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언론

'여승 지율의 단식'과 '노무현의 자살'

김훤주 2009. 5. 25.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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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 기자가 5월 23일 오후 5시 31분 "'노무현 서거'가 맞는 표현인가?" 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저는 24일 저녁에 이 글을 봤습니다. 보는 순간, 2005년 2월 4일 같은 조갑제 기자가 쓴 "단식 100일? 기자들은 다 죽었다!"가 떠올랐습니다.

당시 양산 천성산 산감이던 지율 스님은 네 번째 단식 100일이 되던 2월 3일 정부와 '석 달 동안 환경영향 공동 조사' 등에 합의하고 단식을 풀었습니다. 고속철도 천성산 관통을 둘러싼 갈등이었고 2002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 후보가 지키지 않은 약속에 대한 목숨 건 추궁이었습니다.

1. 단식 100일 기사는 '보도' 아닌 '대변'?

그러자 조갑제 기자는 앞서 말씀한 기사에서 "기자가 어떻게 초자연적인 현상인 100일 단식을 기정사실처럼 보도하는가?", "지율이란 여승이 100일 단식을 했다는 보도 아닌 대변에 거의 모든 기자와 언론이 가담함으로써 '백주의 암흑'이 연출됐다"고 했습니다.

또 "정부의 항복은 이런 언론과 오도된 여론의 합작품이 아닌가", "왜 기자들은 100일 단식이란 미확인 정보를 이리 크게 보도했던가. 반언론 반사실적임을 아는가 모르는가", "2005년 2월 3일은 한국 언론 치욕의 날로 기억될 것이다. 백주의 암흑, 정보화 시대의 기자 실종 사태인 것이다. 어제 한국의 기자들은 죽었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저는 당시 '지율이란 여승'이라는 말에서 나타나는 '여성차별적 표현'을 '일부러' 골라 쓴 데 대해서는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단식 100일'에 대한 문제제기는 있을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다시 읽어보니 그것은 문제제기가 아니라 그냥 부정이었습니다.

본인 주장은 무조건 믿을 수 없다는, 본인 주장을 뒷받침하는 다른 물증이나 사람이 없으니까 사실과 다르다는 부정이었습니다. 사실 단식에 무슨 물증이 있을 수 있습니까? 서울과 부산 등지를 오가며 단식을 했다고 해서 아니라 할 수 있을까요?

이런 정도 근거를 갖고 조갑제 기자는 미심쩍다는 얘기 정도가 아니라 '말로만 단식을 하고 사실은 단식을 않고 혹세무민한다'는 식으로 몰아쳤습니다. 자기 인식의 한계를 넘어서는 어떤 상황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하거나 못 했습니다. 자기가 모르는 세계니까 그런 것은 있지 않다고 부정해 버리는 어리석음이 한꺼번에 제게 끼쳐 왔습니다.

불교 세계를 제가 잘 알지는 못하지만, 만일 그렇다면 조갑제 기자는 한 해 또는 두 해 아니면 길게는 10년 이상 눕지도 않고 기대지도 않는다는 장좌불와(長坐不臥) 참선은 죄다 거짓으로 여기고, 스님들 세상 떠날 때 바로 서거나 거꾸로 서는 일도 있다는 사실 또한 있을 수 없다고 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 노무현 서거는 안 되고 자살이 맞다?

조선도 서거라 했는데.


조갑제 기자는 이번에 '서거'라 하면 안 되고 '자살'이라 해야 한다고 우겼습니다. 저번에 '100일 단식을 했다'는 기사를 두고 '보도'가 아니라 '대변'이라 했던 것과 비슷합니다. 그런데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 때는 조갑제 기자 본인은 해당이 안 됐지만 이번에는 본인도 해당이 되고 말았습니다.

자기 글 들머리에서 조갑제 기자는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하여 생각이 다를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하는 '서거'라는 용어는 非언론적이고 非과학적이며 非민주적이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조갑제 기자 또한 마찬가지로 4월 13일 쓴 "박정희가 진짜 민주鬪士(투사)였다!"에서 "朴正熙(박정희) 서거 30주년, 역사적 再評價(재평가) 메모"라고 적었습니다.

오른쪽 위에 趙甲濟(조갑제). 왼쪽 중간에 박정희(朴正熙) 서거.

저는 박정희를 더할 나위 없는 독재자이며 그에 앞서 비열한 기회주의자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조갑제 기자는 이렇게 생각하는 저에게서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하여 생각이 다를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한 것입니다.

더구나 조갑제 기자는 이어서 "전직 대통령이 죽었을 때 逝去(서거)라는 표현을 해왔다.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10.26 사건 때 김재규에 의하여 피살되었을 때도 언론은 '서거'라고 표현하였다. 이런 표현법이 과연 옳은 것이지 검토해볼 만하다"고 했습니다.

3. '피살' 박정희는 '서거'라 하면서

말하자면 조갑제 기자는 한 입으로 두 말을 한 정신분열인 셈입니다. 아니면 자기가 앞에 썼던 '서거'라는 말을 미처 '피살'로 고치지 못했든지. 조갑제 식으로 하자면 노무현은 '자살'이고 박정희는 '피살'이라는 얘기인데 그러고 보니 좀 이상하네요. "박정희 피살 30주년"이라……. 하하.

바로 뒤에 나오는 문장도 똑같습니다. 그래서 '노무현' 대신 '박정희'를 넣어 봤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죽음을 '서거'라고 표현하는 데 대하여 불만을 가진 이가 많다. '서거'라는 용어 선택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존경하지 않는 사람들에게까지도 '애도'를 강제하는 '유도성'이기 때문이다."

뒤이은 문장에서도 저는 웃다가 눈물이 나올 지경이 됐습니다. "노무현 세력이 만든 '열린우리당'이란 당명은 당원이 아닌 사람들에게까지도 '우리당'이라고 읽게 하는 일종의 사기적 작명이었다." 제가 한 번 모방을 해 보겠습니다.

"박정희 세력이 만든 '민주공화당'이란 당명과 전두환 세력이 만든 '민주정의당'이란 당명은 실제로는 반민주독재당이면서도 읽은 사람에게는 '민주'와 '공화'와 '정의'를 강요하는 이종(!)의 완전한 사기 작명이었다."

또 나옵니다. "6년 전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이 대북송금 사건 수사를 받던 중 자살하였을 때 언론은 '정몽헌 회장 자살'이라고 보도하였지 '정몽헌 회장 서거'라고 쓰지는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험담을 듣고 자살한 전 대우건설 사장에 대하여 '남상국 서거'라고 보도하였던 적이 있는 언론이라면 '노무현 서거'라고 보도할 자격이 있다."

그러면, 박정희 옛날 대통령에 대해 '피살'이 아니라 '서거'라고 보도했으니까, 조갑제 기자의 '조갑제 닷컴'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을 두고 '노무현 서거'라고 보도할 자격이 충분할 텐데 왜 그리 하지 않는지 궁금합니다. 지금이라도 고치시지요.

4. 친정 '조선' 감싸기는 잘하네

게다가, 마지막 대목은 친정 식구 싸고돌기의 표본 또는 모범이라 할만합니다. 만약 우리 <경남도민일보>가 같은 경우였다면 조갑제 기자는 '눈 가리고 아웅 한다'면서 잡아먹을 듯이 덤볐을 것입니다. 가소롭지 않습니까?


"조선일보 사설은 死去(사거)라는 표현을 했다. 別世(별세)라는 표현도 서거보단 무리가 없다. 요컨대 死者(사자)의 신분에 따른 차등적 표현은 평등하지도 민주적이지도 않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조선일보 호외를 보면 1면 제목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2~7면 '헤드'가 '노 전 대통령 서거', 8면 '헤드'는 '노 전 대통령 서거 / 파란만장한 생애'이며, 7면 사설 제목 또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를 애도한다"입니다. '서거' 투성입니다.

조갑제 기자,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모른 척했습니다. 지율 스님 단식 100일을 (조갑제 식으로) 확인하지 않았다고 "기자들은 다 죽었다"고 외쳤던 이가 이래도 될까요. 아마, 지금 조갑제 기자는 조금 전 모른 척하는 순간에 죽어버린 대신, 강시 또는 좀비(zombie)가 됐을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치사 빤쓰이거나. 하하.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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