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용산참사를 보니 한옥신 검사가 그립다

기록하는 사람 2009. 2. 4.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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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 철거민 참사를 놓고 경찰과 검찰에 대한 불신이 높아가고 있다.

경찰의 무모한 진압작전으로 인한 비극도 비극이지만, 그 이후 유족들을 따돌리고 일사천리로 시신 부검을 해치운 것은 물론, 경찰조직이 직접 나서 숨진 철거민들을 '폭도'로 매도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기가 찬다.


오늘 뉴스를 보니 동네의 경찰지구대까지 동원해 아파트단지에 철거민들의 폭력성을 부각하는 사진을 게시하는 등 여론전(戰)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경찰이 이럴 수 있는 것은 최고권력자인 대통령에게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TV에 나와 "법을 위반하는 사람,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을 처벌하는 경찰을 앞뒤 가리지 않고 징계한다면, (경찰이) 일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며 진압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2009년 철거민 참사와 1960년 북마산파출소 방화

사진 출처 : http://issue.tistory.com


나는 어제(3일) 밤 MBC 'PD수첩'을 통해 시신만이라도 보게 해달라고 울부짖는 유족들의 절규를 보며, 1960년 3·15마산의거 때의 '북마산파출소 방화 사건'을 떠올렸다.

당시 경찰은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군중에게 총을 쏴 3월 15일 하루 사이에 9명의 시민을 죽였다. 다음날인 16일 최인규 내무부장관은 진상발표를 통해 "데모군중의 사인은 압사인지 총사인지 모르겠다"고 뜬금없는 소리를 늘어놓았다.

또 최남규 경남경찰국장은 경찰의 발포를 변명하며 당구의 '쓰리쿠숑' 원리를 강변했다. 하늘을 보고 공포를 쏘았는데 그 총알이 공중으로 날아가는 도중 군중이 던진 돌멩이와 '키스'를 하여 되돌아오다가 군중의 뒤통수에 맞았다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경찰의 '북마산파출소 방화 조작'이 이뤄졌다.

박세현(왼쪽), 정상숙씨가 수갑을 찬 채 현장 검증을 하고 있다.

경찰이 길가던 스물 두 살의 청년 박세현을 이유없이 붙잡아 그의 소지품 중에서 운전면허증이 발견되자 갑자기 '자동차=휘발유'라는 등식을 적용, 방화범으로 몰아버린 것이었다.

경찰은 이를 입증하기 위해 난데없이 바께스와 유리병·검은 헝겊 등을 가지고 와서 "이 바께스에 휘발유가 든 병을 넣어가지고 와서 북마산파출소에 던진 다음, 솜에 불을 붙여 방화했다고 불어라"며 무자비한 고문을 자행했다.

이렇게 방화범을 조작하는 과정에서 경찰은 민주당 도의원 정남규와 그의 아들 정현팔, 그리고 운전수 정상숙 등을 공범이자 지령을 내린 자로 엮어 넣었다. 경찰은 또한 정남규가 1946년 남로당에 가담한 바 있는 공산주의자이며, 박세현은 6·25때 부역자라고 우겼다. 특히 22세의 박세현이 12세 때 부역을 했다는 게 설득력을 얻기 어렵자 그의 나이를 32세로 조작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정권과 경찰의 이같은 음모는 용기있는 검사들의 활약에 의해 좌절되고 만다. 그들은 부산지검에서 마산사건 전담수사를 위해 파견된 한옥신 부장검사와 허형구·서윤학 검사였다.

한옥신 검사는 경찰이 증거물로 제시한 휘발유 바께스와 사이다병 6개, 광목천 등을 면밀히 조사한 결과 바께스는 15일밤 경찰이 서성동 주유소에서 빼앗은 것이며, 사이다병과 광목천 또한 경찰이 이웃 식당에서 가져온 것임을 밝혀냈다. 한 검사가 주유소와 식당 주인들의 증언을 들이대자 경찰은 비로소 조작을 시인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경찰은 크게 반발하기 시작했다. 21일 최남규 경남경찰국장은 이강학 치안국장에게 수사지휘 검사를 바꿔치워야 한다고 건의했고, 자유당 당무위원회에서도 "한옥신이 민주당 앞잡이 역할을 하고 있으니 바꿔치우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한 검사팀은 경찰의 조직적인 반발에도 불구하고 발포경관들을 구속하기 위한 작전에 들어갔다.

김주열 군의 시체를 봐야 한다는 시민들과 저지하는 경찰.

25일 오후 5시 30분 한 검사는 허형구·서윤학 검사 및 이홍우 수사관 등과 함께 구속영장을 준비하여 마산경찰서로 갔다. 그러나 영장이 발부된 경찰관들은 이미 숨어있는 상태였다.

한 검사는 손석래 경찰서장을 만나 "국회조사반의 조사내용을 알아서 보고하라는 상부의 지시가 있으니 경찰관들을 불러 달라"고 요청했다. 한 검사는 손 서장이 의심하지 않도록 구속할 경찰관 5명을 포함한 15명의 명단을 내놓았다.

얼마 후 별다른 의심없이 명단에 포함된 경찰관들이 서장실로 들어오자 검사와 검찰수사관은 기습적으로 5명의 경찰관에게 수갑을 채웠다.

2009년 한국엔 한옥신 검사가 없는가


이 때 구속된 5명은 △박종표 경위(마산경찰서 경비주임) △김종복(남성동파출소 주임) △주희국(마산경찰서 수사계 형사) △이종덕(마산경찰서 수사주임) △이종한(북마산파출소 순경) 등이었고, 혐의는 경찰관 직무집행법 위반이었으나 이후 허형구 검사에 의해 살인 및 살인미수죄로 죄명이 바뀌어 기소됐다. 이 일로 인해 마산사건을 공산폭동으로 몰아가려던 경찰의 음모는 좌절됐다.

이들 검사는 또한 경찰이 숨진 시위군중의 호주머니에 '인민공화국 만세'라고 쓴 유인물을 넣어놓고 '공산당의 사주에 의한 폭동'으로 몰아가려던 음모도 밝혀냈으며, 김주열 열사의 시체에 돌을 매달아 바다에 유기한 범인이 마산경찰서 박종표 경위라는 것도 밝혀냈다.

사진 : http://bloggernews.media.daum.net/news/2480791

49년 전 마산에는 이처럼 용기있는 검사들이 있었다. 그러나 2009년 용산 철거민 참사 수사를 맡은 정병두 검사는 '시신 부검에 유족들의 동의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기자들의 물음에 무표정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영장 받을 겁니다." "그건 동의서 필요 없습니다."

TV화면에서 본 정병두 검사의 표정없는 얼굴과 싸늘한 말투가 너무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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