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지금 관광이 녹색산업이라고?

김훤주 2009. 6. 4.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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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태를 망가뜨리는 관광

'철쭉제를 위하여 사람들은 산 정상까지 길을 내고, 늪의 가장 깊은 곳에 우물을 팠습니다. 일주일만에 10만의 인파가 다녀간 후 아름답던 화엄벌은 마치 겁탈당한 소녀처럼 흐트러져 버렸습니다.

눈물이 많은 저는 화엄벌과 베어진 산을 보며 그냥 울기만 했고, 어느 때는 울기 위해 산에 갔습니다. 소리 없는 슬픔은 그렇게 제게 왔고, 그렇게 한참을 울고 나면 저도 모르게 슬그머니 독한 마음이 일어 산과 거리를 헤매 다녔습니다.'

'천성산 문제를 통해 제가 느끼는 본질적인 문제는 이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거짓되고 박명한 사랑으로, 그 본질은 이 사회 권력의 구성원들이 공익과 다른 사람의 아픔에 도덕적으로 무감각하다는 것입니다. 적당한 권모와 술수가 정치적인 능력으로 인정받는 이 사회에서 도덕적인 감수성은 한번쯤 앓고 아물어 버리는 생채기 같은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천성산 산감(山監)으로 천성산을 지키려고 목숨까지 걸었던 지율(知律) 스님이 한 말입니다. 알려진 바와 달리, 지율 스님은 천성산 고속철도 관통에 대해서는 반대조차 제대로 해 보지 못했습니다. 다만 엉터리로 말고, 환경영향평가를 한 번이라도 반듯하게 해 보자고 사정을 했을 뿐입니다.


지율 스님의 뜻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법률의 문제를 들어 가로막았고 정치권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진행됐다는 현실을 들어 가로막았고 기업 따위는 생명보다 돈을 더 높은 위치에 두기에 가로막았습니다.

2. 녹색과는 거리가 먼 관광

저는 관광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질까봐 두렵습니다. 저는 지율 스님과 마찬가지로 관광을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제대로 된 관광이 무엇일지 한 번 꼽아는 보자는 얘기입니다.

'생태 관광' '녹색 관광'이라면서 관광산업을 일러 굴뚝없는 산업 또는 무공해산업이라 합니다. 그런데 저는 과연 그런지 돌이켜 짚어보고 싶습니다. 굴뚝이 없다고 무공해라 할 수 있겠는지, 공해는 굴뚝으로만 나오는지가 저는 좀 궁금합니다.

5월 4일 40여 년간 지리산 노고단과 피아골 산장을 지키면서 등산객을 혼쭐냈던 '지리산 호랑이' 함태식(82) 어른이 지리산 천왕봉에서 지리산 케이블카 반대 일인시위를 벌였습니다.

지리산에 케이블카를 놓겠다고 설치고, 밀양 얼음골에는 이미 허가가 나서 자재를 헬리콥터가 실어나르는 등으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지율 스님의 표현을 빌려 '거짓되고 박명한 사랑'이라고 봅니다.

케이블카를 설치하려는 사람들은 이른바 '접근성'을 말합니다. 나이 적은 어린이도 가서 보게 하고 늙으신 어르신도 가서 보게 하고 팔다리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한 장애인도 가서 보게 하자는 취지라고 말합니다.

거짓말입니다. 장사가 목적입니다. 누구든지 와서 돈을 쓰게 하자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이 목적을 위해 '보게 하는' 것입니다. '보게 하는'이란, 달리 말하면 이것이 바로 '관광'입니다. 관광의 대상이 되는, 자연 그리고 문화를 망치는 사고 방식입니다.


제가 이렇게 극언을 하는 까닭은, 그런 거짓부렁의 배경에는 '사람은 공해를 배출하지 않는다'는 오만함이 깔려 있습니다. 그러나, 짐승이 다니는 길에는 풀이 나도 사람 다니는 길에는 풀조차 나지 않는다지요. 그만큼 우리 인간이 독한 존재입니다.  2006년 지율 스님을 만났을 때 이렇게 얘기했지요.

"천성산 철쭉제가 저를 여기까지 끌어 왔지요. 2001년 봄인가요. 하루에도 몇 만 명씩 몰렸어요. 늪지라 질척거리는 산을 한꺼번에 짓밟다 보니 산마루도 속살을 드러냈고 화엄벌조차 망가지고 말았습니다."

지리산이, 얼음골이, 천성산 꼴을 당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어디 있을까요? 어쩌면 천성산 이상으로 능욕을 당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지리산 천왕봉에 케이블카가 놓인 다음에는, 천왕봉이나 법계사 있는 자리 즈음에 평토를 해서 관광호텔을 지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올지도 모릅니다.

3. '보기 어렵다'는 가치를 중심에 놓아야

지율 스님은 당시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코스타리카는 30년 걸렸다고 해요. 천성산처럼 짓밟혀 망가진 생태계를 되살리는 데 말입니다. 요즘도 하루 입장객을 120명으로 제한하고도 모자라 날마다 산길의 너비를 잰답니다. 사람들 밟고 다녀 조금이라도 넓어지면 곧바로 입장객을 더 줄이는 것이죠."

이런 일이 지금 여기에서 가능할까요? 백만 명이든 천만 명이든 지리산 천왕봉을 찾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장사가 잘 된다고 여기는데, 얼음골 케이블카가 잘 돼야 언저리 사놓은 땅을 비싼 값에 되팔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설치 한 해도 안 돼 100만 명 이상이 탔다는 통영 미륵산 케이블카. 경남도민일보 사진.


이렇게 아침에 눈 떠서 한밤중에 잘 때까지 이문밖에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한테 하루 케이블 탑승객을 120명으로 제한하자면 참으로 장하게도 '오냐, 그럽시다' 하겠습니다. 또 장애인과 열세 살 안 된 어린이와 일흔 살 넘은 어르신(그리고 그 보호자)만 케이블카를 탈 수 있게 하자면 어떻겠습니까. 행여 헌법재판소에 평등권 침해라는 소원이 제기될까 겁이 납니다.

저는 이런 까닭으로, 관광이라는 산업이 굴뚝만 없다뿐이지 공해는 엄청나게 일으키는 업종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문제는, 이런 현실에서 공해를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할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물론 정답은 이미 제출돼 있습니다. 접근을 차단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희소성이라는 가치를 드높이는 것입니다.


구체 숫자는 연구와 토론을 통해 정하면 되겠지만 이를테면 천성산은 하루 30명, 지리산은 하루 100명, 화왕산은 15명, 가야산은 40명, 가지산은 50명, 얼음골은 20명 하는 식으로 정하고 그 이상은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자연이 감당할 수 있는 관광을 하자는 것이고, 돈을 벌어도 그 틀 안에서 벌자는 얘기입니다.


케이블카를 놓자는 이들의 논리를 빌려 말하자면, 어르신도 어린이도 장애인도 가서 보게 하자는 '좋은 뜻'을 실현하기 위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드나드는 숫자를 제한해야 합니다. 자연이 감당할 수 있는 인간의 '관광'이 과연 어디까지인지를 따져 매겨야 한다는 얘기입지요.

4. 관광을 녹색으로 바꾼 뒤에 활성화 꾀해야

지금 형편에서 관광 활성화는 바로 공해 촉진일 뿐입니다. 가장 가까운 보기입니다. 관광을 위해 자동차를 탑니다. 집에 가만 있으면 안 써도 되는 석유를 펑펑 씁니다. 애써 나와서는 호텔이나 모텔이나 펜션이나 민박집에 묵습니다. 이런 데 가면 사람들은 집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아끼지 않고 물 따위를 씁니다.

나아가 모호하기도 하고 또 그 낱말 쓰임의 출발이 '이명박표' '성장제일주의' 포장지라는 미심쩍음을 받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녹색성장과도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여기서 녹색은 군인들이 전투할 때 입는 위장복이랑 비슷한 개념입니다.


지리산 골짝골짝까지 길을 내고 남해안 구비구비마다 도로를 닦습니다. 도로 포장과 토목 따위가 어떻게 녹색입니까? 케이블카를 위해 자리를 닦고 삭도를 내고 어마어마하게 전기를 씁니다. 이것을 녹색이라 할 근거는 또 무엇일까요? 적어도 우리나라 관광에서는, '지금 있는 그대로'를 유지하지 않는 이상은 아무것도 녹색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 있는 그대로에서 좀 더 줄여나가야 할 판입니다.

양산의 아름다운 원동습지를 메우고 들어선 모텔들. 양산만의 풍경은 아닐 것입니다. 제가 찍었습니다.


지금 관광 산업은 공해 산업이기 때문입니다. 관광 산업을 녹색산업으로 바꾸지 않는 이상은, 관광 활성화란 바로 공해 촉진일 뿐입니다. 남해안 일주도로를 걷어낸 다음에야, 얼음골 케이블카를 뜯어낸 다음에야, 지리산 아스팔트를 녹여낸 다음에야, 경치 좋은 곳곳에 자리 잡은 모텔 따위를 다 헐어낸 다음에야 생태 관광 녹색 관광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훤주
※ 경남발전연구원 기관지 <경남발전> 2009년 5월호에 청탁 받아 쓴 글을 조금 고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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