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경제대안 없으면 4년후도 희망 없다

기록하는 사람 2008. 12. 1.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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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현대사의 금기에 도전하는 역사학자 한홍구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는 학자답지 않게 글을 참 쉽고 재미있게 쓴다. 그는 시사주간지 <한겨레21>에 연재한 '한홍구의 역사 이야기'를 통해 '역사는 딱딱하고 지루하다'는 선입견을 깨고 단숨에 인기 필자와 현대사 분야의 인기 강사로 떠올랐다.


그러나 서울시교육청이 발표한 고교 현대사 특강 강사 명단에 그는 없었다. 친일과 고문, 군사문화, 민간인학살과 같은 금기사항처럼 여겨져 온 문제를 거침없이 까발려온 학자였기 때문이다. 그가 쓴 <대한민국사>(한겨레출판, 전4권)는 국방부가 선정한 '불온도서' 목록에 들기도 했다.

서울시교육청이 현대사 강사 명단을 발표하던 25일, 그는 마산YMCA 초청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강연을 하고 있었다.

'우리의 희망이 절망의 산을 넘어간다'는 다소 시적인 부제가 붙은 그의 강연은 솔직히 글보다 재미가 덜했다. 내용 또한 <창작과 비평>(창비) 가을호에 실린 '현대 한국의 저항운동과 촛불'이라는 자신의 글에서 썼던 것과 별로 다를 게 없었다.

다만 그는 강연 말미에 "머지않아 또다시 전교조 해직교사들이 나올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건 글에 없는 내용이었다. 이명박 정권이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의 자발성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한 나머지 누가 돈을 대서 저 많은 양초를 샀냐고 물었듯이, 청소년들이 촛불의 동력이 된 것도 '전교조에 의한 빨갱이 교육의 결과'라고 오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교육청의 현대사 특강도 그런 맥락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이며, 곧이어 전교조를 와해시키기 위한 모든 수단이 동원될 것이 뻔하다는 것이다. 전교조, 각오 단단히 해야 겠다.

그의 글과 강의에서 듣지 못했던 말을 더 듣고 싶었다. 마산종합운동장 동문 앞에 있는 한 식당에서 강연 뒤풀이를 방해하며 한 시간동안 그를 인터뷰했다. (이 때문에 주최측으로부터 단단히 원성을 들었다.)

한홍구.


-왜 수염을 기르나.

△몇 년 전 정수일 교수와 실크로드를 여행한 적이 있는데, 그 때 면도를 안 하니 편하더라. 그래서 그냥 안 깎는다.

-<대한민국사>는 얼마나 팔렸나.
△제법 많이 나갔다. 약 15만 부 정도 팔렸는데, 얼마전 국방부(가 불온서적으로 선정한) 덕에 좀 더 팔렸다고 하더라.

-돈도 많이 벌었겠다. 10% 인세만 해도 상당할텐데….
△한꺼번에 번 게 아니라 5년에 걸친 수입인데다, 워낙 나가는데도 많아서….

-어디에 그렇게 나가나.
△관여하고 있는 단체들도 있고, 평화박물관에도 그렇고….

-글을 너무 쉽고 재미있게 쓰시던데, 비결이 뭔가.
△86년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이 내던 <민중신문>의 기자를 6개월 정도 했는데, 그 경험이 도움이 된 것 같다. 당시 신문이 나오면 회원들끼리 모여서 기사 한 건 한 건에 대한 품평회를 했는데, 어떤 기사는 내용은 충실한데 마치 세미나 자료 같다는 둥 피드백을 받았다. 그 때부터 대중이 읽기 쉽도록 글을 쓰려고 의식을 했다.

-<한겨레21>에 '역사이야기'를 연재한 것도 영향이 있었을 것 같은데.
△그렇다. 대개 학자들은 동료 학자들이 자신의 글에 대해 꼬투리를 잡거나 시비를 걸 것을 의식하면서 글을 쓴다. 자기 글에 대한 독자를 동료 학자로 설정하고 쓰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애매하게 꼬투리잡히지 않도록 쓴다. 하지만 주간지의 글은 학자들이 독자가 아니라 대중을 상대로 하는 것인데다, 내가 자신있는 전공분야이다 보니 편하고 쉽게 쓸 수 있었는 것 같다. 그리고 대중매체이다보니 역사를 불러내면서도 그때그때 벌어지는 사회적 이슈나 사건과 결부시켜 썼다.

15만 권 이상 팔린 [대한민국사]

-민청련에 있었다면 김근태 전 국회의원과도 잘 알고 지냈을 것 같은데, 그를 어떻게 평가하나.

△김 선배에 대해서는 인간으로서 여전히 존경한다. 하지만 정치인으로선 많이 실망했다.

-창비에 쓴 글에서 대중과 운동권 사이에도 장벽이 놓여있다고 지적했는데, 그 장벽을 어떻게 깨야 하나.
△사실 운동권에 있는 사람들은 활동 자체가 대부분 운동권 안에서 이뤄진다. 조중동이 기득권층 내에서만 소통하고, 한나라당은 보수층끼리만 이야기하듯이 운동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운동권은 조중동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잘 알면서도, 운동권과 조중동 사이에 서 있는 대중이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는 잘 모른다.

또한 운동권은 여전히 NL-PD라는 과거의 정파에 매몰돼 있고, 그런 결과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갈라졌다. 나는 어느쪽 편도 아니지만, 갈라진 것 자체가 그야말로 운동권적 행위다.


-대중과 소통을 위해 운동권이 블로그를 하는 건 어떻겠나. 사실은 내가 그렇게 주장해오고 있는 건데….
△정운현씨도 블로그를 하던데…, 그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

-교수님도 직접 블로그를 하면 잘 할 것 같다. 박노자나 홍세화 선생 같은 분도 하지 않는가.
△박노자는 오슬로에 있으니까 시간이 되는지 몰라도, 나는 정말 시간이 없다. 이메일도 열어보긴 하지만 답장도 못보낸다.

-직접 블로그 운영은 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들 블로그에 들어가보기는 하는가.
△그것도 잘 못한다. 블로그 글도 좀 많이 읽고 해야 하긴 하는데, 필요한 글을 찾을 때만 들어간다. 김주완·김훤주 블로그도 촛불집회 관련 글을 인용하려 들어간 것이다.

-어차피 글을 쓰는 직업이고, 워낙 쉽고 재미있게 쓰시니 블로그를 하시면 단시일 안에 파워블로그가 될 것 같다. 꼭 좀 해보시라.
△한 번 고민해 보겠다. 그럴려면 우선 강연을 좀 줄여야 할 것 같고….

-이명박 정권의 남은 임기 안에 또다시 촛불이 타오를 가능성이 있을까.
△글쎄, 에너지를 미리 써버린 측면도 있지만, 가능성이 없진 않다. 계기가 주어지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는 걸 확인했지 않나. 물론 촛불로 인해 다시 무력감을 느낀 사람도 있겠지만, 가능성을 확인한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4년 후 대선에 대비해 진보는 뭘 준비해야 할까.
△구체적이고 경제적인 대안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16대 대선에서는 그런 대안을 가진 노무현을 선택한 게 아니라, 노무현이라는 스타 개인을 찾아낸 것이다. 하지만 그는 기질은 충분했지만, 내용은 빈약했다. 지금부턴 사람이 아니라 대안을 중심으로 사람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렇게 못하면 4년 후 대선에서도 희망이 없다.

-그런 대안이 될만한 사람이 현 정치권 안에는 없나.
△없다는 게 아니라 사람보다는 실현가능한 구체적 정책대안을 만들어내는 게 우선이라는 것이다. 나중에 추미애가 됐든, 최문순이든, 누가 됐든, 진보가 실현가능한 정책대안을 먼저 만들어내고, 그 정책을 사서 가장 잘 실현해낼 수 잇는 사람을 찾아내 키워내야 한다. 그냥 사람을 먼저 놓고 정치게임으로 가면 백전백패다.

-진보세력 안에서 사회주의-사민주의 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는데, 그것도 대안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을까.
△그것도 대중에겐 먼 이야기다. 그야말로 운동권적인, 그들만의 리그인 것 같다.

-예를 들어 북유럽식 복지제도 같은 건 우리가 본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그것도 당연히 연구는 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당장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양극화 문제라든지, 비정규직 문제, 과거사 문제 같은 과제를 어떻게 풀어나가겠다는 구체적인 해법이 나와야 한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나눈 후 인터뷰를 마쳤다. 이틀 뒤, 기자는 그의 이메일로 티스토리 블로그 개설을 위한 초대장을 보냈다. 그가 과연 또 한 명의 지식인 블로거로 나설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블로그를 통해 그의 재미있는 현대사 이야기를 읽고 싶다.

◇한홍구 교수 프로필
-서울대 국사학과 학사·석사
-워싱턴대 역사학 박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현)
-국정원과거사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 위원(전)
-<대한민국사>(전4권), <만화 대한민국사>, <한홍구의 현대사 다시읽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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