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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주간지 <시사인>을 읽던 중 딱 걸리는 단어가 있었다. '진보 언론'이라는 말이었다. 주진우 기자가 쓴 '검찰과 언론의 최열(환경재단 대표) 죽이기' 관련 기사에서 "경향신문·한겨레 등 진보 언론"이란 표현이 나왔다. 또 고재열 기자가 쓴 '친노는 아직 상중 울기 바쁘다'라는 기사도 '조·중·동'과 대비하여 "한겨레신문이나 경향신문 등 진보 언론"으로 표현했다.
그런데 <시사인>뿐만이 아니었다. 언론비평전문지 <미디어오늘>에도 보니 경향·한겨레를 일컬어 '진보 언론'이란 수식어가 일상화해 있었다. 심지어 이 신문의 기사를 보니 민주노총도 두 신문을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작년 2월 <경향신문>에 대한 구독운동을 결의하면서 우문숙 민주노총 대변인이 "진보 언론들에게 민주노총이 뭔가 힘이 될 수 있는 연대 사업을 해 보자…"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착한 언론과 불량한 언론이 있을 뿐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과연 경향·한겨레가 '진보 언론'인가? 그러면 이들 신문보다 더 진보적 성향의 언론이 있다면 뭐라 불러야 할까? '극좌 언론?'
한겨레와 경향신문을 '진보 언론'으로 표현하는 시사인.
그리고, 언론을 꼭 그렇게 진보와 보수, 좌와 우로 나눠서 불러야 할까? 그러면 방송에서는 어느 게 진보고 어느 게 보수일까? 주간지 중에서는? <시사인>은 그럼 '진보 주간지'인가? 과연 어느 정도의 좌파 지향성을 가지고 목적의식적인 기사를 써야 '진보 언론'일까? 신문이, 또는 방송이 그런 사회경제적 체제나 이념적 지향성을 꼭 가져야 하는 것일까?
왜 조선·중앙·동아일보는 그냥 '조·중·동'이라고 하면서, 경향·한겨레는 굳이 '진보 언론'이라 칭하는 걸까?
물론 그렇게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대체적인 보도성향을 보면 경향·한겨레는 시장만능주의(신자유주의)나 강자독식주의에 상당히 비판적인 것 같다. 하지만 지금 한국이 시장만능주의 체제이기 때문에 그건 당연한 것이다.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한국이 사회주의 또는 사회민주주의 체제라고 해도 그 부작용이나 문제점은 거침없이 비판해야 한다.
아울러 올바른 언론은 진보정당과 진보단체도 문제가 있다면 당연히 지적해야 한다. 그 판단의 잣대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여야지, '좌·우'가 되어선 안 된다. 좌든 우든 잘못을 잘못이라 비판하지 않거나 사실을 왜곡하는 언론이 문제이지, 언론 자체를 좌·우로 갈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굳이 분류하자면, 정의로운 언론과 기회주의 언론, 정론지(正論紙)와 사론지(邪論紙), 정통 언론과 사이비 언론, 참 언론과 거짓 언론, 좋은 언론과 나쁜 언론, 착한 언론과 불량한 언론이 있을 뿐이다.
이런 차원에서 나는 조선·중앙·동아일보도 보수 언론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기회주의 언론이다. 무조건 힘 센 놈 쪽에 붙는 게 그들의 속성이다. 일제에 빌붙고, 미 군정에 빌붙고, 독재에 빌붙고, 자본에 빌붙어온 그들의 전력만 봐도 명확하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에 빌붙지 않는 것도 아직은 그쪽이 한국의 지배세력이 되기엔 턱없이 약하다는 기회주의적 판단에 의한 것이다.
만일, 그야말로 진보세력이 한국의 확고한 지배세력으로 자리잡게 되면 그들 신문은 '진보지'를 자임할 게 분명하다. 그들의 보도 잣대가 시시때때로 달라지는 것도 그런 기회주의 속성 때문이다.
'편가르기 프레임'에 말려들면 안돼
정론지에 대한 '우리 편' 의식은 정당한 비판도 수용할 수 없게 만든다. 하지만 정론이라면 진보와 보수를 망라하고 춘추필법을 지켜야 한다.
그들 신문은 좌·우의 숫자를 떠나 한국의 확실한 지배세력이 '보수'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을 '보수 언론'으로 불러주면 좋아할 수밖에 없다. 또한 정론지에게 '진보'나 '좌파'의 수식어를 붙이는 것은 기회주의 언론들이 가장 원하는 바이기도 하다.
'진보 언론'이라는 표현의 또다른 문제는 '편가르기 프레임'에 언론까지 말려들게 한다는 것이다. 어느 편에도 서지 않고(不偏不黨) 사실에 입각하여 준엄한 보도 자세(春秋筆法)를 견지하고 있는 언론까지 '니 편' '내 편'으로 갈라 똑같은 신문으로 보이게 한다. 또한 소위 진보정당과 단체들이 정론지의 정당한 비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도 이런 '내 편 의식' 탓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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