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노무현에 대한 부채의식과 무력감

김훤주 2009. 5. 27.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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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아무런 은원(恩怨)이 없습니다. 같은 길을 함께 걸은 적도 없고 서로 마주 달려나와 부딪혀 싸운 적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2002년 대선을 치를 때 제 관점은 이랬습니다. '노무현과는 경쟁 협력 관계다, 이회창과는 적대 배제 관계지만…….'

그러니까 제게 노무현과 노사모, 열린우리당 등등은 '따로 또 같이' 또는 '같이 또 따로'의 상대였습니다. 때때로 또는 자주, 같이 할 일이 있으면 같이 하고, 같이 할 수 없는 일이라면 저마다 따로따로 하면 그만이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1. 한 선배의 노무현에 대한 부채의식

그런데 앞서 노동운동을 하신 선배들 가운데에는 노무현에게 어떤 부채의식을 느끼는 분들이 적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어제 25일 밤에, 전화가 왔습니다. 80년대 중·후반에 노동조합을 만들고 노동운동을 벌였던 선배였습니다.

"야, 이렇게 가다니……, 그래도 일국의 왕인데, 왕을 지낸 사람인데……." 그렇습니다. 왕이라 했습니다. 그렇다 해도 여기서 전제군주를 떠올릴 필요는 없습니다. 편하게 말하자면 그래도 한 때 대장이었는데, (이렇게까지 까뭉개다니) 정도일 것입니다.

"그 어른(노 전 대통령을 그 선배는 이렇게 일렀습니다.)이 내보다 딱 열 살 위엔데, 23일 뛰어내렸다는 얘기를 듣고 이틀 동안은 텔레비전 라디오를 보다가 이제는 아예 보지를 않네. <불'면'의 이순신>만 틀어놓고 있네."

"자네도 알잖아. 노무현이 무엇을 했는지, 그 시절에 누가 우리 편 들어줬나, 그 때 했던 우리들한테 그 어른이 크게 도움을 줬지. 힘들었지……. 내 노무현이를 찍지는 않았지만 생각은 하고 있었네. 잊을 수는 없잖아."

허전해 보였습니다. 아마 술이라도 한 잔 들고서 전화를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대로 옮기지도 못하겠습니다. 말씀이 이리저리 좀 갈피없이 오가는 듯도 했기 때문입니다. 어쨌거나 요지는, '우리'를 참 많이 도와줬는데, '우리'는 그이를 제대로 돕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그 선배는 오늘도 <불'면'의 이순신>에다 텔레비전 채널을 고정해 놓았을 것입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듣고 또 하기가 마땅찮은 모양입니다. 그이는 옛날 마산 창원에서 노동운동을 하던 노동자들을 도와준 노무현을 떠올리고 있을 것입니다.

알려진대로 노무현은 81년 부산 지역 학생운동의 부림사건을 변호함으로써 인권 변호사의 길로 나섰습니다.('부림사건'이라는 이름은 공안당국이 붙여줬는데, 서울에서 무림-학림 사건이 터지자 같은 항렬로 '림'을 넣어 지었다는군요.)

당시 마산과 창원과 거제에는 죽은 듯이 보이는 속에서도 아마도 84년인가 85년인가부터는 창원 통일과 기아기공·한국중공업, 거제 대우조선과 삼성조선 등에서는 노동운동이 진행되고 있었고 여기서 사건이 터지면 부산 쪽 인권변호사들이 변론을 맡았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87년 노동자 대투쟁이 터져나왔는데, 여기서 노무현 '변호사'는 이미 알려진대로 거제 대우조선 이석규 열사 사건에서 '제3자 개입 금지 위반'으로 구속되기가지 했습니다. 경남 일대 노동운동이 노무현에게 빚을 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라 하겠습니다.

저는 당시 마산 봉암공단의 조그만 공장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50명 정도 되는 규모였는데, 그해 7월 말, 여기서 무슨 '쟁의 비슷한 것'이 생겼을 때 '조금' 나서는 바람에 '너는 도저히 안 되겠다.'고 해고 같지도 않은 해고 통지를 받았더랬습니다.

어쨌거나, 저는 아무런 부채의식이 없는데, 선배 되는 이는 아무래도 고마움과 미안함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있었나 봅니다. 그런 부채의식을 안고 사는 한가운데에, 그리고 지난 대선 때 표를 주지도 못했는데 이런 참담한 일이 터지니 참으로 아프고 슬픈 모양입니다.

2. 한 후배의 무한 잔인 폭력에 대한 무력감

이렇게 부채의식 때문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때 아닌 '서거'를 참담하게 여기고 그이를 지키는 데 힘을 보태지 못한(또는 보탤 수 없었던) 데 대해 안타깝고 아프게 여기는 이들이 있는 한편으로, 권력의 무한 잔인 그리고 무한 폭력 앞에 허탈해진 사람도 있었습니다.

마찬가지 어제 25일 밤에, 알고 지내는 한 후배가 전화를 했습니다. "왜 이런지 모르겠어요. 노무현 죽었다는 얘기 처음 들었을 적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온통 무력해지고 멍해지네요."

저는 말해 줬습니다. "그래, 나도 그렇네.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글도 아예 써지지 않는다. 뭔가 적어서 올려야겠다 생각은 드는데, 글이 자꾸 꼬이고 꼬여 말을 듣지를 않네. 답~답~하다."

술 마셨느냐 물었습니다. 아니라 했습니다.(그러고 보니 저도 며칠 동안 술을 참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이어 말했습니다. "그래도 대통령을 지낸 사람인데, 그런 사람조차 저토록 피투성이가 돼서 죽도록 만든 권력이라면 무슨 말이 필요하겠어요……."

그이는 이명박 대통령과 이명박 정부가 밉지도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냥, '질리기만' 할 뿐이고, '징그럽기만' 할 뿐이고, (노 전 대통령과는 생각이 다르지만) 그이를 죽음에 이르게 만든 인간들이랑 같은 땅에 발 딛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럽기만' 하다고 했습니다.

3. '너무 많이 기대한 우리가 잘못인지……'



이쯤 되니까, 그저께 받은 이메일이 떠오르더군요. 사귄지 2년 된 분이 보냈는데, 여기서 일일이 그 내용을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어제 많이 울었다", "너무 많이 기대한 우리가 잘못인지, 아니면 기대하도록 만든 노무현이 잘못인지 잘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제가 읽는데, 이 '기대'라는 낱말이 자꾸 흐려졌습니다. 이를테면 눈물이 나와서 그런 것이 절대 아니고요, '아무리 많이 맞고 아무리 크게 당해도 반드시 다시 일어서고 말리라'는 기대를, 우리가 스스로도 몰래 품었음이 분명하겠다 싶어서였습니다.

저는 그저께 밤 이 메일을 열어보고는 답장도 하지 않은 채 곧바로 잠들었습니다. 그러고는 아침에 일어나 신문을 봤습니다. 한 신문 1면에는 장대비가 내리꽂는 가운데서도 꼼짝 않고 조문 차례를 기다리는 사진이 있었습니다. 다른 신문 1면은 그렇게 서서 기다리는 행렬이 4km 남짓 이어져 있는 사진을 실었습니다.

두 사진을 겹쳐놓고 보는데, 뜻하지 않게 삐질삐질 눈물이 나왔습니다. 얼굴이 찡그려지면서 '으으' 신음까지 났습니다. 하지만 저는 곧바로 눈물을 훔치고 얼굴을 씻고는 '쌩깠습니다.' 중학교 3학년 우리 딸이 깨어나 "아빠 왜 울어?" 이러면 대답할 말이 '너무너무' 궁했기 때문입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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