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생각-김훤주

뜯겨나간 민들레와 ‘민들레 친구들’

김훤주 2009. 2. 7.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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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는 나중에 자기가 떠나왔던 소행성 B612호로 돌아갑니다. 알려진대로 뱀에게서 독을 빌려서 그리합니다. 거추장스러운 몸은 남기고서 말입니다. 이런 얘기를 생뚱맞게 왜 하느냐 하면, 상상력이 아주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지요.

어린 왕자가 비행사 아저씨한테 말합니다. “누구에게나 별은 있지요. 하지만 다 똑같은 별은 아녜요. 여행을 하는 사람에겐 별은 길잡이예요. 어떤 사람들에겐 작은 빛에 지나지 않고요. 학자에게 별은 문젯거리겠지요. 내가 만난 상인한텐 별이 돈이고요. 그러나 별은 말이 없어요. 아저씨는 그런 사람들하고 다른 별을 갖게 될 거예요…….”

돌아갈 즈음해서 하는 말입니다. “아저씨가 밤에 하늘을 바라보게 되면, 내가 그 별들 중의 한 별에서 살고 있고, 그 별들 중의 한 별에서 내가 웃고 있을 것라는 말이에요. 그러면 아저씨에겐 모든 별이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일 거예요. 아저씨는 웃을 줄 아는 별을 가지게 될 거예요!”

멋지지 않습니까? 별을 보면 어린 왕자가 생각나고, 어린 왕자가 생각나면 그이의 멋진 웃음이 떠오르고, 그 웃음이 떠오르는 순간 마주보는 별조차도 웃게 되고. 그러면 자기 얼굴에 웃음이 머물게 되고. 그래서 저는 세상 살아가는 보람 가운데 으뜸을 상상력으로 꼽는답니다.

이태 전 우리 동네 파출소 건물로 이번에 중3 되는 딸이랑 놀러 갔다가,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건물 사이에 뿌리내리고 꽃을 피운 장한 민들레 두 ‘그루’ 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 주일 뒤에 ‘밤새 안녕하신가?’ 싶어 찾아갔는데 슬프게도 말짱하게 다 뜯겨나가고 없었습니다.


민들레가 파출소 건물 관리하는 이들에게는 쓰레기 따위로 보였나 봅니다. 꽃봉오리까지 맺혀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그리고 꽃대가 여럿 있어서, 뜯겨 나가지 않았다면, 가을까지 쉴 새 없이 피고지고를 되풀이할 텐데도 말입니다.

그러면서 저와 딸은 민들레 뜯어낸 이를 두고 참 마음이 메마른 사람이구나, 속으로 타박하는 생각과 말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도 많이 메말라 있다는 생각을 이번에 하게 됐습니다. 민들레 뜯어낸 이보다는 덜하지만요. 얇은 그림책 ‘민들레 친구들’을 보고 든 생각입니다.

사랑하는 선배 서정홍 농부 시인(어쩌면 오늘 만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은 이리 말했습니다. “민들레도 어디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지요. 그러나 민들레 한 포기에도 진딧물, 개미, 무당벌레, 사마귀, 노린재, 나비, 벌과 같은 여러 곤충이 함께 산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그렇습니다. 조그만 민들레에 어떻게 이리 많은 생명들이 깃들어 있을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입니다. 서정홍 선배가 꼽아놓은 명단에는 이름이 올라 있지 않지만, 하늘소도 있고 풍뎅이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냥 하늘소다 풍뎅이다 뭉뚱그려 이르지만, 낱낱이 따져보면 이리 또 갈립니다. 털두꺼비하늘소 삼하늘소 줄진하늘소붙이. 풍뎅이 사슴풍뎅이 연노랑풍뎅이 장수풍뎅이 등등……. 사람들은 자기한테 잘 구분이 안 되면 통칭해 버리는 나쁜 버릇이 있나 봅니다.

그림책 ‘민들레 친구들’을 되풀이 읽은 어른이나 아이는 이제 민들레가 민들레로만 보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도 여태 민들레를 민들레로만 봐 왔으나(쓰레기 비슷한 존재로는 보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리 보이지 않습니다.

여러 생명들이 야무지게 어우러져 있는 공동체
로 여겨집니다. 어쨌거나 이
그림책이 좀 더 일찍 나오지 않았고, 그래서 지금에야 읽을 수 있었다는 것이 사실 제게는 커다란 다행입니다.

이태 전 봄날 동네 파출소 건물 틈새에서 민들레가 뜯겨나가기 전에 봤다면, 민들레 그 뿌리 뽑힌 상처가 저와 제 딸 마음에도 분명히 크게 남았겠기 때문입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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