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진짜 복 받은 중국 시안 가로수

김훤주 2008. 12. 20.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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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고속도로 아닌 국도로 자동차를 타고 대구 들렀다가 돌아오는 길에 밀양 상동면에서 머리께가 잘려나간 가로수 플라타너스를 봤습니다.

가로수를 자치단체 사람들이 한 2.5m나 3m 높이에서 싹둑 잘라버려 놓았습니다. ‘짜리몽땅’이 거의 망치 또는 막대기 수준이었습니다.

올 봄 4월에는 서울 강남에서 대부분 가지가 잘린 가로수 플라타너스를 봤습니다. 위로 길게 줄기는 남겨뒀지만 옆으로 뻗은 가지는 굵든 가늘든 다 쳐 버렸더군요. 이 또한 황량했습니다.

밀양 상동과 서울 강남의 가로수.


옛날부터 저는 우리나라 자치단체들의 가로수 관리가 무척 못 마땅했습니다. 생명의 본성을 북돋지 못하고 자꾸 깔아뭉개려 하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는 했지만 제가 전문 지식이나 다른 대안이 있지도 않고 해서 그냥 가만히 있었더랬습니다. 전깃줄에 걸리지 않거나 태풍에 안 쓰러지록 저리 한다 따위 사정이 있으리라 여기면서 말입니다.

그러다가 업무 덕분에 중국에 다녀올 기회가 있었습니다. 2005년 9월입니다. 중국 시안(西安)에 머물렀습니다. 진시황과 그이의 엄청나게 큰 무덤 병마용으로 널리 알려진, 유방이 세운 한(漢)나라의 으뜸도시 말씀입니다.

오른쪽 중국 시안 가로수는 전깃줄이 지나가는 가운데 부분만 가지가 잘렸습니다. 하지만 왼쪽의 제 모습대로 살기를 포기당한 밀양 상동면 금곡리 가로수는 전깃줄 따위 장애가 없는데도 이랬습니다.


가로수가 남달랐습니다. 아니, 가로수 ‘관리’가 남달랐습니다. 요즘이 아니라 옛날부터 그리해 온 것 같았습니다. 나무 둥치라든지 관리를 위해 잘라낸 부분이 오래돼 보였습니다.

여기 나무들은 제대로 자라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로수들은 제 모습 그대로 살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데 중국 가로수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똑같은 플라타너스인데도 우리나라 가로수는 마구 잘려 흉물스럽지만 중국 가로수는 진짜 필요한 부분만 사람들이 잘라냈지 다른 데는 멀쩡하게 제 본성대로 자라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때까지만 해도 전선이 위에 걸리면 나무 위쪽은 통째로 다 잘라야 하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꼴만 봐 왔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중국에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가운데가 걸리면 나무 가운데 부분만 잘라 냈습니다. 그러니까 밖으로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 전선을 터널처럼 감싸는 형국이 됐습니다.


그리고 바깥으로 전선이 걸리면 나뭇가지와 가지 사이로 지나가도록만 했지, 나무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사람 위주가 아닌 나무 위주 관리입니다.

중국 나무는 진짜 복 받은 나무입니다. 바로 저 나무가 우리나라에 있었다면 죽었다 깨어나도 저런 대접은 절대 못 받으리라 저는 여깁니다. 70년대 남자 중학생 까까머리 신세나 되지 않으면 다행이지요.


플라타너스 말고 히말라야시더(개잎갈나무)도 마찬가지입니다. 히말라야 산자락 원산지와 마찬가지로 중국 히말라야시더는 가지 끝이 땅을 향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히말라야시더 가로수는 대부분 ‘짜리몽땅’입니다. 우리나라는 동대구역 둘레 히말라야시더가 으뜸이라는데, 그래도 ‘쭉쭉빵빵’ 중국 시안 히말라야시더에는 못 미치데요.

동대구역에서 신천동으로 오는 길에 늘어선 가로수 히말라야시더.

가로수를 저는 우습게 보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는 사람들 정서에 미치는 영향도 크지만 무엇보다 도시를 메마르지 않게 물기를 내뿜고 나아가 여름 기온을 크게 떨어뜨립니다.

물론 나무가 제대로 자라서 잎까지 우거지도록 관리를 할 때 얘기이기는 합니다만. 그렇게 하려면 중국 시안식 관리가 우리나라식보다는 훨씬 더 잘 나을 것 같습니다.

참 엄청나지 않습니까?


그리고 마지막, 길거리에 심긴 것은 아니지만, 진시황 병마용 박물관에 있는 이들 히말라야시더는 정말 장했습니다. 조금 압도당하는 느낌을 받기는 했습니다만, 보기만 해도 온통 시원해지는 히말라야시더였습니다.

우리나라가 금전이나 물질 면에서 중국보다 낫다 해도 그리 크게 으시댈 까닭은 없다고 저는 봅니다. 악다구니 같이 아둥바둥 남들이랑 잘 다투기도 우리가 중국보다 낫지만, 이런 근본에서 저는 저 중국이 부럽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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