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같이 간 우리 딸 현지가 “아빠 꽃 하나 사요.” 하는 바람에-솔직히 말하자면 12년 공부를 마친 아들에게 꽃다발은 하나 안겨야겠다 싶어서 도로 밖으로 나와 작은 꽃다발을 장만했습니다.
이 날 우리 아들 현석은 꽃다발을 두 개 받았습니다. 아들 엄마는 3년 째 와병 중이라 나오지 못했지만, 현석의 예쁜 여자친구가 꽃다발을 들고 축하하러 왔더랬습니다.
받은 꽃다발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목이 잘렸다고는 하지만 다발로 묶인 꽃들이 죄 죽었다고 하기는 어려워서 차마 버리지 못하고 주둥이 넓은 병에 물을 담아 꽂았습니다.
다발을 푸는데, 무슨 비(非)자연이 그렇게나 많은지요. 비닐이 넉 장 나오고 얇은 부직포는 다섯 장 나오고 얇은 부직망은 둘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리본이 둘 있었고요, 친친 동여맸던 철사도 여덟 개인가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었습니다. 꽃대가 여리다 보니 이것을 곧게 세우려고 철사를 덧대어 푸른 테이프로 둘둘 감은 꽃도 여럿 있었습니다. 비(非)자연 또는 부(不)자연 그 자체였습니다.
요즘 졸업식 철인데도 꽃이 옛날처럼 많이 나가지 않고 오히려 줄었다는 신문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이를 두고 대부분은 경기가 안 좋아서 그렇다고들 풀이를 하지만 저는 달리 생각합니다.
물론 꽃다발에 쓰인 갖은 비자연과 부자연을 보고 든 생각입니다. 사람들이 꽃을 보고 옛날만큼 감흥을 많이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뭐 이런 것입니다.
생각해 보시지요. 꽃은 자연입니다. 자연의 아름다움입니다. 그런 자연의 아름다움이 한 데 뭉쳐져 있기 때문에 꽃을 좋아한다고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꽃다발이 사실은 그런 자연이 아니라 물론 대부분이 꽃이기는 하지만, 꽃을 다발로 만드는 과정에 숱한 비자연과 부자연이 들어가니까 감흥이 줄어들지 않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꽃을 감싸듯이 받치는 딱딱한 비닐도 많이 있습니다. 이 모두가 비자연 부자연일 뿐 아니라 결국은 쓰레기 취급을 받고 이미지도 느낌도 좋지 않은 것들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꽃다발에 대한 호감이 줄어들게 됐으리라 짐작합니다. 아닌가요? 꽃 농사 짓는 이들에게는 참 미안합니다만, 지금이 정상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예? 농사가 아니라 산업이라고요?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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