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언론

죽어가는 신문에 사약 강요하는 정부

기록하는 사람 2009. 5. 9.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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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가 언론관계법에 대한 국민여론 청취를 위해 개최한 부산공청회에 패널로 나갔습니다. (공청회에선 패널을 공술인(公述人)이라고 하더군요.) 사회를 맡은 한나라당 추천 위원장이 청중석의 잇단 발언요청을 묵살하고 일방적으로 폐회를 선언하는 바람에 파행을 빚었던 그 공청회였습니다.

알다시피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는 한나라당과 야당이 언론관계법 처리에 앞서 국민여론을 수렴하기 위해 국회 산하에 설치한 사회적 논의기구입니다.

그날 저는 지역신문 종사자로서 꼭 하고 싶은 이야기를 아래와 같이 네 가지로 정리해 말했습니다. 비록 막판에 파행으로 흐르긴 했지만, 정부와 한나라당, 그리고 야당과 언론학자들에게도 꼭 하고싶은 이야기였습니다.

그날 공청회에서 시간의 제약 때문에 충분히 이야기 못한 것까지 포함하여 기록의 차원에서 다시 한 번 여기에 올립니다.


지역신문 기자가 본 언론관계법 논란

(1) 이번 언론관계법 논란 과정에서 방송의제가 너무 부각되는 바람에 묻히고 있는 중요한 문제가 있다. 바로 신문법 제10조 2항이다. 신문 구독자 확장 과정에서 불법 경품과 무가지 살포를 단속하는 신문고시의 근거가 되는 조항이 바로 10조 2항이다.

이미 조중동의 무차별 경품 공세 때문에 전국의 지역신문은 이미 초토화된 상황이다. 그나마 완전히 죽지 않고 명맥이나마 유지하고 있는 것은 이 조항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각해보라. 1년 구독료보다 많은 경품과 무가지를 주면서 1년만 구독해달라는 신문을 보겠는가? 아니면 10개월치 구독료를 고스란히 내고 페이지도 훨씬 얇은 지역신문을 보겠는가? 원천적으로 불공정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신문은 없다.

우리 김훤주 기자가 신고를 대행해준 동아일보의 불법경품.


그런데 한나라당은 이 조항마저 슬그머니 삭제해 아예 조중동을 뺀 신문의 씨를 말리려 하고 있다. 그야말로 '슬그머니'라는 건 삭제하려는 아무런 이유도 제시하지 않고 그냥 조항 자체를 빼버린 것이다. 법안 제출사유에도 없고, 국회 전문위원의 검토보고서에도 이 조항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다. 이것이야말로 한나라당이 조중동만 살리고 나머지 모든 신문은 죽이겠다는 의도를 명백히 드러낸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런 게 아니라면 신문의 불공정 거래행위는 더 철저히, 강력하게 단속해야 한다. 신고포상금제도도 더 강화해야 한다.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는 것은 정부가 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다.

(2) 국민의 세금으로 집행되는 정부광고와 지방자치단체 등의 광고도 문제다. 공정한 배정 기준이 없다.

특히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단체장의 입맛에 따라 공고와 광고가 배정되고 있으며, 그야말로 독버섯을 키우는 역할까지 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선 단체장의 선거참모들이 주간신문을 창간해 운영하고, 그 신문에 광고와 공고를 줘 유지하게 해주는 경우도 있다. 또 1000~2000부 정도 발행해 관공서에만 뿌리는 사이비 일간지들에게도 광고와 공고를 주고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정부투자기관 및 공기업 광고의 경우, 신문법과 지역신문법의 요건에 의해 옥석이 가려진 신문에 우선 배정하도록 최소한의 기준을 만들어 집행해야 한다.

이런 최소한의 기준도 마련하지 않고 신문발전 운운하는 것은 말짱 거짓말이다.

(3) 경제위기가 아니더라도, 이미 종이신문이라는 상품만으로는 살아남기 어렵다. 일본이나 유럽의 일부 나라처럼 '활자매체 지원'을 위한 각종 정책과 예산 투입으로 몇 년을 더 견딜 수 있을 수도 있지만, 근본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종이신문를 대체하게 될 수단이 인터넷이 될지, 모바일이 될지, 전자종이 기반의 킨들이 될지, IPTV가 될지, 아니면 그 모든 것을 융합한 새로운 뭔가가 될 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그런 매체이동에 대응하지 못하거나 그 기간동안 버티지 못한 신문사는 죽을 수밖에 없다. 조중동도 물론 죽는다.

조중동은 이런 종이신문의 몰락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조중동은 재벌과 손잡고 방송을 삼키는 방향으로 생존방향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기를 쓰고 신문·방송 겸영을 골자로 하는 '언론악법'을 통과시키려는 것이다. 그러나 신문·방송 겸영을 통해 일부 거대신문이 연명하는 것도 결국은 신문의 죽음을 뜻하긴 매한가지다.

진정 신문의 발전을 위한다면 급변하는 매체환경에 대비하고 뉴미디어 시장 개척에 정부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따라서 삭감된 신문발전기금과 지역신문발전기금을 부활하는 것은 물론 증액을 하더라도 매체환경 변화에 적극 대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한국언론의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도 절실하다.

특히 지역신문과 지역방송의 경우, 지역균형발전의 차원에서 별도의 독자적인 경쟁력 강화를 위한 지원이 지속적이고 집중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4) 정부가 정말 신문발전을 지원할 의지가 있고, 저작권을 보호하겠다는 생각이 있다면 무엇보다 먼저 한국언론재단과 한국디지털뉴스협회가 전국의 48개사 56개 매체로부터 저작권을 신탁받아 하고 있는 뉴스저작권 사업부터 뿌리를 내리도록 해줘야 한다. 그것도 하지 않으면서 저작권 보호나 신문발전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말장난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정부와 그 산하기관에서조차 뉴스저작권을 인정하지 않고 불법으로 뉴스를 펌질해서 쓰거나 재배포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한국언론재단이 신탁판매하고 있는 디지털뉴스콘텐츠 상품 소개 사이트. http://www.newskorea.or.kr


우선 저작권 주무부서인 문화체육관광부부터 합법적으로 뉴스콘텐츠를 구매하여 사용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모든 정부부처와 정부산하기관과 단체, 공기업과 지방자치단체에서 의무적으로 신탁사업자인 한국언론재단 저작권사업단을 통해 합당한 뉴스콘텐츠 사용료를 지불하고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정보공개법에 의해 공공기관으로 포함되는 각급학교와 지방공단 및 지방공기업, 특별법에 의한 특수법인까지 뉴스콘텐츠 의무구매대상기관으로 포함해야 한다.

이것만 이뤄져도 정부가 조중동을 제외한 모든 신문을 죽이려한다는 의심을 벗고, 정말 신문을 육성, 발전시킬 의지가 있는 것으로 믿겠다.

조중동과 대기업이 겸영하는 방송만 남으면…

마지막으로 이 말은 꼭 하고 싶다.

모든 신문이 다 죽고 난 뒤, 일부 거대신문과 대기업이 겸영하는 방송만 남았을 때, 또한 인터넷까지 엄격한 규제로 인해 비판적인 글을 올릴 수 없게 되었을 때, 국민은 과연 현 정권과 여당에 우호적으로 변하게 될까?

내 생각엔 촛불집회 정도가 아니라, 훨씬 과격하고 근본적인 혁명 같은 게 일어날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오히려 급진 과격단체들은 이런 상황을 보면서 '바야흐로 혁명의 기운이 무르익고 있다'면서 쾌재를 부르고 있을 지도 모른다.

언론을 장악하고 통제했던 박정희나 전두환 정권의 경우를 봐도 그렇다. 현 정부와 여당을 위해서라도 조중동만 남기기고 다 죽이려는 정책은 옳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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