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착한, 더 착한, 더더 착한

김훤주 2008. 12. 1.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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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절대 남탓을 하지 않는 사람

저는 이런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남을 탓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언젠가 이 사람이 모는 차를 탄 적이 있습니다. 가는데 앞에서 어떤 차가 길을 막고 있었습니다.

오른쪽 좁은 골목으로 꺾어들어야 하는데 들머리에 자가용 승용차가 길게 걸쳐진 채로 있었습니다. 보통 이런 국면에서 뒷차 운전하는 이는 욕지거리를 바로 입에 달기 십상입니다.

아니면 빵빵 소리를 마구 내면서 앞차 운전자를 바로 나무라는 말을 거칠게 내뱉지요. 그런데 제가 아는 이 친구는 전혀 그러지를 않았습니다. 오른쪽 깜박이 신호를 넣은 채, “아, 가야 하는데, 아, 가야 하는데” 라고만 되풀이 말할 뿐이었습니다.

저는 전에도 이 사람이 착한 줄은 잘 알고 있었지만 그 날 그 국면에서 남을 탓하는 말 한 마디 입에 올리지 않을 때까지는 그 착함이 이런 정도인지까지는 몰랐습니다.

2. 2박3일 술로 같이 망가지면서 갑갑한 하소연 들어주는 사람

저는 이런 사람도 알고 있습니다. 같은 공장 다니는 선배가 ‘복직 취소’로 그냥 잘려 버렸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사정이 이리 진행됐습니다. 노동위원회는 노동자 편을 들었습니다.

그래도 복직을 시키지 않으니까 노동자가 민사 소송을 내었습니다. 1심에서는 노동자가 이겼습니다. 확정 판결이 날 때까지 일단 복직시키라는 명령도 나왔습니다.

그런데 항소심에서는 거꾸로 사용자가 이겼습니다. 이제 대법원에서 마지막 판결을 내야 하는데, 그만 여기서 실수가 끼어 들고 말았습니다.

며칠 안으로 상고장을 내야 한다는 날짜 계산을 잘못한 것입니다. 이렇게 정해진 날까지 상고장을 내지 않으면 상고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바로 항소심 판결로 확정이 되는 것입니다.

사용자가 이것을 놓칠 리 없습니다. 항소심 판결로 확정이 됐음이 전해지자마자 사용자는 곧바로 복지 취소 결정을 내렸습니다.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는 얘기입니다.

날짜 계산을 누가 잘못했는지 따위와는 전혀 상관없이, 황당한 복직 취소로 하루 아침에 밥줄이 잘린 이 노동자는 어디 하소연조차 변변하게 할 데가 없는 갑갑한 상황이 됐습니다.

억울하기도 하고, 그렇기는 하지만 억울함을 털어놓을 데도 마땅히 없는 처지가 된 노동자가, 그날 저녁 이 사람을 불러내었습니다. 금요일 저녁이었습니다. 자기 답답함을 풀어내 놓기라도 해 보자는 작정이지요.

제가 아는 이 친구, 그날 저녁부터 토요일은 물론이고 일요일 밤늦게까지, 2박3일 동안 함께 어울려 고주망태가 되도록 술을 마셨습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그 갑갑한 심정 하소연을 그대로 다 들었습니다.

쉬지 않고 죽 달아서 마셨는지, 아니면 마시다 집에 가서 자고 다시 나와서 또 마시고 했는지는 제가 잘 모릅니다만, 아무런 대책도 없는 상황에서 갑갑하고 속 타는 남의 사정을 술로 떡이 돼 같이 망가져 가면서까지 들어주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3. 이발사가 미안할까봐 잘못 탄 가르마 고치지 않는 사람

제가 아는 사람 가운데는 이런 이도 있습니다. 이 사람은 이발을 하고 나면 가르마 타는 방향이 바뀌곤 합니다. 언제는 오른쪽에 있다가 어떤 때는 왼쪽에 가르마가 가 있습니다.

왜 그런지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이발관에서 머리 다루는 사람이 하는 대로 맡겨두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왜 맡겨 두는지 다시 물었습니다.

이발사가 타는 오른쪽 방향이 아니고 원래 왼쪽이었다, 이리 말하면 이발사가 그런 것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고 미안해 할까봐 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원래대로 돌려놓지 않는 까닭도 물었겠지요. 처음에는 원래 가르마 타던 쪽으로 곧바로 돌려놓았다고 했습니다. 이발관에서 이발사가 마지막 빗질을 마친 다음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그리 했답니다.

어느 날 문득 생각해 보니, 일어나자마자 그리 하면 여지껏 머리를 다듬은 그 이발사가 좀 민망해 할 수도 있겠다 싶었고, 그러다 보니 이발사가 타 놓은 가르마도 나름대로 괜찮겠다 싶어 그대로 두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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