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언론

언론노동자 특권의식 과연 문제 없나?

김훤주 2009. 5. 19. 10:22
반응형

언론인 구속은 안돼도 노동운동가 구속은 괜찮나?

<2009 한국언론정보학회 봄철 정기학술대회> 16일 낮 2시 서강대학교에서 열렸습니다. 주제는 '
부유한 미디어, 빈곤한 민주주의(Rich Media, Poor Democracy)'였습니다. 저더러 전규찬 공공미디어연구소 이사장께서 발제를 맡기셔서 이날 한 말씀 올렸습니다.

'특별 세션 1 제작 현업과 언론학계, 시민사회의 상호 교통 테이블'에서, '현업 저널리스트, 언론학계와 시민사회에 딴지를 걸어보다'는 제목 아래 했습니다. 연락을 너무 늦게 받았기에 충분히 준비를 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15일 하루 꼬박 머리를 굴린 끝에 발제문을 작성했습니다. 발제문을 새로 구성해 올립니다.  

1. 발제 내용이 충분하지 못한 까닭

먼저 사정 설명부터 좀 드려야 하겠습니다. 제가 오늘 한국언론정보학회 행사 연락을 받은 때가 5월 11일 정오 무렵이었습니다. 밀양에서 취재를 마치고 경남도민일보가 있는 마산으로 돌아가는 자동차 안이었습니다. 16일 토요일 오후 2시 토론회가 있는데 참석해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두 말 않고 하겠다 했습니다. 전화를 주신 분이 제가 좋아하는 분이기도 하고, 서울에서 불러주니 고맙기도 하고 해서 그랬습니다. '지역 신문 현업 기자'로서 하고 싶은 말을 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대상은 '미디어 활동가'와 '언론학계'라 했습니다. '언론학계'에는 '대학 지식인'도 들어간다 했습니다.

화요일(12일)과 수요일(13일)은 제가 신문 지면을 각각 생태와 책 소개로 한 판씩 채워넣어야 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이틀 동안은 아무 준비도 하지 못했습니다. 목요일 14일 저녁에야 조금 시간이 났습니다. 15일 금요일에는 제가 미처 쓰지 못한 다른 글들을 좀 써야 했습니다. 오늘 제 발표 내용이 '인상 비평'밖에 되지 못하는 까닭을 말씀드린 셈입니다.

2. 지역에도 내면화돼 있는 '서울 중심성'

제가 <경남도민일보>라는 '지역 신문'에 있으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 바는 모두 짐작하시는 바대로 '지나친' 서울 중심 경향입니다. 서울 중심 경향은 그야말로 지나쳐서 지역에 사는 이들에게도 그것은 내면화돼 있습니다. 이번 노무현 관련 보도가 한 보기가 되겠습니다. 노무현 관련 보도를 다른 매체들에 견줘 많이 하지 않았는데도 <경남도민일보>는 안팎에서 지나치지 않았느냐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데스크로서는 여태 해온 경험도 있고 다른 신문과 적당하게 분량을 맞춰야 한다는 판단도 있었습니다. 안팎에는 이에 동의하지 않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었고 동의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헬리콥터를 띄우고 봉하 마을에 취재진이 그렇게 진을 쳐야 하는 사안이냐에 대해서는 판단이 다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전체 흐름입니다. 서울에서 나오는 매체들이 그렇게 방향을 잡으면 다들 그렇게 갑니다.

<경남도민일보>부터 반성합니다. 다르게 갈 수 있다는 생각을 아예 하지 못했습니다.(다르게 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노무현 관련 보도를 많이 한 것하고 아무 생각도 못하고 그렇게 한 것하고는 크게 다르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개개인은 그리 생각을 했을 수도 있겠지만, 시스템 또는 조직으로서는 그리 못했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데 대한 반성이나 지적이 제 눈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물론, 서울에서 발행되는 신문이나 방송의 이런 보도 성향에 대해서는 아마 지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국에 있는 여러 '지역 신문'들이 이번 노무현 관련 보도를 어떻게 했는지에 대한 조사 비교 대조 연구 평가는 여태 없었을 것입니다.


3. 지역 신문 '깜냥'이 되는지도 따져봐야

조금은 다른 얘기입니다만, 2008년 5월 7일 <미디어오늘>이 보도를 했습니다. "경향신문이 마지막 남은 비정규직 17명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이것은 기사거리가 충분히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경남도민일보>는 2005년인가에 벌써 비정규직을 한 명도 두지 않기로 했습니다. 여기에는 아무도 관심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물론 서울-지역의 문제에 겹쳐서, <경남도민일보> 자체가 지니는 무게가 적어 그런 줄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일이 미디어라는 동종 업계 내부에서만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경향신문은 민주노총과 협약을 해서 신문 정기 구독과 비정규직 기금을 서로 주고받았습니다.

<경남도민일보>도 그에 앞서 민주노총 경남본부와 마찬가지 작업을 하려 했지만 알아보니 씨알도 먹히지 않겠다 싶어서 그만뒀습니다. 다른 신문 눈치 보여서 하기 어렵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경남도민일보> 비중이 지역에서조차 적다는 방증입니다.

4. 지역신문 연구는 돈이 안 된다?

미디어 활동가들은 서울에 몰려 있다는 사실 때문에 지역 신문에 관심을 두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반면 언론학계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저는 봅니다만, 언론학계가 지역 신문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데 대해서도 저는 진심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언론노조 지역신문위원회와 지역신문협회에서 토론회를 하려 하면 바로 발표자 문제에 걸립니다. 학계에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일본을 비롯해 외국 사례 연구를 부탁하고 싶어도 맡아 줄 학자가 없습니다.

미디어 오늘 안경숙 기자가 보내주신 사진입니다. 제가 오른쪽에 서 있습니다. 앉아 있는 이는 왼쪽부터 이강택 이근행 유선영 이기형 양문석입니다.


돈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돈이 안 되는데도 토론회 할 때 와 주시는 분이 통 없지는 않으니까 그런 분에게는 진짜 고맙습니다. 물론 전체로 볼 때 돈 따라 움직이는 현실은 인정해야 마땅합니다. 지역 신문보다는 서울 신문, 신문보다는 방송, 방송보다는 통신 이런 쪽으로 학계의 관심도 쏠리고 있는 줄 압니다. 그래서, 사실은 학계에는 크게 기대를 하지 않습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야 속이라도 편하니까요. 지역 신문 종사자들끼리 잘 해 보자 하는데 이것도 잘 되지 않습니다. 저마다 놓인 처지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우리 공장-<경남도민일보>라도 잘해 보자 하지만 이 또한 쉽지 않습니다. 생각과 경험과 전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우리라도(또는 나라도) 잘해 보자 하는 데까지 왔습니다.(이것은 어쩌면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겠는 대목입니다.)

5. 커다란 미디어, 조그만 민주주의

'부유한 미디어, 빈곤한 민주주의'가 이번 한국언론정보학회 봄철 정기 학술대회 주제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 말을 보고 제게 떠오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커다란 미디어, 조그만 민주주의'였습니다. <한겨레>가 1988년 창간됐고 그것이 시대 흐름에서 보면 당연(당위이면서 동시에 필연)한 일이었지만 가장 바람직한 결말은 아니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당시에는 물론이고 지금도 뜬금없다는 소리를 들을 얘기겠지만, 전국 단위가 아닌 광역 단위 일간지를 만드는 것입니다. 부유한 미디어-빈곤한 민주주의도 맞지만, 커다란 미디어-조그만 민주주의도 맞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의 바탕에는(아직 갈피조차 제대로 잡히지 않았지만) '(지역) 사회의 재구성'이라는 문제의식이 있습니다. 뒤집어서, (지역) 사회의 재구성이 이뤄지지 않고서는 미디어가 살아남을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지역) 사회가 정보와 담론의 유통(생산과 소비까지 쳐서)을 서로가 서로에게 책임을 져 줄 수 있으려면 어떻게 재편돼야 하겠는지, 진지하게 검토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결국 사람의 문제로 돌아가는 측면도 작지 않겠지만, 그래서 상대적이겠지만, 미디어의 크기도 저는 문제가 된다고 봅니다. 미디어가 작을수록 거기에 담기는 민주주의는 커지고 알차진다, 이런 생각입니다. 아울러 '(지역) 사회의 재구성'을 목표로 삼는 운동을 하면서 그에 걸맞은 매체를 만들어보는 방향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싶습니다.

개인 생각으로는, <경남도민일보>도 '커다란' 축에 듭니다. 구성원 전체의 깜냥은 얼마 안 되는데, 지역 사회와 관련성은 얼마 안 되는데 포괄하는 범위는 지나치게 넓습니다. 이와 관련해, <경남도민일보> 사장 내정자(서형수 한겨레 전 사장)께서, '지역 주간지 직접 창간'과 '우호 협력 관계 확보'를 말씀했는데 저는 여기에 아주 크게 흥미와 관심이 있습니다. 내포와 내실을 다지고 알차게 하는 핵심이겠다 싶은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이런 데 대한 연구나 검토 결과를 미디어 활동가나 언론학계 종사자 여러분께서 내어 주시면 아주 좋겠습니다.

6. 가난한 미디어끼리 연대 필요

나아가, '가난한 미디어, 풍성한 민주주의'를 전제로 말씀드리면 신문-방송-통신의 융합이 필요하다고 저는 봅니다. 가난한 신문 가난한 방송 가난한 통신이 지역 사회를 단위로 모여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종이신문은 이미 운명이 끝났습니다. 융합을 하지 않으면 '가난한 매체'들은 정보와 담론을 갈수록 적게 다룰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여기서 방송이나 통신은 지역 MBC 지역 KBS 지역 민방(사실은 상방商放이지요.) 유선 방송 따위를 이르는 말이 아닙니다. 잘은 모르지만 진보신당의 '칼라TV'라든지 '소규모 라디오 방송국' 따위가 되지 않을까 모르겠습니다. 이런 부분에 대한 연구나 검토 결과도 내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7. 보도 매체 급여는 좀 적어야 한다

나머지 몇몇 말씀 여쭙습니다. 매체 종사자들 급여가 지나치게 많다고 생각지는 않으십니까? 2009년 2월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07년 근로자 한 달 평균 임금은 257만7000원입니다. 제 짐작이기는 한데 여기에는 이른바 근로자가 받는 실비는 아마 들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조세 공과금을 떼기 전에 금액입니다.

통계청은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임금 수준은 사무직을 100으로 잡았을 때 고위임직원 및 관리자는 188.9, 전문가 기술공 및 준전문가는 113.8으로 높습니다. 반면 서비스판매 종사자는 69.8, 농림어업 종사자는 74.1, 기능원 장치기계 조작 종사자는 85.9, 단순 노무 종사자 54.7로 낮았습니다.

기자들이 시내버스를 타고 다니면 시내버스 기사가 많이 나옵니다. 자가용 자동차를 많이 타고 다니면 자가용 자동차 기사가 많아집니다. 기자들이 골프를 치러 다니면 골프 지면이 늘어납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니는 기자들은 촌지 기사를 씁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아이가 중학교 고등학교 가니까 그런 데 관심이 없어졌습니다.
 
언론을 산업으로만 보면 이런 논의는 아예 의미가 없겠지만, 공공성과 공익성을 좇는다는 측면에서 보자면 매체 종사자들이 사는 수준을 어느 정도로 하면 좋겠는지도 진지하게 따져봐야 합니다. 저는 이런 면에서 기자 급여는 전체 평균의 80~90%가 알맞다고 봅니다.(물론 여기에는 여러 변수가 작용할 것입니다만.)

8. 언론노조나 기자협회는 성역인가?

한국기자협회나 전국언론노동조합에 대한 비판은 참 보기 어렵습니다. 술자리에서 하는 사사로운 비판 말고 활자로 방송으로 하는 공공연한 비판 말입니다. 언론노조는 노동자 의식이 모자라다는 면에서 비판을 받아야 하고, 기자협회는 허위의식과 특권의식을 빼면 곧바로 무너지고 말리라는 점에서 비판을 받아야 합니다.

특히 기자협회는 전문직 이익단체라면 대부분 조금이나마 갖추고 있는 자정(自淨) 기능이 거의 없습니다. 쌀직불금 부당하게 받은 '언론인'이 있다는 말만 나왔지, 그 언론인이 기자인지 아닌지 기자협회 회원인지 아닌지조차 거론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9. '언론' 종사자의 특권의식

불법 파업을 했는데도 박성제 MBC 직전 본부장은 잡혀 가지 않았고, YTN 노종면 지부장은 잡혀간지 얼마 되지 않아 곧바로 풀려났습니다. 그이들이 잡혀가서 실형을 살아야 옳다는 얘기는 전혀 아니고 오히려 거꾸로입니다. 'MBC' 본부장이나 'YTN' 지부장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노동운동가도 최소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다른 모든 민주주의 활동가들도 이런 대우를 최소한으로 받아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은 거의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저랑은 말과 생각과 행동이 모두 다르지만) 민주노총 이석행 위원장이 저리 구속돼 있는 사실을 두고 조금이라도 이상하게 여기는 '언론인'을 저는 보지 못했습니다. 불법을 똑같이 했는데도 누구는 구속되고 누구는 구속되지 않으면 그런 상황은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내심, 은연 중에, 같은 불법을 했어도 민주노총 위원장은 구속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깁니다.(민주노총 역대 위원장 가운데 구속되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는데도, 한 나라의 총연맹 위원장을 이토록 마구 구속하는 데 대한 비판기사를 저는 보지 못했습니다.) 반면, MBC 본부장은 구속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지요.

이를 두고 이른바 '언론' 이른바 '언론계' 이른바 '언론인'의 특권의식이라 하면 지나친 말이 될까요? 이런 인식의 지평은 언론노조 스스로가 넓히기가 어렵습니다. 제가 생각해 볼 때, 미디어 활동가를 자처하시는 분들이 좀 맡아줘야 합당하겠지 싶습니다.

10. 신문 불법 경품에 관심 없는 학계

신문 등의 자유와 기능 보장에 관한 법률에 대해서입니다. 10조(독자의 권리보호) 2항(신문사업자는 구독자의 의사에 반하여 구독계약을 체결ㆍ연장ㆍ해지하거나 불공정거래행위에 해당하는 무가지 및 무상의 경품을 제공하여서는 아니된다.)은 불법 경품을 다룹니다. 15조는 신문방송 겸영금지를 다룹니다.

미디어 활동가와 언론학계는 대체로 10조 2항은 관심밖이고 15조에만 매달립니다. 한나라당은 개정안에서 10조 2항 등을 삭제했습니다. 국회 전문위원이라는 것들은 이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를 두고 특히 언론학계에서 발언과 행동을 해야 합니다. 적어도 조중동 독과점이 문제라고 여기시는 학자라면 말입니다.

김훤주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