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지난해부터 전국의 민간인학살 유해매장 추정지에 대한 유해발굴작업을 하고 있지만, 이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새로운 암매장 터가 발견됐다. 이에 따라 진실화해위의 재조사와 함께 암매장 터에 대한 유해발굴도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기자는 지난 9일부터 20일까지 함양군 마천면 지역 주민들을 상대로 탐문취재를 벌인 결과, 마천면 군자리 군자마을과 가흥리 사이에 볼록 솟아 있는 '솔봉'에서 최소 50여 명의 민간인이 국군에 의해 학살된 후 암매장된 사실을 확인했다.
당시 사건을 목격했다는 노인들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1950년 한국전쟁 개전 초기 함양과 진주가 인민군에 의해 함락되기 직전이던 7월 25일께 국군이 후퇴하면서 자행한 전형적인 불법 민간인학살 사건으로 나타났다.
김기태 할아버지가 당시 지켜봤다는 면사무소 뒤 언덕에서 학살터인 솔봉(빨간색 원 안)이 훤히 보인다.
이로 인한 희생자는 대부분 한복과 일부 양복을 입은 비무장 민간인이었으며, 청년들이 대다수인 가운데 노인과 십대 청소년은 물론 미혼여성도 포함돼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저녁무렵에 이들을 트럭에 태워온 군인들은 군자마을 아래 개천을 건너기 전 트럭을 주차한 후, 각각 포승줄로 묶인 피해자들을 일렬로 솔봉 학살현장까지 끌고 갔다. 현장에 도착한 군인들은 우익단체인 대한청년단(한청) 단원들이 미리 파놓은 길이 15~20m, 너비 2m가량의 구덩이 앞에 민간인을 한 명 한 명 세운 후, 착검한 총으로 총검술하듯 찔러 구덩이에 밀어넣은 후 총살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학살 모습을 마천면사무소 뒤 언덕에서 지켜봤다는 김기태(76·가흥리 가채마을) 할아버지는 "우연히 면사무소에 볼일이 있어 갔다가 나오면서 군인들이 사람들을 끌고 솔봉으로 올라가는 걸 보면서 몇 명인지 세어봤더니 52명이었다"고 말했다.
문창권(77·추성리 추성마을) 할아버지는 학살이 있던 날 아침, 한청 단장의 소집에 따라 마을청년들과 함께 그날 아침 삽과 괭이를 들고 학살현장에 구덩이를 팠다고 증언했다.
또 윤갑수(83·덕전리 내마마을) 할아버지는 당시 의용경찰 특공대원으로 목책을 쌓아놓고 경계근무를 하던 중 사건을 목격했으며, 현장이 내려다보이는 군자리 군자마을 조상순(74) 할아버지도 "길게 파놓은 구덩이에 사람을 세워놓고 군인들이 대검으로 찌른 후 총을 쏘아 죽이는 모습을 마을에서 내려다 봤다"고 말했다.
함양군 마천면 군자리 군자마을에서 내려다 본 솔봉. 조상순씨가 지팡이로 학살 암매장터를 가리키고 있다.
목격자들의 증언 중에는 이들을 태우고 온 트럭이 '전라도 남원·구례쪽에서 왔다'는 말도 있었으나, 이후 소문으로는 '진주에서 온 사람들'이란 이야기가 많았다.
이들 증언을 당시 민간인학살 사건의 일반적인 사례에 비춰볼 때 6·25 발발 직후 예비검속된 보도연맹원이나 형무소에 수감 중이던 정치범들을 국군이 후퇴하면서 데려와 이곳에서 집단학살한 뒤 암매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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