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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본 세상 1803

소심하고 비루한 자수 #미투

1970~80년대는 이랬다. 남자는 벼슬이고 권력이었다. 1970년 우리 집은 어느 시골 읍내 장터에 있었다. 국민학교 1학년 때였다. 아침이면 장터에서 남자 어른들 호통 치는 소리가 종종 들려왔다. '어디 여자가 아침부터 남자 앞을 지나가느냐!'고 나무랐었다. 여자는 머리를 숙이고 어깨를 웅크린 채 종종걸음을 쳤다. 다방·술집·식당 같은 데서 일하는 여자들이었다. 어린 우리는 그게 당연한 일인 줄 알았다. 장터에는 거지들이 많이 있었다 그 가운데는 여자도 한 명 있었다. 여자 거지는 배가 불러 있을 때가 많았다. 터질 정도가 되면 사라졌다가 얼마 가지 않아 다시 나타났다. 아이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1976년 이사 갈 때까지 이런 풍경은 내 눈 앞에서 되풀이되었다. 어린 우리는 여자 거지를 따..

미투 운동을 보고 떠올린 남자의 기억

나는 성폭력 피해여성들의 고통과 그 깊이를 잘 모른다. 다만 항거불능 상태에서 내 몸이 타인에게 유린되었을 때 어떤 기분인지는 좀 안다. 중학교 때였다. 나는 남해라는 시골에서 부산이란 대도시로 전학한 촌놈이었다. 교실에서 친구 대여섯이 갑자기 나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은 내 양팔과 어깨 다리를 번쩍 들어 책상 위에 눕혔다. 그리곤 한 놈이 내 바지를 확 벗겼다. 양팔과 다리가 붙잡혀 있으니 저항할 수도 없었다. 놈들은 팬티까지 내려 성기를 확인하곤 깔깔깔 웃으며 도망쳤다. 그들에겐 이게 장난이고 놀이였다. 알고 보니 나 말고도 당한 친구가 몇 더 있었다. 각자의 성기 크기를 비교해보겠다는 거였다. 엄청난 치욕을 느꼈고,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의 굴욕감에 화가 나 미칠 것 같았다. 순식간의 일이라..

글쓰는 사람이라면 꼭 해야 할 일

"인간이란 존재가 밑바닥까지 추락했을 때, 그들에게 있어 문화란 하등 쓸모없는 것이었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김동식 소설 의 첫 문장입니다. 땅속 세상, 지저 세계 인간들에게 납치된 지상 세계 사람들은 극한상황에서 강제노동과 배고픔에 시달리며 최종적으로 남아 있던 한 가닥 희망조차 희미하게 망각하게 됩니다. 그런 상황을 작가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인간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 그저 배고픔을 느끼는 몸뚱이 하나만 남을 뿐." 그때 어느 여성이 노래를 부릅니다. 어떤 남자는 돌멩이로 벽에 그림을 그립니다. 또 어떤 이는 자신이 소설가라며 이곳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써낼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묻습니다. "자네는, 이곳의 모습을 그릴 수 있나? 우리가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

정치인은 왜 막말과 증오발언을 일삼는 것일까?

아무렇게나 막말을 내뱉고 극단적인 증오 발언도 서슴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유명한 정치인들 중에도 많은데요.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되는 정치인의 언행을 접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대체 왜 그러는 걸까요? 최근 심리학 관련 서적들을 보면서 그런 분들의 심리를 어느 정도나마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라는 책에서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응석받이 아이들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어른'을 언급하는데요. 심리학에서는 이런 심리상태를 '자기중심성(ego-centrism)'이라고 한답니다. 발달심리학자 피아제는 이것을 '이기적이고 비사회적인 사고로 인해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모든 정신생활이나 행동을 영위하는 상태'라고 합니다. 본래 피아제는 일곱 ..

평창, 30년만의 전세대 공동체험 기회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이 코 앞에 다가왔다. 2월 9일부터 25일까지다. 3월에는 같은 지역에서 장애인동계올림픽도 열린다. 1988년에는 서울올림픽대회가 열렸다. 30년 전 일이다. 전두환 정권이 유치했고 노태우 정권이 진행했다. 그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다. 광주학살을 저지른 피묻은 손을 올림픽으로 가리고 씻으려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서울올림픽이 시작되자 반대 목소리가 묻히고 말았다. 반대하던 사람들조차 올림픽과 그 열기에 빠져들었다. 국가주의니 전체주의니 하는 비판은 들어설 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올림픽 개최가 주체국에게 얼마나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지 알 수 있었다. 서울올림픽은 세계에서 한국의 위상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대한민국 구성원들이 스스로를 좀더 자랑스럽게 여기고 좀더 당당해지..

임금격차 해소, 최저임금의 본질을 생각하자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2016년 12월 창원광장. 한 청년노동자가 연단에 올랐다. 노동자 4년차인데 월 최저임금 120만 원을 받는다는 그는 이렇게 묻는다."여러분들에게 정말 묻고 싶었다. 박근혜가 퇴진하면 나의 삶은 나아지는가? 이대로 계속 20~30년 살라면 나는 더 이상 살 자신이 없는데, 여러분들은 어떤가?"당시 집회 사회자는 "여러분들의 마음도 이 노동자와 똑 같을 것"이라고 마무리했지만, 다르게 생각하는 이도 있었다.이 영상을 본 전 민병두 의원 정책보좌관 최병천 씨는 "우리나라의 사회경제적 전선에는 상위 10%의 독점적 시장지배력을 가진 원청자본+원청노동이 있고, 그 반대편에 과당경쟁에 시달리는 하청자본+하청노동이 있다"고 규정한 후, "전자는 상위 10%이지만 '목소리..

페북 친구가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그래서...(반전 주의)

어느 페이스북 친구가 페메(페이스북 메시지)로 말을 걸어왔다."지금 바쁘신가?"누군지 확인해봤다. 프로필을 보니 2012년에 올린 사진이 가장 위에 있는 걸로 보아 오랫동안 페북을 방치해놓고 있는 친구였다.직감적으로 피싱 사기라는 느낌이 들었다. 수법도 짐작이 갔다. 해킹한 페이스북으로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보내 "급하게 돈 쓸 데가 있으니 빌려달라"는 식의 사기.대체 어떤 사람이 이런 짓을 하는지 궁금하여 말을 받아줬다."아니. 왜?"아니나 다를까. "지금 급하게 결제를 해줘야 하는데 혹시 이체 가능할까 해서."라는 답이 곧바로 올라왔다.그래서 계속 물었다. 문답 내용은 첨부한 이미지로 보시길...자꾸 이렇게 꼬치꼬치 물으니, 녀석이 낌새를 챘는지 "없던 일로 하세"라며 슬슬 꼬리를 내렸다.그래서 이젠 ..

거제, 임진왜란의 영광과 치욕 그 흔적을 찾아

[우리고장역사문화탐방](8) 거제객사 기성관과 업무 공간 질청 등 숨은 역사 품은 곳서 색다른 경험옥포대첩·칠천량해전기념관서 전쟁 민낯 생각몽돌해변·거제현 관아 보며 멋진 풍경조선시대 고전미 만끽역사문화탐방을 같은 지역에서 한다 해도 일정까지 모두 같지는 않다. 어느 지역 학생이냐에 따라 둘러보는 장소가 달라지게 된다. 같은 지역이거나 관련성이 높은 지역 학생이면 잘 알려져 있는 데는 뒤로 미루고 여태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장소를 중심으로 탐방한다. 반면 멀리 있는 다른 지역 학생이면 새로운 장소를 소개하기보다는 널리 알려진 장소를 깊이 들여다보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이번에 거제가 그랬다. 거제에 있는 신현중, 바로 옆인 통영의 충렬여고, 제법 거리가 먼 김해 구산고 아이들이 찾았다.거제 신현중은 거..

수로왕·허왕후에 가려져 있던 '이야기들'

[우리고장역사문화탐방](7) 김해 율하유적공원 고인돌·장방리 억새집구석구석 살펴보며 '특별한 시간여행'고 노무현 대통령 묘역에 들러 헌화도 김해 하면 사람들은 대부분 김수로와 허황옥을 바로 떠올린다. 가락국(또는 금관가야) 이야기와 고분군 유물·유적이 중심을 차지한다. 그러다 보니 마치 김수로와 가락국이 김해 역사에서 거의 전체인 양 착각하게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를 알려주는 유적이 율하마을 일대 고인돌이다. 율하유적전시관과 유적공원으로 잘 갈무리되어 있다. 김수로는 철기시대 인물이다. 고인돌은 그보다 앞선 청동기시대 무덤이다. 김수로 이전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던 것이다.학생들은 여기에 오면 말로만 듣고 책에서만 보던 고인돌을 아래에서 위까지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 전시관 안에는 고인돌의 구..

풍부한 물산 덕분 역사·문화 꽃피운 진주

[우리고장역사문화탐방](6) 진주 남강 끼고 있어 논농사 발달·교통 요지문산성당, 서부경남지역 가톨릭 중심지진주역차량정비고, 일제 수탈 통로 역할진양고 학생들 "고장 자부심 되새겨"진주 친구들은 자기 고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편이다. 다른 지역과는 다른 진주의 특징이다. 오랜 세월 동안 경상우도 또는 경상남도에서 으뜸 가는 고을이었기 때문이다. 진주의 이와 같은 자리매김은 남강 덕분이 크다. 먼저 진주 일대에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너른 들판을 베풀었다. 다음으로 낙동강으로 이어지는 물길로 편하게 오가도록 교통로도 되었다. 이에 더하여 지리산이나 남해바다와도 가까워 산과 바다에서 나는 특산물도 공급되었다. 진주는 한마디로 물산이 풍부한 고장이었다. 그런 덕분에 아주 옛날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역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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