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언론

‘과속스캔들’ 봉필중 기자, 죄송합니다

김훤주 2009. 3. 19.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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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속스캔들>을 보고 나서 봉필중 기자 때문에 꽤 성질이 난 적이 있습니다. 영화에서 홍경민의 섹스비디오 스캔들을 폭로해 파문을 일으킨 주역으로 나옵니다. 봉 기자는, 영화에서 모든 연예인들이 설설 피하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모든 사람들이 앞에서는 웃고 좋은 척하지만 돌아서면 바로 씹어대는 그런 인간입니다. 개인 사생활이나 캐고 다니고 좋지 않은 방법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자기 목표를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서슴지 않고 해치우는 캐릭터지요.

차태현의 손자이면서 박보영의 아들인 왕석현의 행방이 사라졌을 때도 관련이 되는 듯이 나옵니다. 손자 그리고 아들을 경찰서에서 찾았을 때 난리법석인 거기에서 이 봉 기자는 몰래 숨어서 카메라로 계속 사진을 찍습니다. 이죽거리는 웃음을 입가에 물고서 말입니다.

박보영 남자친구에게 사진을 달라고 추근대기도 합니다. 박보영과 차태현이 웃으며 장난치는, 남들이 볼 때는 서로 수작하는 장면일 수도 있는 사진을 말입니다. 차태현이 자기 프로그램에 출연시킨 여자를 데리고 논다고 폭로할 수 있는 증거가 되겠기 때문이지요.

홍경민이 자기 섹스비디오 스캔들을 폭로한 봉필중 기자에게 달려들어 쓰러뜨리고 두들겨패는 장면입니다. 여기서 관객들이 많이 웃었습니다만.


그러다가 마지막 즈음에서 섹스비디오를 폭로당한 홍경민이 달려들어 봉필중 기자를 아주 묵사발로 만듭니다. 이 장면에서 사람들은 많이 웃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웃음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기자에 대한 연예인들의 악감정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편했습니다. 연예인들이 기자를 별로 안 좋게 보는구나. 그래서 기자 캐릭터를 저리 나쁘게 만들고 결국은 얻어터지게까지 해 놓았네, 내가 연예 기자가 아니라 잘 모르지만 실제로 저렇지는 않을 거야, 어느 정도 왜곡 또는 과장이 끼어들었겠지, 여겼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스포츠서울닷컴 사회연예팀장 임근호’ 이름으로 블로그에 올라온 글 ‘손예진씨, 죄송합니다. 관심없습니다’가 틀리지 않았다면, 봉필중의 연기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관객들이 놀랄까봐, 표현을 상당히 부드럽게 했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봉필중은 박보영 남자친구(나중에 왕석현의 아버지로 밝혀지는)에게 차태현과 박보영이 함께 찍혀 있는 사진을 달라고 할 뿐입니다. 그러나 스포츠서울닷컴은 망원렌즈가 달린 카메라를 들고 ‘한 달 정도 사실 확인’에 들어갑니다.

“스포츠서울닷컴은 팩트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사진을 찍습니다. 믿을 만한 정보가 접수되면 1달 정도 사실 확인에 들어갑니다. 지난해 12월 최지우씨와 이진욱씨가 열애 중이라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손예진씨 집 앞에서 최지우씨 집 근처로 옮긴 1월 어느 날) 둘이 만나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봉필중은 다른 연예인들 사생활을 다른 사람에게 옮기지 않았습니다. 스포츠서울닷컴은 연예인 사생활을 아예 까발리고 다니네요. 여기에는 보복성 냄새도 짙게 풍깁니다. “손예진이 J대 대학생과 만난다더군요. 겨울 종목 선수인데 BMW를 몰고 다닌다더군요.”

 

대놓고 깔아뭉개기도 합니다. “손예진씨는 관심 밖이었습니다. 아시아 스타인 최지우와 이진욱의 열애에 집중해야 할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그 집 주위에 누구 사시는지 아시죠? 워낙 유명한 A급 스타가 많아서……. 손예진씨는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봉필중은, 입가 웃음이 조금 능청스럽고 이죽거리는 바도 있기는 하지만, 스포츠서울닷컴처럼 상대방 인격과 자존심을 깔아뭉개지는 않았습니다. 또 자기를 안 좋게 했다고 보복하자는 심사를 품거나 하지도 않았습니다.
 
봉필중은 또 섹스비디오 스캔들을 폭로하기는 했지만 거짓말을 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스포츠서울닷컴은 “열애설을 취재하는 과정에도 원칙이 있습니다. 일단 불륜은 취재의 대상으로 삼지 않습니다. 특종해서 가정파탄 낼 이유 없습니다”라 했습니다.

그러나 <피디저널>은 3월6일 올린 ‘파파라치는 변태적 저널리즘이다’에서 “2007년 10월16일, 스포츠서울닷컴은 ‘옥소리가 서울 P호텔 식음료부문 총책임자 외국인 G를 만나 은밀한 관계를 유지했다’며 박철-옥소리 이혼 소식을 단독 보도했다”고 했습니다.

봉필중은 속이 뻔히 보이는 면피성 발언 따위는 하지 않습니다. 그런 발언을 해야 할 상황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스포츠서울닷컴은 그렇지 않은 모양입니다. “철저히 공공장소에서 사진을 찍습니다. 집 안에서 밀월 데이트를 하시면 잡힐 염려 없습니다.”

여기 ‘밀월’은 알맞은 낱말이 아닙니다만, 어쨌든, 스포츠서울닷컴 기자들은 연예인 집 앞에서 카메라를 들고 취재를 합니다. ‘집 안에서 밀월 데이트를’ 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목입니다. 이래 놓고 공공장소 운운을 합니다. 아니면 다른 지름길이라도 있나요? 가소롭다는 생각이 좀 들기도 합니다.

이래저래 따져보니 봉필중은 스포츠서울닷컴의 발치도 따라가기 어렵겠습니다. 그러나 둘이 똑같은 것이 하나는 있는 것 같습니다. 스포츠서울닷컴의 발언입니다. “(스타는) 인기를 이용해 수많은 것을 얻습니다. 그러면서 개인 생활 공개는 싫다? 도둑놈 심보입니다.”

 봉필중 기자를 만난 차태현. 엉거주춤한 모습이 완전 따돌리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확 끌어안지도 못하는 둘 사이 관계를 상징하는 듯합니다.
 
봉필중 기자도 섹스비디오를 폭로한 데 비춰보면 이런 생각은 스포츠서울닷컴과 비슷할 것 같습니다. ‘스타의 사생활에 대한 팬들 알권리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얘기가 되겠네요. 그러나 그런 취재나 보도 뒤에 숨은 의도가 없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독자 알권리 충족은 겉으로 내세우는, 그럴 듯하지도 않은 명분일 뿐이고 실제 목표는 황색 저널리즘의 창궐이요 황색 매체의 돈벌이요 황색 기자의 이름값과 취재 대상 연예인에 대한 영향력의 강화이지 않을까 싶은 것입니다.

어쨌거나 봉필중 기자, 제가 당신에게 화를 내고 성질을 부려서 진짜 미안합니다. 게다가 <과속스캔들> 제작진이 거짓으로 꾸몄으리라 지레짐작하고 허상이라 여겼으니 이 또한 더없는 잘못입니다. 제발, 제가 과문(寡聞)한 소치이니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훤주
※미디어 전문 비평 매체 <미디어스>에 3월 9일 실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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