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추종'과 '이중 당적' 사이의 거리

김훤주 2008. 3. 21.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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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얘기(북한 추종도 문제이긴 하지만...)에 크게 동감합니다. 

글쓰신 대로, 조선노동당 추종뿐만 아니라 소련 공산당 독일 사회민주노동당 중국 공산당 브라질 노동자당 추종도 문제임은 분명합니다.

게다가 그 추종하는 내용을 두고 오직 하나뿐인 진리 또는 가장 뛰어난 정치이론이나 사상이라고 여기기까지 한다면 그야말로 엄청난 잘못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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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9월 9일 민주노동당 대통령 후보 선출 대회

하지만 글의 초점은 선배와 제가 조금 다릅니다.

조선노동당과 다른 정당들 사이 결정적인 차이는 우리 대한민국 현실에 실존하는 정당이냐 아니냐 하는 데 있습니다.

영국 노동당이나 소련 공산당이나 브라질 노동자당은 대한민국 정치 현실에 실존하지 않는 정당입니다. 대한민국 정치 사회 현실에 대해 이래야 한다 또는 저래야 한다는 지침을 내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정당으로부터는, 역사와 경험을 배우거나 베껴올 수는 있지만 현실에서 벌여야 하는 운동의 구체 방침을 받아올 수는 없습니다. 이중 당적 문제가 생기려야 생길 수가 없는 까닭입니다.

반면 조선노동당은 우리 정치 현실에 실재하는 정당입니다. 선거에서 후보를 내지는 못하고 그래서 활동 영역이 그리 넓지는 못하지만, 때 맞춰 방침을 냄으로써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뿐 아니라 대한민국에서도 실존하는 정당이 돼 있습니다. 이것은 비유가 아니라 현실입니다.

선배께서 앞선 글 <민주노동당의 진짜 문제는?>에서 보기로 드신 주대환 씨를 한 번 더 보기로 들어 말씀드려 볼까 합니다.

주대환(사적으로는 제게 선배시지만 공적인 글에서는 이리 이르겠습니다.)은 영국 노동당이 걸어온 길에서 민주노동당이 배우고 따라 해야 한다고 할 뿐입니다. 이것은 <추종>이지 이중당적은 아닙니다.

만약 영국 노동당이 대한민국 현실에 이런저런 방침을 내고, 또 주대환이 영국 노동당의 그런 방침을 스스로는 애써 실천하고 남에게는 꼭 실천해야 한다 선전하면, 이것은 추종인 동시에 <이중 당적>입니다.

진보정당은 비판적 지지를 넘어설 수 있는가 상세보기
주대환 지음 | 이후 펴냄
비판적 지지를 기반으로 한 그의 글 속에는 노무현을 지지하지만 자신의 길과 노무현의 길이 분명히 다르다는 인식이 깃들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풍을 통해 진보정당이 뿌리 내릴 수 있는 토양이 조금이라도 더 마련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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