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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가 주최한 부산공청회에 야당 추천 공술인(公述人)으로 참석했다. 그런데 이번 공청회는 준비단계에서부터 뭔가 이상했다.
우선 이틀 전인 4일 오전까지 한나라당 추천 공술인들의 명단조차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날 오전까지 발표할 원고를 보내달라고 했다.
미디어발전국민위 홈페이지(http://newmedia.na.go.kr)에 공청회 공지가 올라온 것도 4일 오후였다. 무릇 공청회란 '국민의 여론이나 전문가의 의견을 듣기 위한 공개회의'를 뜻한다. 그렇다면 사전에 충분한 시간을 두고 미리 개최사실을 알려야 한다. 명색이 국회의 사회적 논의기구라는 데에서 이런 식으로 한다는 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뒤늦게 밝혀진 한나라당 측 공술인들의 면면도 이상했다. 위원회가 전국을 5개 권역으로 나눠 지역별 공청회를 연다는 것은 해당 지역의 여론을 듣자는 취지였을 게다. 그런데 부산지역 공청회에 전남대 주정민 교수가 모두(冒頭陳述)을 한다는 것도 의아했고, 서울의 숭실대 강경근 교수와 이화여대 유의선 교수가 공술인으로 온다는 것도 황당한 일이었다.
공청회 자료집도 턱없이 모자랐다. 몇 권을 인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절반 이상의 청중이 자료집 없이 듣기만 할 수밖에 없었다.
좋다. 그것까진 처음이라 있을 수 있는 시행착오였다고 이해하자.
공청회 진행은 한나라당 추천인사인 김우룡(한양대 석좌교수) 공동위원장이 맡았는데, 그는 연단의 공술인들이 지정된 시간을 넘겨도 제지하지 않았다. 이런 자리에서 발언시간을 관리하는 것은 사회자의 기본 역할이다.
지정된 공술인들의 의견발표가 끝났을 땐 이미 두 시간이 훨씬 지난 상태였다. 사회자인 김 위원장은 비로소 청중석에 '질문' 기회를 줬지만, 시간은 턱없이 짧았다. 청중석에선 주로 한나라당 공술인들의 논리에 대한 비판적 질문이 많았다. 발언요청이 계속 이어졌지만, 사회자가 갑자기 폐회를 선언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 상황이 벌어졌다.
나는 이런 풍경을 처음 봤다. 지정 공술인들의 발언시간이 지체됐다면, 청중의 발언시간도 비례해서 연장해 주는 게 상식이고 예의다. 다른 피치못할 사유가 있다 하더라도 충분히 양해를 구하고 함께 파하는 게 회의의 기본이다.
하지만 그는 청중의 거센 항의와 야유를 묵살하고 자리를 떴다. 그가 일어나자 한나라당측 공술인들도 따라 나가 버렸다. 나를 포함한 다른 4명의 공술인들은 어정쩡하게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날 지역신문의 입장에서 네 가지 문제를 제기하고 요구를 밝혔다. 나 역시 조중동과 재벌에 국민의 전파를 넘겨주는 데는 결사반대이긴 하지만, 너무 신문·방송 겸영 문제에 모든 논란이 집중되는 바람에 신문 의제가 묻혀버리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게 있었다.
특히 한나라당이 신문 불법 경품과 무가지 살포를 단속하는 근거조항인 신문법 10조 2항을 슬그머니 삭제해버리려는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보장하는 것은 정부가 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다. 그런데 그걸 삭제하려는 이유가 없다. 국회 전문위원의 검토보고서에도 이 부분은 아예 언급조차 없다.
그런데 더 황당한 일은 그날 공청회에 참석한 강경근 숭실대 교수의 발언이다.
"공정거래법이나 신문고시 등을 통한 언론사에 대한 통제 내지 관여를, 신문도 상품이기 때문에 적법하다고 말하지만 이는 신문사업자의 언론표현 방법의 자유와 기업경영의 자유를 과잉으로 제한하는 결과를 가져와 신문사 지배구조에 대한 정부의 과잉규제조치이고 궁극적으로는 신문의 다양성 보장에도 반하는 필요 이상의 제한이어서 신문의 자유로운 발행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것이다."
문장이 복잡하여 언뜻 무슨 말인지 헷갈리지만, 줄여 말하자면 '불법 경품과 무가지 살포를 단속하는 것은 과잉규제이며 신문의 다양성 보장에도 반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신문의 자유로운 발행을 본질적으로 침해'까지 한단다.
그런데 명색이 법과대학 교수라는 분이 그게 왜 과잉규제이며 신문의 다양성 보장에 반하는 건지 근거와 이유를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청중석에서 언론노조 이학수 경남신문 지부장이 물었다. 논리적 근거가 뭐냐고.
그랬더니 그는 "경품이 그것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라며 얼버무렸다. 그 얼버무리는 말이 더 황당하다. 바로 그게 그 문제 자체인데, '무슨 관계'라니. 재차 김순기 언론노조 수석부지부장이 재차 명확한 답변을 요구했지만 그는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자가 황급히 폐회를 선언해버린 것이다. 이게 한나라당의 수준이다. 부산공청회에 부산 사람을 구하지 못해 서울에서 모셔온 분이 이랬고, 한나라당 추천으로 위원장을 맡은 분의 회의 진행 수준도 그랬다. 그런 분들과 그런 정당이 한국 언론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흔들고 있다고 생각하니 모골이 송연해진다.
※미디어스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우선 이틀 전인 4일 오전까지 한나라당 추천 공술인들의 명단조차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날 오전까지 발표할 원고를 보내달라고 했다.
미디어발전국민위 홈페이지(http://newmedia.na.go.kr)에 공청회 공지가 올라온 것도 4일 오후였다. 무릇 공청회란 '국민의 여론이나 전문가의 의견을 듣기 위한 공개회의'를 뜻한다. 그렇다면 사전에 충분한 시간을 두고 미리 개최사실을 알려야 한다. 명색이 국회의 사회적 논의기구라는 데에서 이런 식으로 한다는 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뒤늦게 밝혀진 한나라당 측 공술인들의 면면도 이상했다. 위원회가 전국을 5개 권역으로 나눠 지역별 공청회를 연다는 것은 해당 지역의 여론을 듣자는 취지였을 게다. 그런데 부산지역 공청회에 전남대 주정민 교수가 모두(冒頭陳述)을 한다는 것도 의아했고, 서울의 숭실대 강경근 교수와 이화여대 유의선 교수가 공술인으로 온다는 것도 황당한 일이었다.
공청회 자료집도 턱없이 모자랐다. 몇 권을 인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절반 이상의 청중이 자료집 없이 듣기만 할 수밖에 없었다.
좋다. 그것까진 처음이라 있을 수 있는 시행착오였다고 이해하자.
공청회 진행은 한나라당 추천인사인 김우룡(한양대 석좌교수) 공동위원장이 맡았는데, 그는 연단의 공술인들이 지정된 시간을 넘겨도 제지하지 않았다. 이런 자리에서 발언시간을 관리하는 것은 사회자의 기본 역할이다.
지정된 공술인들의 의견발표가 끝났을 땐 이미 두 시간이 훨씬 지난 상태였다. 사회자인 김 위원장은 비로소 청중석에 '질문' 기회를 줬지만, 시간은 턱없이 짧았다. 청중석에선 주로 한나라당 공술인들의 논리에 대한 비판적 질문이 많았다. 발언요청이 계속 이어졌지만, 사회자가 갑자기 폐회를 선언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 상황이 벌어졌다.
한나라당측 공술인들이 퇴장해버린 뒤의 연단 모습.
나는 이런 풍경을 처음 봤다. 지정 공술인들의 발언시간이 지체됐다면, 청중의 발언시간도 비례해서 연장해 주는 게 상식이고 예의다. 다른 피치못할 사유가 있다 하더라도 충분히 양해를 구하고 함께 파하는 게 회의의 기본이다.
하지만 그는 청중의 거센 항의와 야유를 묵살하고 자리를 떴다. 그가 일어나자 한나라당측 공술인들도 따라 나가 버렸다. 나를 포함한 다른 4명의 공술인들은 어정쩡하게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날 지역신문의 입장에서 네 가지 문제를 제기하고 요구를 밝혔다. 나 역시 조중동과 재벌에 국민의 전파를 넘겨주는 데는 결사반대이긴 하지만, 너무 신문·방송 겸영 문제에 모든 논란이 집중되는 바람에 신문 의제가 묻혀버리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게 있었다.
특히 한나라당이 신문 불법 경품과 무가지 살포를 단속하는 근거조항인 신문법 10조 2항을 슬그머니 삭제해버리려는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보장하는 것은 정부가 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다. 그런데 그걸 삭제하려는 이유가 없다. 국회 전문위원의 검토보고서에도 이 부분은 아예 언급조차 없다.
그런데 더 황당한 일은 그날 공청회에 참석한 강경근 숭실대 교수의 발언이다.
"공정거래법이나 신문고시 등을 통한 언론사에 대한 통제 내지 관여를, 신문도 상품이기 때문에 적법하다고 말하지만 이는 신문사업자의 언론표현 방법의 자유와 기업경영의 자유를 과잉으로 제한하는 결과를 가져와 신문사 지배구조에 대한 정부의 과잉규제조치이고 궁극적으로는 신문의 다양성 보장에도 반하는 필요 이상의 제한이어서 신문의 자유로운 발행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것이다."
문장이 복잡하여 언뜻 무슨 말인지 헷갈리지만, 줄여 말하자면 '불법 경품과 무가지 살포를 단속하는 것은 과잉규제이며 신문의 다양성 보장에도 반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신문의 자유로운 발행을 본질적으로 침해'까지 한단다.
그런데 명색이 법과대학 교수라는 분이 그게 왜 과잉규제이며 신문의 다양성 보장에 반하는 건지 근거와 이유를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청중석에서 언론노조 이학수 경남신문 지부장이 물었다. 논리적 근거가 뭐냐고.
그랬더니 그는 "경품이 그것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라며 얼버무렸다. 그 얼버무리는 말이 더 황당하다. 바로 그게 그 문제 자체인데, '무슨 관계'라니. 재차 김순기 언론노조 수석부지부장이 재차 명확한 답변을 요구했지만 그는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자가 황급히 폐회를 선언해버린 것이다. 이게 한나라당의 수준이다. 부산공청회에 부산 사람을 구하지 못해 서울에서 모셔온 분이 이랬고, 한나라당 추천으로 위원장을 맡은 분의 회의 진행 수준도 그랬다. 그런 분들과 그런 정당이 한국 언론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흔들고 있다고 생각하니 모골이 송연해진다.
공청회가 파행으로 끝난 뒤 야당측 공술인들과 시민언론단체 회원들이 무효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미디어스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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