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죽은 이은상을 욕보이는 문인들

김훤주 2009. 5. 30.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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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마산문인협회(회장 강호인)와 경남시조시인협회(회장 서일옥)는 '마산'문학관을 '노산'문학관으로 바꾸는 운동을 벌이겠다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결정했습니다. 알려진대로, '노산(鷺山)'은 이은상(1903~1982) 시조시인의 호입니다.

이은상은 일제 강점기 시조부흥운동에 앞장섰으며, 1940년대에는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일제에 붙잡혀 가기도 했습니다. 이런 사실에다 언젠가부터 이은상이 쓴 '가고파'가 마산 대표 작품으로 슬그머니 자리잡은 현실이 더해졌습니다.

마산문협이 대표적인데, 이런 사실을 근거로 이은상을 기리려는 움직임을 줄곧 일으키고 있습니다. 마산문협은 올해 초 "회원 112명 가운데 97.32%인 109명이 '노산문학관'에 찬성하고 반대는 3명뿐이다"고 공개했습니다. 제가 알기로 반대 셋은 우무석 시인와 송창우 시인과 이성모 평론가입니다. (찬성 가운데 43명은 "아무 연락도 하지 않아" '묵시적 동의'로 '간주'된 숫자랍니다.)

그들은 왜 이은상을 부활시키려는가?

독재 부역 문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은상.

강호인 회장은 5월 3일 '마산 시의 도시 선포 1주년 기념 문학 축제' 기념사에서 "문학관 명칭이 논란이 되고 끝내 애초의 이름을 잃어버린 한 시인의 통곡이 마산의 하늘을 떠돌고 있는 것이 아닌지" 물었습니다. 그러면서 "'가고파'의 시인으로 한국문학사의 영원한 태산북두라 할 노산 이은상 선생님을 기리는 일에 한 마음으로 함께 해주시길 감히 청원드린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문학관 이름은 1999년부터 2005년까지 6년 동안 논란을 벌인 끝에 이미 정리가 된 사안입니다. 2005년 '마산문학관'으로 문을 열 때 끝난 일인 것입니다. '문학에 공헌이 있고 조선어학회 사건 등 독립운동을 했지만, 반민주 친독재 경력에 비춰 공공의 영역에서 기릴 정도는 아니다'는 것이었습지요.

그럼에도 3년 남짓만에 경남시조시인협회와 마산문인협회가 다시 이 문제를 들고 나왔습니다. 왜일까요? 이런 정황을 보면서 어떤 이는 "이은상이 참 불쌍합니다"고 했습니다. 그이는 말했습니다.

"이은상은 과오도 적지 않습니다. 그이가 받은 빛이 센 만큼 그림자도 짙은 것이지요. '노산으로 바꾸자'는 주장이 제기되면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이를 기리면 안 된다는 증거를 대기 위해서라도 잘못을 자꾸 찾아낼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이처럼 죽은 뒤에도 끊임없이 불려나와 지난날 잘못을 조아려야 하니, 이은상이 안 불쌍하면 도대체 누가 불쌍하겠습니까!"

열린사회 희망연대가 마산문학관의 명칭 변경 시도를 규탄하고 있다.


이은상은, 1960년 4월 15일자 <조선일보>에서 3·15의거를 모독했음이 분명합니다. 그 해 4월 11일 김주열의 주검이 마산 앞바다에서 떠올라 2차 의거가 진행되던 시점에 그이는 3·15의거를 두고 "지성을 잃어버린 데모다! 불합리와 불법이 빚어낸 불상사다!"라 했던 것입니다.

이러니 같은 마산에 있는 3·15의거기념사업회(회장 백한기)는 이은상과 공존하기 어렵다고 볼 수밖에 없지요. 이은상의 잘못을 찾아내 그것을 근거로 '노산문학관은 안 된다'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 놓고 보면, 3·15의거기념사업회가 5월 12일자 <3·15의거보> 제2호에서 "이은상이 친일파 문명기를 '축복받은 기업인으로 사회사업가로만 꾸며 왜곡'시킨 묘비문을 썼다"고 다룬 것은 당위라 할 수 있습니다.

이같은 이은상 행적 조사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런 정도로 그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승만·박정희 아래 호사를 누린 이은상은 전두환 집권 뒤에도 양지만 골라 디뎠음은 이미 알려져 있어 따로 조사할 일도 못 되는 것입니다. 1980년 <정경문화> 9월호 '새 대통령에게 바란다'에서 "한국의 특수한 상황으로 보아 무엇보다도 강력한 지도자를 원하는 것이 거의 일반적 여론"이라 했고, 그 때문인지 이듬해 4월 국정자문위원으로 위촉됐습니다.

시민단체의 이은상 독재부역 사진전.


이은상을 '이용'하려는 의도는 없는가?

이런 즈음에서, 이은상을 이처럼 불쌍하도록 만드는 이들에게 다른 의도나 속셈은 없는지 짚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은상을 이리 욕보이는 대가가 무엇인지도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산문협은 "'노산'문학관으로 바꿈과 함께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터 달라"고 했습니다. 한편에서는 사무 공간 확보나 금전 지원 얘기도 나옵니다. 그리고 "운영에 참여해" 사업을 하다 보면 반드시 '자리' 얘기도 나올 것입니다.
    
말하자면 '노산'문학관으로 이름을 바꾸는 일과 '자리' '공간' '금전'이 한 데 섞여 있습니다. '자리' '공간' '금전'을 가지면 그것이 바로 '권력'입니다. 무엇이 수단이고 무엇이 목적이다 잘라 말하기는 '거시기'합니다만, '죽은' 이은상을 잘만 성공적으로 활용하면 그 결과가 크든작든 권력을 누리는 것이 됨은 아니라 하기 어렵습니다.

하나만 더 얘기해 두고 싶습니다. 마산을 두고 "'가고파'의 고장", 무슨 행사를 열어도 "가고파 제전" 이리 이르는데, 실상 '가고파'에는 마산 사람의 정서가 없습니다. 거기에는 다만, 이은상 시조시인처럼, 마른 땅만 양지만 골라 디딘 이은상처럼 고향을 떠나 서울 등지에서 사는 마산 '출신'들의 정서가 담겨 있을 뿐이랍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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