년 5·16쿠데타를 일으킨 정치군인들에 의해 강제해산됐던 '민간인학살 마산유족회'가 어제(20일) 48년만에 재창립대회를 열었다. 어제 창립대회에서 회장으로 선출된 노치수(62) 유족회장은 1950년 당시 우리 나이로 세살바기 아기였다. 그 때 아버지 노상도 씨를 잃고 평생 '아비없는 자식'으로 살아왔던 그는 62세 노인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학살된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편지를 썼다. 그리고 그 편지를 나에게 보내왔다. "언젠가 꼭 쓰고 싶은 글이었는데, 이제야 썼으니 신문에 실을 수 있으면 싣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버려도 된다"는 문자메시지와 함께…. 당연히 신문에 게재하고, 이 블로그에도 올려 많은 분들과 그의 아픔을 함께 하고자 한다.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 아버지! 아버지를 얼마나 불러 보고 .. 더보기 전국 노인 70여명이 창원으로 몰려온 이유 전국의 민간인학살 희생자 유족회 간부 70여 명이 25일 오후 창원에 왔다. 권경석 국회의원과 한나라당에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권경석 의원은 지난달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를 포함한 17개 과거사 관련 위원회 법률에 대한 개정안을 발의했다. 내용은 독립적인 위원회의 결정을 국무총리가 재심 또는 소송을 통해 뒤집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권 의원측은 "과거의 결정을 무조건 뒤집자는 것이 아니라, 명백히 위법·부당한 위원회의 결정에 대해 재심 또는 법원의 판단을 구하는 기회를 부여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민간인학살 희생자 유족들은 권경석 의원의 이 법안이 한나라당의 과거사 관련 위원회 통폐합 및 무력화 시도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더보기 서울사람들이 창원에 데모하러 오는 까닭 저는 지금까지 기자 노릇을 해오면서 가장 답답하게 여겼던 일이 바로 '민간인학살' 문제였습니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이고, 법치국가입니다. 그런데, 그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범죄자가 되어 수십만 명의 국민을 '불법'으로 집단살해한 사건이 민간인학살입니다. 대한민국 헌법은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구속·압수·수색 또는 심문을 받지 아니하며,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보안처분 또는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제12조)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은 한국전쟁 당시 단지 인민군에 협조할 가능성이 있다는 추측만으로 전국 방방곡곡에서 비무장 상태의 민간인을 산골짜기에 끌고 가 집단총살하거나 바다에 수장시켰습니다. 아무런 재판절차도 없었습니다. 헌법은 또한 "모든 .. 더보기 59년 전 아들의 죽음을 믿지 못하는 할머니 20대 초반에 청상과부가 되어 평생 혼자 살아온 83세 여성노인에게 가장 아쉽고 절실한 것은 뭘까? 황점순(마산시 진전면 곡안리) 할머니에게 그것은 '혈육'이었다. 그녀는 한국전쟁이 일어난 1950년 적군도 아닌 아군에 의해 남편 이용순과 아들 상섭을 잃었다. 당시 남편의 나이 24세, 아들은 고작 2세였다. 남편은 그해 7월 15일 보도연맹원이라는 이유로 경찰에 불려간 후 영영 돌아오지 않았고, 상섭이는 8월 11일 미군의 곡안리 재실 민간인학살 현장에서 잃고 말았다. 국가가 남편의 사망 사실을 공식 확인해준 것은 그로부터 59년이 지난 2009년 2월말이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안병욱)가 당시의 민간인 희생자 명단에서 '이용순(李鏞淳)'의 이름을 찾아줬던 것이다. 물론 국가가 .. 더보기 민간인학살 유족 사찰 '극비문서' 있었다 김해경찰서, 작성해 유족 감시 확인 경찰이 한국전쟁 당시 학살된 보도연맹원 뿐 아니라 그들의 유족에 대해서도 일일이 성향 분석을 하면서 감시·관리해왔다는 사실이 '극비 문서'를 통해 밝혀졌다. 최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김해지역 보도연맹 희생자 유족 272명에게 결정 통지한 '진실규명 결정문'에 따르면, 경찰은 1950년 학살 이후부터 1970년대까지 이른바 를 작성해 유족들을 감시해왔다. 김해경찰서 정보과가 1972년에 작성한 것으로 돼 있는 는 '6·25 당시 처형자 및 동 연고자'라는 부제가 붙어 있으며, 여기에는 1950년 살해된 201명의 성명·본적·주소·생년월일·성별은 물론 연고자(유족) 간의 관계 등이 자세히 적혀 있었다. 특히 연고자란에도 성명·본적·주소·직업·생.. 더보기 이전 1 2 3 4 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