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에는 임항선(臨港線)이라는 철로가 있습니다. 거리는 마산역에서 마산 서항까지 이어지는 8km 남짓합니다. 한 해 365일에 50차례 가량 화물을 실은 기차가 다닙니다. 한 주일에 한 차례 정도로 보면 맞겠습니다.
어떤 데는 너비가 5m도 채 되지 않는 것 같고 어떤 데는 20m는 좋이 돼 보입니다. 임항선을 따라 마산 서항에서 추산동 정수장까지 2km 남짓 거리를 둘러봤습니다. 3월 31일 둘러보는 아침 9시 30분부터 12시까지, 기차는 다니지 않았고 사람들만 오갔답니다.
추산동 위쪽 철로변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거나 아니면 시장 상인이 철로를 난전으로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둘러본 그 아래에서 바닷가까지 일대는 대부분이 사람들 부쳐 먹는 텃밭이거나 아니면 자갈 따위가 깔린 위에 들풀도 비집고 자라는 자리였습니다.
왼쪽 아래 노부부가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느티나무는 벌써 연두로 빛납니다.
텃밭에는 시금치 배추 완두 마늘 갓 겨울초 상추 머위 돌나물 정구지 마늘 대파 쪽파들이 있었습니다. 뜻밖에 보리도 기르고 있어 푸른 기운을 더했고, 금방 돋은 듯한 새싹은 들여다봤더니 호박으로 짐작이 됐습니다.
마산여객선터미널 건너편 육교 있는 자리 커다란 느티나무 옆에서는, 노부부가 울타리가 쳐진 텃밭에서 삽으로 땅을 고르고 있었습니다. 여름에 이파리가 무성해지면 사람들 쉬어가기 알맞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냉이 꽃.
기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덕분에 풀들이 철로 둘레 곳곳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자갈이 많고 흙이 적어서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냉이꽃, 별꽃, 개불알꽃, 민들레꽃, 제비꽃 그리고 이름을 알지 못하는 여러 봄꽃들까지 피어나 있습니다.
텃밭에서는 완두와 배추와 겨울초에 꽃이 피었습니다. 완두꽃은 하얗거나 자줏빛이고 배추·겨울초의 꽃은 짙은 노란색이랑입니다. 날씨가 따뜻해진 덕분인지 3월 초순에는 잘 없던 벌과 나비가 꽤 보였습니다. 완두 꽃.
'삽작'이 참 귀엽지 않습니까?? 삽작 달린 보리밭이라니 말입니다.
더욱이, 이 녀석은 사람이 곁에 있어도 별로 신경을 쓰지는 않았습니다. 사진을 찍으려고 쪼그리고 앉았는데, 멀리 있던 나비 한 마리가 달아나지 않고 오히려 너울너울 제 가까이로 날아와 앉았습니다. 옆자리 꽃에는 벌이랑 파리까지 있었습니다.
쉬엄쉬엄 걷다보니 어느새 마산시의회 의사당이 나타났습니다. 여기까지는 철로가 해안선과 나란히 왔지만 앞으로는 주택가를 질러 무학산 산기슭으로 기어오른답니다. 철둑이 조금씩 높아지는가 싶었는데 몇 발짝 지나니 아래 주택가랑 땅높이가 적어도 4~5m 차이 나는 것 같습니다.
여기 철로 주변에는 텃밭이 별로 없었습니다. 기차 다니는 철길 둘레는 자갈 아니면 들풀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푸성귀를 기르는 텃밭은 철둑 비탈로 내려가 붙어 있다. 어르신 한 분이 일을 마치셨는지 비탈 텃밭에서 울타리 문을 열고 나오는 모양이 아주 그럴 듯해 보입니다.
임항선을 두고 여기 마산에서는 그동안 여러 가지 말들이 나왔습니다. 철로를 폐쇄하고 간선도로로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도 있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생태공원이나 주민 휴식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그동안 나온 얘기를 대충 모아보면 2002년 2월 23일 경남도의회에서 김봉준 당시 도의원이 임항선을 두고 “철로 기능을 사실상 상실했고 도심 개발을 가로막고 있는 만큼 폐쇄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반면 한국철도공사는 “마산역에서 마산항을 오가며 최대 165t에 이르는 전력용 변압기 같은 특수화물과 무연탄 같은 서민 생필품을 나르기 때문에 그대로 유지하지 않을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어린 배추입니다. 정구지 밭인데요, 다른 풀이 더 많습니다. 정구지가 보이기는 합니다. 돌나물. 가운데 즈음 뜯어 먹은 자리가 있습니다.
2003년에는 마산YMCA를 중심으로 ‘임항선을 시민을 위한 녹지공간으로 꾸며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습지요. 걷기와 자전거 타기를 모두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둘레 몽고정 문신미술관 마산시립박물관 등과 문화벨트로 묶자는 얘기랍니다. 마산YMCA는 당시 <임항선, 80년 역사의 발자취>라는 책으로 펴내기도 했습니다.
논의는 이어집니다. 마산 출신 국회의원 질문에 건설교통부는 2005년 5월 “없앨 수는 없지만 옮길 수는 있다”는 답변을 내기도 했습니다. 민간에서는 또 “도심 투어 관광열차로 활용하자”거나 “마산 전체 차원의 ‘근대산업유산 재생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거기서 중심축으로 삼자”는 제안도 나왔습니다.
한국철도공사 말대로라면 임항선은 지금처럼 남아서 지금 하고 있는 노릇을 그대로 해야 합니다. 마산 지역 주민에게 가장 좋은 방안은 무엇일까요? 철로변 이웃 주민들이 지금처럼 텃밭을 가꾸도록 하면서 생태적으로도 보탬이 되는 방안은 있을 수 없을까요?
오른쪽 위 슬레이트 지붕 앞에 동네 사람들이 모여 푸성귀를 다듬고 있습니다.
철로변 자투리에서 사람들이 텃밭을 가꾸는 모습이 나빠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울타리 따위가 좀 너절했지만 이런 정도는 자치단체가 조금만 돈을 쓰면 바꿀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텃밭과 들풀이 내뿜는 산소만 해도 아주 많았을 것입니다. 옛날 마산역 자리에 있는 계단입니다.
나라 전체가 유기농업을 해서 이름난 쿠바뿐 아니라, 캐나다의 몬트리올·토론토나 미국 시애틀 같은 데서는 사람들이 도심 텃밭을 가꾸도록 정책을 쓴다고 합니다. 이를 두고 도시농업이라고 하는 모양입니다.
이런 도시농업이 세월이 지나면서 여러 나라에서 일반화가 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지금과는 다른 상상력이 임항선에 작동할 수도 있겠다 싶어집니다.
김훤주
※ <경남도민일보> 4월 1일치 17면(생태면)에 실었던 기사를 조금 고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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