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호철(68·창원시 상남동). 일반 시민들에겐 별로 알려지지 않은 분이다. 하지만 마산·창원지역에서 민주화운동이나 노동운동을 해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인하는 '운동권의 원로'이다. 지난 2005년 타계한 이선관 시인이 1942년생이었으니, 1941년생인 그를 '마창 진보세력의 최고 어른'이라고 칭해도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박호철 선생은 앞에 잘 나서지 않는 분이다. 그래서 대중적으로 드러난 인물이 아니다. 80년대 초부터 약 30년 가까이 지역 운동권의 든든한 후원자와 정신적 지주 같은 역할을 해왔지만, 그동안 맡았던 감투는 거의 없다. '전 민주노동당 경남도당 후원회장'과 '현 노동사회교육원 고문' 정도의 직책이 거의 전부다.
그런 그였기에 인터뷰도 쉽지 않았다. 14일 서울에서 있었던 김용택 노동사회교육원 고문의 장남 결혼식에 참석한 후 밤늦게 버스편으로 마산역에 도착한 그에게 기습적으로 인터뷰를 요청했다. 물론 처음부터 '인터뷰'라는 말은 하지 않고, 그냥 말씀 좀 듣고 싶다고 사정했다. 이 글을 싣는 것도 어렵게 허락을 받았다.
마창지역 진보진영의 어른 박호철 선생과 포장마차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는 마산역 앞의 한 커피숍과 포장마차에서 약 1시간 20분에 걸쳐 진행됐다.
박호철 선생은 서울대 국문학과를 1966년 졸업하고 서울 동양공고와 대광고, 덕성여고, 그리고 마산경상고와 창원고 등에서 80년대 초까지 국어교사를 했다. 당시 창원고에서 박호철 선생의 수업을 받았던 학생 중 한 명이었던 최기동은 지금 교사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최기동 교사도 그날 같은 버스를 타고 오면서 "당시 박호철 선생님의 감동적인 수업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27년 전 제자의 이 말을 들은 박호철 선생은 쑥스러워 했다. 그는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당시만 해도 나는 세치 짧은 지식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상당히 우쭐거리던 교사였다"면서 "그 때 아이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지 못한 게 오히려 후회스럽다"고 아쉬워했다.
그 이야기부터 물었다.
"진보의 기본은 '인간애', 그걸 팽개치고 어떻게 진보운동 하나"
-아이들의 말을 들어주지 못한 게 후회된다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교육에서는 아이들을 중심으로 세우는 게 가장 우선이라는 말이지요. 교육의 주체는 아이들인데, 그 아이들이 교육에서 배제되어 있어요. 교원평가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제가 김용택 선생에게도 자주 이야기했지만, 학생들이 평가한다면 전교조는 그걸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학생들의 평가도 엉터리가 있을 수는 있겠지요. 어떤 의도나 사적 감정으로 왜곡될 수 있지만, 그런 아이들이 대세를 좌우할 순 없어요. 대세는 어쨌든 교사 역량에 달려 있다는 것이지요. 전교조가 적어도 그 정도 신념은 있어야 합니다. '학생들 너희를 믿는다'는 신념이 있어야 해요. 학생들을 믿지 못하고 어떻게 진보운동을 한다는 말입니까?
-전교조뿐 아니라 요즘 진보세력 전반이 위기라는 진단이 많습니다. 최근 민주노총 성폭행 미수사건도 그렇고…. 그런 위기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요?
△노동운동뿐 아니라 진보운동의 제일 기본은 '인간애'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에 대한 사랑, 그게 바로 내가 진보운동에 관여했던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거기에서 멀어진다는 것은 진보라고 할 수 없어요. 요즘 민주노총의 문제도 그런 데서 오는 것이라고 봐요. 사람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상대를 짓밟는 행동을 하고, 또 그걸 쉬쉬 하고, 이런 일이 진보운동에서 도대체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그건 인간도 아니죠. 어떻게 그런 사람이 진보운동을 합니까?
"보수 빼닮은 진보, 그건 패거리에 불과"
-진보세력이 초기의 순수성을 잃었다는 말씀인가요?
△사람에 대한 사랑이 사라진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보수를 빼닮은 짓을 하고 있어요. 그건 진보가 아니라 패거리죠. '작은 우리' 속에서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거죠. '큰 우리'로 나아가려면 '작은 우리'를 버려야 하는데 그게 안되는 것 같아요. 제일 큰 문제는 공부를 너무 안 한다는 겁니다.
-현 정권과 싸워야 할 일도 갈수록 많아지고 있는데, 진보운동조차 그런 상황이라면 우리 사회는 더 이상 희망이 없는 건가요? 참 답답하네요.
△그래도 희망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지요. 질량불변의 법칙이라는 게 있어요. 사람의 정적 질량은 변함이 없다는 거죠. 많이 안 좋을 땐 절망적으로 보이지만, 좋은 상황이 오면 또 금방 바뀝니다. 질량엔 변함이 없으니까 항상 어떤 계기가 오면 절대 그 이상 떨어지지 않고 다시 (기회가) 오게 될 겁니다. 지금은 가라앉아 있지만, 새로운 계기가 오면 현재 가라앉아 있는 것보다 더 높이 올라올 겁니다.
-1987년 6월항쟁 같은 상황이 현 정권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말씀인가요?
△그렇지요. 그런 게 이 정권 하에서 충분히 생길 수 있습니다. 물론 정권에선 교활하게 조절하겠지만, 완벽하게 조절하진 못할 겁니다.
-당장 올 봄에 대규모 항쟁설을 예측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그건 너무 성급한 예측인 것 같아요. 우선 지금은 배가 고픈 시기입니다.
-이명박 정권을 어떻게 규정해야 할까요?
△제가 보기엔 딱 건설회사 사장입니다. 모든 건설회사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전형적인 건설회사 스타일이에요. 표본이 지난 쇠고기 사태 때 이명박 대통령이 한 이야기죠. '이제 우리 국민들도 값싸고 질좋은 쇠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게 대통령으로서 할 이야기입니까? 무슨 특혜를 받았다는 식으로 말하는 그게 바로 사기 아닙니까? 차라리 '국익을 위해서는 때로 우리가 양보할 것도 있습니다'라고 그렇게 바로 이야기하면 될 것을 '값싸고 질좋은 쇠고기'라니, 그건 사기죠.
-그렇다면 그런 정권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싸워야지, 뭐 별다른 방법이 있겠어요? 있을 것 같지 않은데? 참으로 나쁜 놈들이라. 어째 저렇게 나쁠지 상상을 못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저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어요. 할 수 있는 한도가 있지, 어떻게 저럴 수 있어요?
박호철 선생의 이야기는 의외로 강도가 높았다. 그만큼 답답한 게 많은 것 같았다.
80년대 초부터 진보진영 후원, 노동사회교육원 설립 그는 은퇴 후에도 노동사회교육원을 설립하는 등 진보진영에 대한 애정과 투자를 계속하고 있다.
그는 1983년 재직 중이던 학교에서 재단과 분규를 겪은 끝에 승리했지만 결국 사표를 쓰고 나와버렸다. 그와 함께 학교를 나온 교사 4명을 포함, 모두 8명이 함께 투자해 설립한 것이 마산학원이었다. 그 중에는 지난 2000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고인이 된 박만수 선생도 있었다. 박만수 선생은 서울대를 졸업하고 처가가 있는 마산에서 농민운동가 임수태씨 등과 함께 70년대부터 독서회 서클을 하던 중 공안당국에 적발돼 해직당한 인물이었다. 마산학원은 이처럼 당국의 요시찰 대상이 될만한 이른바 '운동권 교사'들이 많았다.
90년대 들어서도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하면서 일찍부터 경찰의 주목을 받아온 이장규, 성명현, 이우열 등이 마산학원 강사로 왔다. 전교조 해직교사들이 이 학원에서 임시로 강사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공안당국의 감시를 받게 됐다. 수시로 정보과 형사들이 학원을 드나들었다. 하지만 학원의 인기는 갈수록 높아져 갔다.
"다른 학원에서는 가르치지 않는 사회과학 교재들이 그 어떤 참고서보다 효과적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의 성적이 좋았고, 학원의 인기도 높았죠.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학원을 감시하러 오던 정보과 형사도 자기 조카를 데려와 '꼭 서울대에 합격시켜달라'고 부탁한 일도 있었고, 심지어 박호철 선생 등을 내보낸 학교의 이사장도 자신의 아들을 마산학원에 보냈다.
하지만 박호철 선생은 한 번도 이 학원의 원장을 맡지는 않았다. 그냥 국어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만 전념하면서 노동운동가 문성현, 농민운동가 임수태, 시민운동가 허정도, 교육운동가 김용택, 경남대 교수 김용기 등과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 시국을 토론하고 지역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을 물심양면으로 후원했다. 하지만 그는 당시의 후원 내용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기를 꺼렸다.
지금 그는 아내와 둘이 창원의 한 아파트에 산다. 1남 1녀를 두었지만 모두 성장해 독립했다. 학원은 처음 설립 당시 동료들과 약속했던 것처럼 딱 60세가 되던 해에 정리하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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