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노무현 서거, 한 독자의 가슴아픈 편지

기록하는 사람 2009. 6. 2.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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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편지 한 장을 받았다. 블로그를 운영해오면서 댓글이나 방명록의 글이 아닌, 우편으로 독자 편지를 받은 것은 처음이다.

그의 글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 나흘째 되는 날인 5월 26일 쓴 것으로 되어 있었고, 우표 소인은 28일자로 찍혀 있었다.

보낸 이는 '대구에서 독자 드림'이라고 되어 있었고, 받는 이는 '김주완 님 또는 김훤주 님'인 것으로 보아 우리 블로그 독자임이 분명해 보였다.

'먼 훗날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옛 이야기'라는 제목의 편지 내용은 이랬다.


일찌기 아시아의 어느 야만국에 "약자는 귀족이 던져주는 떡이나 먹고 순종해야 된다"는 불문헌법이 있었네.

어느날 약자 중에 걸출한 사나이가 나타나 "우리는 모두 동등하다"고 외치자 태풍이 일어났네.

화가 난 귀족들은 말총과 글총을 쏘아대며 사나이를 토끼몰이 하였네. 사나이는 부엉이 절벽에서 "항복하라, 목숨은 살려줄께" 하는 귀족들의 당근을 뿌리치고 몸을 던졌네.

이제 문명세계가 도래하여 살아남은 우리는 세상을 바꿀려다가 산화한 그를 기억해야 될 것이다.

2009. 5. 26. 독자 씀.


이처럼 김주완, 김훤주 앞으로 온 편지도 있었지만, '경남도민일보 독자란 담당자'에게 온 편지도 따로 있었다. 필체나 보낸 곳으로 보아 같은 분이 보낸 편지였다.


그것은 카드였는데, 이럴게 적혀 있었다.

B. 브레크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고치면서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침묵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그 분보다 오래 살아남아 있다는 사실을.

그러나 어제 밤 꿈속에서 그 분이 나타나서 소리쳤다.

"강한 자는 살아 남는다."

그러자 나는 내가 미워졌다. 꿈에서 깬 후 시집을 고쳤다.

"비겁한 자는 살아남는다"고.

2009. 5. 26.
대구에서 이방인 드림.(그 분을 애도하면서)


그 분의 편지에 대해 따로 내 생각이나 논평을 달지는 않겠다. 그냥 그 분과 느낌을 공유하기 위해서 이렇게 블로그에 올려둔다.

2009년 5월 30일 봉하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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