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본 곳

지심도엔 동백만 피어 있지는 않았다

김훤주 2010. 4. 1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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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3일 거제에 있는 지심도를 다녀왔습니다. 장승포에서 빤히 바라다 보일 정도로 가깝지만, 파도가 조금만 일렁거려도 배가 안 뜬다는 얘기를 듣기는 했습니다만, 그러면 다른 데 가지~ 이런 심정으로 아침에 그냥 출발을 했습니다.

바람이 조금 불기는 했지만 바다는 오히려 조용했고, 그래서 배는 아무 탈없이 뜰 수가 있었습니다. 가는 뱃길은 15분남짓으로 길지 않았으나 배삯은 왕복 1만2000원으로 조금 비싼 편이었습니다.

지심도는 동백이 아름답다고 저는 들었는데 가서 보니 과연 그러했습니다. 지심도 동백은 뭍에 있는 여느 동백들, 그러니까 제가 자주 눈에 담았던 그런 동백과는 격이 달랐습니다.

사람 감정을 집어넣어 보기 때문에 이런 표현이 쓰이지만, 지심도 동백은 쫙 벌어지지 않고 다소곳하게 오무리고 있었습니다. 속되게 말하자면 되바라지지 않았습니다.

나무에 매달려 있는 꽃도 그러했고, 제 할 일 다하고 뚝, 떨어져 바닥에 놓여 있는 꽃도 그러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좋았습니다. 숨어 있지는 않으면서도 자기를 통째로 드러내지는 않는 자세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핀 꽃.


진 꽃.


저는 진 꽃이 어쩌면 더 좋았던 모양입니다. 핀 꽃은 몇 장 찍지 않았고 모조리 바닥에 떨어져 있는 진 꽃을 찍었습니다.

핀 꽃.


그늘 속에 환한 볕이 있습니다.



아늑한 그늘에 동백이 아득하게 떨어졌습니다.


핀 꽃.


지심도에는 동백만 피어 있지는 않았습니다. 다른 꽃들도 피어 있었습니다. 바닥에 바짝 엎드려 피기도 했고 꽃대를 쑥 뽑아올린 위에 매달려 있는 꽃도 있었습니다.


탱자꽃이 벌써 피었습니다.



지심도에는 이처럼 꽃도 피어 있었지만 잎도 피어 있었습니다. 눈여겨 들여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잘 알겠지만, 실은 꽃보다 잎이 더 예쁘고 빛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다만 잎은 밖으로 뿜어내는 쪽으로 힘을 쓰는 대신 나무의 안으로 기운을 집어넣는 데로 힘을 쓰기 때문에, 사람으로 하여금 달뜨게 하거나 풍성하게 부풀어오르게 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차분하게 깔리면서 산뜻함을 안겨주는 때가 잦을 따름이랍니다.

갯머위라고 저는 압니다.


가죽나무 새 순이라고 여깁니다만.



어린 동백 같은데요.





그리고 지심도에는 이렇게 밝고 빛나는 존재만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그늘이 있어서 밝음이나 환함이 조화롭게 여겨질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늘은 길을 따라 있었습니다. 그늘은 나무 아래에 있었습니다.


그늘에는 따뜻한 햇살이 함께 담겨 있었습니다. 아울러 서늘한 바람도 오가고 있었습니다. 길이 사라지는 저 너머에는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환한 존재가 있는 것 같이 느껴지는 때도 있었습니다.

어린 동백이 수북하게 자라나고 있습니다.


동백이 숲을 이뤘습니다.



지심도는 나무와 풀의 꽃과 잎 천지였습니다. 새도 여기저기서 소리를 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바닥을 기는 존재도 있었습니다. 개구리입니다. 잠에서 아직 완전히 깨지는 않았는지 동작이 조금은 굼떠 보였습니다.

그런데 사진은 올리지 않겠습니다. 얼마 안 있으면 지심도 아니라 어디서도 흔히 볼 수 있겠기 때문입니다. 또 좋아하시지 않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 같고요.

멋지다 싶은 대목에서는 풍경도 담아 봤습니다. 날씨 때문인지 어떤지는 몰라도 보이지 않는 저 너머에 언제나 환한 무엇이 있는 듯이 여겨졌습니다.



뱃머리를 대는 선착장 들머리에는 이런 콘크리트가 있었습니다. 옛날 같으면 제가 별로 곱게 여기지 않았을 테지만 요즘은 그런 데 별로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군사 문화가 지배하던 시절의 돌격대 기분이 좀 묻어납니다만, 지심도는 이조차 대수롭지 않게 품어버렸습니다. 하하.


이 날 지심도에서는 새가 소리로 귀를 즐겁게 해 줬고 꽃과 잎이란 녀석들은 빛으로 눈을 즐겁게 했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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