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 분위기가 갈수록 비장해지고 있습니다. 지난 금요일 서울에 볼 일이 있어 갔다가 저녁에 명동성당 앞에 가봤습니다. 역시 용산 철거민 참사 추모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이날 촛불집회는 작년의 그것과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습니다. 날이 춥기도 했지만, 억울한 죽음의 역사가 되살아나고 있는 상황에서 참석자들의 마음도 꽁꽁 얼어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참석하신 분들도 유난히 국가범죄, 국가폭력에 의해 희생된 분들의 유가족들이 많았습니다. 동병상련일까요? 1987년 6월항쟁 당시 경찰의 최루탄에 맞아 숨진 고 이한열 학생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를 비롯한 민주화운동 유가족들은 물론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로 아버지를 잃은 박봉자 여사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앞줄 흰 목로리를 하신 분이 박봉자 여사, 그 뒤 대각선으로 눈을 감고 계신 분이 고 이한열 학생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입니다.
이날 집회현장에서 불리워진 노래도 한결같이 비장한 곡들이었습니다. '시민악단'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한 젊은이들은 '아침이슬'과 '님을 위한 행진곡' '함께가자 우리 이길을' '그날이 오면' '부치지 못한 편지' 등을 불렀습니다.
유가족들은 눈을 지그시 감거나 노래를 따라부르며 억울하게 숨진 아들이나 아버지를 생각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시민악단'이 부른 노래 중 애도의 분위기와 묘하게 딱 맞는 곡이 있었습니다. '부치지 못한 편지'였습니다. 정호승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이 노래를 정말 오랫만에 숙연한 마음으로 들었습니다. 함께 한 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부치지 않은 편지-정호승 시
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보고
꽃피기는 쉬워도 아릅답긴 어려워라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사랑과 죽음이 자유를 만나
언 강 바람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 흘러 그대 잘가라
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되리니
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되리니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
뒤돌아 보지 말고 그대 잘가라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사랑과 죽음이 자유를 만나
언 강 바람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 흘러 그대 잘가라
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되리니
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되리니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
뒤돌아 보지 말고 그대 잘가라
그대 잘가라, 그대 잘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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