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4월 17일 ‘불쌍한 우리나라 가로수’라는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뜻밖에 많은 분들이 봐 주셨습니다. 서울에서 본 플라타너스를 보기로 들며 싹둑 잘라버리는 우리나라 가로수 관리가 잘못됐다는 얘기였습니다.
이번에는 우리 경남에서 무지막지한 가로수 관리의 전형을 봤습니다. 대구 출장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밀양시 상동면 금곡마을 국도 25호선입니다. 플라타너스 나무를 마치 망치나 막대기처럼 만들어놓았습니다.
도대체 왜 이랬을까, 생각을 해 봤습니다. 오른쪽 가로수는 그래도 변명거리라도 있습니다. 위에 지나가는 전깃줄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그랬다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자세히 따져보면 이 또한 설득력이 떨어지지만.
그러나 왼쪽은 전혀 해명이 안 됩니다. 아무 방해물이 없는데도 아주 싹뚝 잘라 놓았습니다. 짐작건대, 한편으로는 무신경하고 다르게는 돈이 들어서입니다. 가지치기를 제대로 하려면 당연히 그렇겠지요.
중국 항저우시 가로수.
어떤 이는, 가로수 줄기가 너무 위에까지 자라는 경우 나중에 여름에 태풍이 불면 쉬 쓰러지기 때문에 안 되고 그런 일을 막으려고 가지를 짧게 친다 할 것입니다.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제가 보기에는 사람 중심 돈 중심 생각입니다. 물론 플라타너스는, 제가 알기로 히말라야시더와 더불어 천근성(淺根性) 나무의 대표격이기는 합니다.
위로 자라는 딱 그 높이만큼 뿌리가 땅에 박힌다는 메타세콰이어와는 달리, 뿌리가 깊이 내려가지 않고, 그래서 쉽게 뿌리가 뽑힐 수 있는 그런 나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연히 둘레에 지지대를 만들어 받쳐야 하지요. 이런 나무를 가로수로 골라잡은 대가로 이런 정도는 치러야 마땅합니다. 이렇게 나무의 본성을 해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저는 봅니다만.
좀 자르면 어떠냐고 말씀하시는 분도 틀림없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가로수를 심는 까닭을 저는 한 번 생각해 보십시다, 여쭐 수밖에 없습니다.
왜 심을까요? 보기 좋으라고 심지요. 다음으로는 여름에 시원하라고 심지요. 이 두 목적을 이루는 데에, 지금 같은 가지치기는 전혀 도움이 안 됩니다.
지금 위에 있는 저 모습이 보기 좋으십니까? 당연히 꼴 사납지요. 그리고 자연스레 자랐을 모습과 견주면 여름에 시원하게 하는 효과도 사실 줄고 맙니다.
도심 가로수를 제대로 자라게 하는 대구 같은 데는, 예전에 견줘 한여름 온도가 적어도 1도 이상 떨어졌다는 얘기를 제가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여름에 가장 더운 데가 대구라는 보도도, 옛날에는 자주 나왔었지만 요즘은 아예 자취를 감췄습니다.
제가 얼핏 둘러본 중국에서도 옆에 사진처럼 똑바로 관리하지 제멋대로 하지는 않았습니다. 가운데 전선이 닿는 부분을 빼고는 모두 제대로 자라도록 가지치기를 했더군요.
이처럼 원래대로 관리해야 하는 까닭이 한두 개로 그치지는 않겠지만, 어쨌거나 그냥 단순한 관점에서 처음 생겨난 본성을 거스르는 식으로는 제발 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갈수록 깊어집니다.
김훤주
조경학(3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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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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