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민주노동당은 끝까지 어쩔 수 없나?

김훤주 2008. 3. 21.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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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남북정상 만남(출처 : 경남도민일보)

제가 쓴 <민주노동당은 정말 어쩔 수 없다>에서 민주노동당 경남도당 '수첩사건'을 두고 "문제 당사자는 '이중당적자'고 그렇다면 두 당적 가운데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고 한 데 대해 김주완 선배가 <민주노동당의 진짜 문제는?>에서 지적을 주셨습니다. 요지는 "이중당적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아니라) 있을 수 있는 일이다.'입니다.

나름대로 한 말씀 올립니다. 짐작하신대로 제가 ‘이중당적자’라 한 취지는, 실제 그렇다기보다는 ‘사실상 이중당적자나 진배없다.’입니다. 또 말씀대로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에는 다른 나라의 성격이 비슷한 정당들을 모범으로 여기고 본받으려는(이중당적자나 진배없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실제로도 있습니다.

왜 조선노동당만 문제냐?

그 많은 정당들 가운데 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조선노동당만 문제냐고 한편으로는 물으신 것 같습니다. 조선노동당만 문제가 되는 까닭은, 다른 많은 정당들과는 달리 조선노동당만이 대한민국 정치 사회 현실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물론 조선노동당은 대한민국 정치와 사회운동에 개입하지 않고 있다고 얘기한 적이 있답니다. 2006년 10월 민주노동당 대표단이 조선을 방문했을 때 노회찬 당시 국회의원이 문제 제기한 데 대한 답입니다.

노회찬은 조선 인사들에게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보지 않은 당신들은 자본주의를 알지 못한다. 실상도 모르면서 대한민국 정치 사회운동에 개입하면 안 된다.”고 했다고 합니다. 조선 인사들은 “우리가 자본주의 실상을 제대로 모른다는 지적이 맞다. 우리는 남쪽 일에 개입하지 않은지 이미 오래 됐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이 말이 맞는지 안 맞는지 저는 모릅니다. 조선노동당이 지금도 대한민국 정치에 이런저런 방침을 내고 있는지 여부를 저로서는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경험에 비춰볼 때 조선노동당 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당국이 대한민국 여러 현실이나 문제에 이런저런 방침이 있는 것은 사실이고, 그 방침대로 움직이는 대한민국 사람이 있다는 얘기도 사실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요즘은 그 쪽에 아예 관심이 없어서 알지 못하고 그래서 알맞은 보기를 들 수는 없지만, 제 기억에는 ‘식민지반(半)자본주의사회’ 주장이 남아 있습니다. 80년대 말 우리나라 진보진영에서 ‘사회구성체논쟁’을 활발하게 벌인 일과 관련돼 있습니다.

반봉건에서 반자본으로 가기

당시 신식국독자론이니 식반론이니가 자주 오르내렸는데 신식국독자는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이고 식반은 식민지반봉건사회입니다. 식반론은 여러 면에서 비판을 많이 받았으며(물론 신식국독자도 비판을 많이 받았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봉건’이었습니다.

요지는, 이미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지배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봉건적 요소가 좀 남아 있다 해도, 어떻게 ‘반봉건’이라고까지 규정할 수 있느냐, 였습니다. 식반을 주장하던 이들로서는 난처한 지적입니다만, 그래도 그이들은 무턱대고(제가 보기에는) 우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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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일본전서 골 넣은 조선 축구선수들(출처 :경남도민일보)

어느 날 갑자기 그이들이 말을 바꿨습니다. 반봉건에서 ‘반(半)자본’으로 말입니다. 사실은 말장난에 가까운 수준(반자본이라 했는데 그러면 나머지 절반은 뭐냐, 봉건 아니냐, 결국 같은 말 아니냐.)이었는데, 그나마 그 배경에는 조선에서 쏘는 방송이 대한민국 사회를 ‘식민지반자본주의사회’라고 새로 규정한 사실이 있었습니다.

저는 수첩에 적힌 편지글이 내용은 반봉건-반자본 하고는 많이 다르겠지만, 조선노동당하고 사이에 설정한 관계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짐작합니다.

조선노동당과 민주노동당은 다르다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먼저 우리나라 정치나 사회운동에 방침을 갖고 있는 조선노동당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있습니다. 물론 민주노동당은(적어도 예전 민주노동당은) 이와는 다른 정책과 강령을 내세웁니다.

다르다는 보기로 민주노동당 통일 분야 강령에 ‘남한 자본주의의 천민성과 북한 사회주의의 경직성 극복’이라는 표현이 들어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습니다. 조선을 따라 해야 할 모범이라기 보다는 뛰어넘어야 하는 대상으로 본다는 말씀입니다.

셋째, 우리나라에 얼마나 많은지는 알 수 없지만, 또 조직적인지 아닌지도 모르지만, 조선노동당의 방침을 자기 것으로 삼아 활동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민주노동당 바깥에도 있고 민주노동당 안에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민주노동당 안에는 민주노동당 강령을 따르는 사람과, 그러지 않고 조선노동당(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당국)의 방침을 따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민주노동당 정책 강령과 조선노동당 방침이 같을 때는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분란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민주노동당 강령(또는 정책)을 따르겠는지 아니면 조선노동당 방침을 앞세우겠는지를 골라잡아야 하는(이중 당적 문제를 정리해야 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니까 중국 공산당이나 영국 노동당이나 독일 사회민주노동당이나 브라질 노동자당이나 프랑스 사회당이나 따위들은 현실에서 대한민국에 대한 방침(이를테면 국가보안법 철폐 투쟁을 벌여야 한다든지 하는)을 내지 않습니다. 또 그런 방침이 있다 해도 그대로 실행하려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있을까요? 이것이 조선노동당과 다른 점입니다.

‘문제는 현실적이고 설득력 있는 대안을 만들어내지 못한 데 있다.’는 선배 말씀에 십분 동의합니다. 그런데 그 뿌리가 저는 그이들의 ‘조선노동당 방침 수행’에 있다고 봅니다. 조선노동당 방침은 궁극적으로 조선 정권을 가장 중심에 놓고 작성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대한민국 노동자와 농민과 빈민과 서민을 중심에 놓고는 작성되기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조선노동당 방침 수행을 으뜸으로 생각한다면, 민주노동당은 앞으로도 우리 현실과 크든작든 겉도는 노릇밖에는 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나름대로 제 생각을 적고 이해를 얻고자 합니다. 총총.

김훤주(전국언론노동조합 경남도민일보지부 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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