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 전날인 5월 28일, 미디어 비평 전문 매체인 <미디어오늘> 인터넷판에 '봉하 마을엔 경향·한겨레만 있다?'는 기사가 떴습니다. 날마다 조문객들로 발 디딜 틈도 없는 봉하 마을에, 잘 나가는 이른바 조·중·동은 없고 경향과 한겨레만 하루 4000~5000부 나간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기사를 읽어본 김주완 선배가 "무슨 기사가 이래? <경남도민일보>랑 <국제신문>이랑 <부산일보>도 있는데……. 우리도 3000부 갖다 놓잖아?", "훤주씨도 시간나면 <미디어오늘> 한 번 들어가 보세요." 했습니다. 저도 들어가 읽어보고는 일단 그냥 웃고 말았습니다.
이튿날 정오 즈음 <미디어오늘>에 전화를 했습니다. "봉하 마을에 경향·한겨레만 있다고 보도를 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 <경남도민일보>도 있다, 뿐만 아니라 부산에서 나오는 <국제신문>·<부산일보>도 함께 나눠주고 있다. 그런데 왜 엉터리로 보도했느냐?" 따졌겠지요.
담당 기자한테 연락해 전화를 주겠다고 했습니다. 기다렸습니다. 다섯 시 즈음 전화가 왔습니다. 제가 무어라 하기 전에 전화기 너머에서 "죄송하다. 새벽에 봉하 마을 도착했는데, 그 때는 경향·한겨레뿐이었다. (지역 매체는) 미처 생각지 못 했다." 하는 얘기가 들려왔습니다. 미디어오늘 사진. 경남도민일보는 이런 서울 신문들보다 훨씬 먼저 나오니까 먼저 떨어집니다.
2.
전화를 받으니 저는 맥이 빠졌습니다. 그래서 "한 줄 집어넣든지 해서 바로잡아 달라." 하고는 전화를 끊었습니다. 한 번 돌이켜 보니 이런 일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2008년 5월에도 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는 다만 <미디어오늘>이 아니고 <시사IN>이었다는 차이밖에 없습니다.
마산 구산면 수정마을 수정만 매립지에 STX가 진입해 조선기자재 공장을 지으려는 데 대해 마을 주민은 물론이고 '봉쇄 수도 수녀원'인 트라피스트수녀원까지 뛰쳐나와 반대운동에 나서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큰일을 아무 매체도 보도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당시 <시사IN>은 글머리에서 굵은 글자로 이렇게 새겼습니다. "주민 생존권을 무시하는 기업과 지자체에 화난 수녀들은 여러 언론사에 취재를 요청했지만 대부분 '늘 일어나는 일'이라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수녀들은 그 사실이 놀랍고 슬프다." 하지만 지역 매체들(경남도민일보 마산MBC, 창원KBS, 경남신문)은 그 전해부터 줄곧 보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때 "<시사저널> 편집권 독립 문제로 파업을 하면서 약자의 설움을 톡톡히 겪은 <시사IN>마저 이렇게 사실 확인을 않고 내키는대로 보도할 줄은 몰랐다.", "지역 매체 종사자들은 <시사IN>의 이런 보도가 '놀랍고 슬프다.' 지역 매체에 치명상을 입히는 보도다."라 써서 블로그에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때도 이번처럼 기사를 작성한 기자가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전화를 해서 잘못을 사과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지요. 그래서 저는 제게 전화를 걸어준 두 분 기자한테 나쁜 감정이 없습니다. 오히려 고맙게 여긴답니다. 그리고 지금 하려는 말도 그런 감정과는 다른 차원에 있는 것임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시사IN> 기자가 그 때 제게 한 말도 이번 <미디어오늘> 기자가 한 말과 같습니다. "미처 몰랐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였습니다. 그이들가 미처 몰랐고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은 바로 '지역에는 지역 매체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그러니까 국민 기초 상식이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서울 매체 기자들에게는, 그 매체가 크든작든 또는 진보든 보수든 구분없이 '지역 매체는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3.
어쨌거나, 며칠 뒤에 <미디어오늘> 기사가 어떻게 바뀌어 있는지 확인해 봤습니다. 그랬더니 제목은 "봉하 마을엔 경향·한겨레만 있다?"에서 '만'이 빠진 채 "봉하 마을엔 경향·한겨레 있다?"고 바뀌어 있었습니다.
영결식 다음날 봉하마을의 경남도민일보와 한겨레 @김주완
기사 본문에서는 두 번째 단락 첫째 문장 "현재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는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만이 무료로 배달이 되는 상황이다."가, "현재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는 전국단위 아침신문 중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만이, 지역신문 중 경남도민일보 국제신문 부산일보 등이 무료로 배포되고 있다."로 고쳐져 있었습니다.
딱 요만큼이었습니다. 전체적으로 새로 고쳐 쓰면 아주 좋았을 텐데, 아쉬웠습니다. 기사의 전체 기조도 전혀 바뀌지 않았습니다. <경남도민일보>를 비롯한 지역 신문들이 한 쪽으로 내몰려 을씨년스럽고 추레하게 서 있는 꼴도 마찬가지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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