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봄이 낮은 포복으로 다가왔다 올 겨울은 유달리 추웠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미 3월이지만 겨울이 완전히 물러났다고 잘라 말하기가 아직은 두렵습니다. 그 말을 듣고 겨울이라는 녀석이 몸을 돌려 꽃샘추위의 매서움으로 나타날까봐 겁이 나는 것입니다. 어쨌거나, 봄은 이렇게 오고 있습니다. 저기 버드나무에 가지 끝 연둣빛으로도 오지만, 봄은 이렇게 낮은 데서도 스멀스멀 다가오고 있습니다. 봄에는, 아시는대로 바람이 아주 차게 느껴집니다. 대신 햇볕은 마냥 다사롭기만 합니다. 햇살이 내려쬐니까 바람이 잦아들기만 해도 세상이 온통 따뜻하답니다. 그것은 풀에게도 마찬가지인 모양입니다. 풀은 바람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 바닥에 바짝 붙어서 자랍니다. 또 그렇게 바닥에 바짝 붙으면 지열(地熱)을 누릴 수도 있습니다. 지열은 해가 지고나서도 지속이 됩니다.. 더보기
지심도엔 동백만 피어 있지는 않았다 4월 13일 거제에 있는 지심도를 다녀왔습니다. 장승포에서 빤히 바라다 보일 정도로 가깝지만, 파도가 조금만 일렁거려도 배가 안 뜬다는 얘기를 듣기는 했습니다만, 그러면 다른 데 가지~ 이런 심정으로 아침에 그냥 출발을 했습니다. 바람이 조금 불기는 했지만 바다는 오히려 조용했고, 그래서 배는 아무 탈없이 뜰 수가 있었습니다. 가는 뱃길은 15분남짓으로 길지 않았으나 배삯은 왕복 1만2000원으로 조금 비싼 편이었습니다. 지심도는 동백이 아름답다고 저는 들었는데 가서 보니 과연 그러했습니다. 지심도 동백은 뭍에 있는 여느 동백들, 그러니까 제가 자주 눈에 담았던 그런 동백과는 격이 달랐습니다. 사람 감정을 집어넣어 보기 때문에 이런 표현이 쓰이지만, 지심도 동백은 쫙 벌어지지 않고 다소곳하게 오무리고 있.. 더보기
지금 꽃 ‘산업’이 과연 정상일까 2월 11일 고3 아들 졸업식이 있었습니다. 낮 11시에 시작했는데 12시 남짓해서 끝났습니다. 저는 원래 ‘목이 잘린’ 꽃은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처음에는 꽃다발을 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같이 간 우리 딸 현지가 “아빠 꽃 하나 사요.” 하는 바람에-솔직히 말하자면 12년 공부를 마친 아들에게 꽃다발은 하나 안겨야겠다 싶어서 도로 밖으로 나와 작은 꽃다발을 장만했습니다. 이 날 우리 아들 현석은 꽃다발을 두 개 받았습니다. 아들 엄마는 3년 째 와병 중이라 나오지 못했지만, 현석의 예쁜 여자친구가 꽃다발을 들고 축하하러 왔더랬습니다. 받은 꽃다발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목이 잘렸다고는 하지만 다발로 묶인 꽃들이 죄 죽었다고 하기는 어려워서 차마 버리지 못하고 주둥이 넓은 병에 물을 담아 꽂았습니.. 더보기
역사책과 국사 교과서는 어떻게 다를까 저는 책을 난잡하게 읽는 편입니다. 한 책을 읽다가 어떤 대목에서 관련되는 다른 부분이 생각나면 바로 다른 책을 끄집어내어 읽고는 합니다. 이러다 보니 제 책상에는 언제나 책이 너절너절하게 쌓여 있기 십상입니다. 1. 10만년 전 이라크 샤니다르 동굴 이번에도 그랬습니다. 중3 되는 딸에게 주려고 조경철 씨가 쓰고 사계절에서 펴낸 ‘문화로 읽는 세계사’를 샀습니다. 한 장 두 장 뒤적이다 보니 재미가 있어서 줄줄 읽고 말았습니다. 두어 시간 읽다가 책을 덮으려는데 눈길을 끄는 부분이 띄었습니다. 19쪽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네안데르탈인)이 약 10만 년 전쯤부터 시체를 매장했다는 사실이다. 유명한 매장지의 하나가 이라크 자그로스 산맥에 있는 샤니다르 동굴이다. 30세 정도의 네안데르탈인 남자가 매.. 더보기
과학 선생들한테 된통 당한 국어 선생 1. 제가 좋아하는 소설가는 아닙니다만, 김훈이 쓴 소설 에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부역을 나온 백성들이 일을 끝낸 뒤에도 돌아가지 않고 남아 이순신 장군에게 선물로 줄 칼(환도)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 대장장이 백성들이 검명(劒銘)까지 새기겠다 나서는 바람에 장군이 一揮掃蕩일휘소탕 血染山河혈염산하, 라고 글을 적어주기까지 합니다.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인다.’ 백성들 장군에 대한 믿음과 장군을 받드는 마음과 왜적을 물리치자는 간절한 소망과 이순신 장군의 굳건한 충심이 도드라져 보이는 국면입니다. 김훈은 이렇게 썼습니다. “그 때, 나는 진실로 이 남쪽 바다를 적의 피로 염(染)하고 싶었다. 김수철은 글씨를 말아들고 물러갔다. 새 칼은 나흘 뒤에 왔다. 칼집에 자개를 박아 용무늬를 .. 더보기
늦가을 풀꽃 보고 달래 석방을 결심했다 어제 아침 집에서 나오는데 아파트 뜨락 무궁화나무 아래 풀에서 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생긴 모습이 달래라고 착각했는데 아니었습니다. 무슨 풀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속으로 ‘이런 늦가을에 웬 일로 꽃을 피웠어?’ 여기며 눈길을 한 번 줘 봤습니다. 쪼그리고 앉아 자세히 뜯어보니 옆에는 시든 꽃잎이 있었고 피어 있는 녀석도 새들새들, 말라 있었습니다. 아무리 양지바른 데라 해도 저무는 햇살까지 어찌할 수는 없나 보군, 이리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우리 집 아파트 발코니에 놓여 있는 달래 두 포기가 생각이 났습니다. 세 해 전, 지금 중2인 딸 현지랑 들판에 나갔다가, 우리 현지가, “우와! 예쁘당. 아빠, 저거 집에 데려가면 안 돼요?”, 웃으며 다그치는 바람에 캐어다 심은 것입니다. 이리 달.. 더보기
어머니 덕분에 택배 기사 이름을 입력했다 자기 일 때문에 택배 서비스를 자주 찾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 손전화에는 택배 기사 손전화 번호가 들어가 있습니다. 필요할 때 ‘ㅌ’하고 ‘ㅂ’을 찍으면 바로 연락이 되도록 말입니다. 택배 기사에게서 명함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명함에 적힌 전화번호를 자기 손전화에 집어넣고 주인 이름을 ‘택배기사’라 적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번호를 물끄러미 바라볼 일이 생겼답니다. 여태껏 이른바 그루핑(grouping)하지 않고 전화번호를 그냥 마구 집어넣었다가 이번에 틈이 나서 정리를 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일이라 하더군요. 그이는 ‘택배기사’를 ‘거래처’ 그룹으로 분류해 넣었답니다. 그러는데, 그야말로 아무 까닭 없이, 어머니가 떠오르더랍니다.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난 어머니가 말입니다. 어머니는 학교 문턱도.. 더보기
연계정 꽃 품에서 낮잠 한 판 때리기 합천에 가면 연당이라는 크지 않은 습지가 있습니다. 가을이 되면 말밤(서울 사투리로는 물밤이라 한답니다.)이 실하게 여물곤 하는 곳입니다. 연당 옆에는 전혀 정자 같지는 않고 그냥 오래 된 일반 가정집 같은데 이름이 정자 같은, 연계정(蓮溪亭)이라는 건물이 하나 있답니다. 합천 황강 가에 있는데, 찾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지금은 말라붙어 버리고 없지만, 조금 옛날에만 해도 여기 연계라는 시내가 있었으리라 짐작되는 그런 곳입니다. 뒤집어 말씀드리자면, 지금은 사라진 연계라는 시내나, 아직도 그 앞에 동그마니 모습을 잃지 않고 있는 연당이 없었다면 들어서지 않았을 건물이 바로 이것입니다. 오늘 말씀드리려는 바는 이 연계정에 있는 모습 몇몇 가지입니다. 먼저 연계정 문을 열고 들어가면 마루 난간에 새겨져 있는.. 더보기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