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굳이 이런 이야길 하지 않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경남도민일보 창간주주였다. 1999년 2월 당시 국회의원이자 새정치국민회의 부총재였던 그는 경남의 시민주주신문 창간에 힘을 보태달라는 우리의 부탁에 흔쾌히 200주를 청약했다. 청약자 서명은 내가 대리서명했다. 날짜가 적혀 있진 않지만, 99년 2월 8일이었다. 위에는 김두관 전 장관의 청약서. 2001년 3월 경남도민일보 편집국에서 신문을 보고 있는 노무현. 2002년 12월 14일 창원공설운동장 앞 유세에서.
당시 나는 그를 포함해 몇몇 개혁 성향 국회의원을 상대로 주식청약을 권유하는 역할을 맡았는데, 이렇게 흔쾌히 청약해준 이는 노무현 뿐이었다. 이렇게 그는 6200명의 시민주주 가운데 한 명이 되었다.
경남도민일보 '시민주주'였던 노무현
거절한 이들은 "정치인이 특정 신문의 주주가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하지만 사실은 타 언론의 눈치 때문이거나 아직 창간하지도 않은 지역의 작은 신문에 대한 무시임이 분명했다. 자치단체장 중에서는 김두관 당시 남해군수가 역시 200주를 청약해줬다.
이후 '국민의 정부' 해양수산부 장관이 된 2001년 3월 노무현은 경남도민일보를 직접 방문해 당시 이순항 사장으로부터 주식증서를 받았다. 그날 편집국 한켠에서 그를 인터뷰했는데, '창간주주로서 지역언론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이를 주도하는 언론이 중앙에만 집중해 있을 경우 지방은 쇠퇴할 수밖에 없고 다양성이 살아나지 못한다. 지역언론이 지역사회 발전의 견인차가 되어야 하는 것은 그런 이유다."
민주당 대선후보가 되었을 때도 마산에서 인터뷰를 했다. 2002년 11월 10일 마산 사보이호텔에서였다. 그 때도 나는 언론노조가 추진 중이던 '지역신문 육성을 위한 특별법'에 대한 견해를 물었고, 그는 이렇게 답했다.
"지역언론 부분은 아주 중요하다. 중앙언론이 자금력을 앞세워 불공정한 경쟁으로 잠식하는 게 문제다. (…) 지방언론 육성을 위한 확실한 대책을 수립하겠다. 특별법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본다."
보도연맹사건 등 민간인학살 문제에 대해서도 물었다. 그의 대답은 이랬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작업은 국가의 의무다. 이념적 대결을 이유로 진실을 덮을 수는 없다. 전국적으로 동일한 기준으로 은폐된 진실을 밝히고, 밝혀진 진실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것은 국민의 의견을 듣겠다. 모든 것을 원상태로 할 순 없지만 진실은 밝혀야 한다."
노무현이 지킨 두 가지 약속과 마지막 선물
그는 이 두 가지 약속을 지켰다. "중앙언론이 자금력을 앞세워 불공정한 경쟁"을 하는 데 대해선 불법 경품에 대한 신고포상제를 도입했고, 6년 한시법이긴 하지만 '지역신문발전지원법'도 제정했다. 그는 또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도 만들어 진실규명이 가능토록 했다. 대통령으로서 과거의 국가범죄에 대해 사과도 했다.
이건 지역신문에 종사하는 언론노동자로서, 그리고 민간인학살 진상을 알려온 기자로서 노무현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업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업적은 이명박 정부 출범 후부터 모든 게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해있다. 한나라당과 정부는 신문법에서 불법경품 단속의 근거가 되는 조항을 아예 삭제하려 하고 있고, 신문고시도 폐지하려 한다. 또 과거사 진실규명 작업에 대한 힘빼기와 발목잡기도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대통령 5년 임기가 끝나면 고향인 김해 진영에 와서 살겠습니다. 이건 공약입니다."
그는 이 약속도 지켰다. 하지만 이제 그는 봉하마을에 없다.
그의 빈소가 차려진 봉하마을에서 이틀 밤낮을 지내는 동안 가장 많이 들은 두 가지 말이 있다.
"그냥 시골에서 그렇게 살도록 내버려두지."
"이게 무슨 아방궁이야. 순전히 거짓말이구만."
전자는 이명박 정권의 정치보복과 권력남용에 대한 원망이었고, 후자는 조중동 등 수구언론의 허위보도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그렇다. 노무현은 자신의 죽음으로 현 정권과 조중동의 실체를 만천하에 알려준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바보 노무현이 자기 몸을 날리면서까지 우리에서 주고 간 마지막 선물이다. 이 선물을 어떻게 쓰느냐는 것은 살아있는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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