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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본 세상

화려한 교향악단, 월급봉투 열어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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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등장인물들의 꿈은 시립교향악단(시향) 단원이 되어 마음껏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펼치는 것이다.

강건우(장근석 분)는 경찰직을 때려치고, 두루미(이지아 분)는 공무원에서 잘리면서까지 교향악단에 인생을 건다. 다른 등장인물들도 비슷하다. 물론 여기에는 각자 음악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깔려 있다.

그러나 음악하는 사람도 입이 있고,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다. 먹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시립교향악단 단원이 되면 생계에 연연하지 않고 음악에 몰두할만한 보수와 근로조건이 보장되는 것일까?

♬관련기사 : 시향 지휘자가 본 베토벤 바이러스
♬관련기사 : 시향 연주자들이 본 베토벤 바이러스

그러나 이번 취재는 쉽지 않았다. 어차피 공개될 수밖에 없는 내용임에도 단원들은 입을 열기를 주저했다. 기자의 유도에 넘어가 이런 저런 어려움을 털어놓았던 사람도 헤어진 후 휴대전화 문자를 통해 "얘기는 익명으로 해주세요. 시향에서 잘립니다. 농담 아니라 진짜 잘려요"라는 당부를 전해왔다.


이들의 그런 두려움은 아마 마산시향에서 있었던 노동조합 결성과 투쟁이 결국 패배로 귀결되고, 앞장섰던 사람들이 대부분 잘려나갔던 경험에서 말미암은 것 같았다.


하지만, 열악한 근무조건을 적극적으로 알려달라는 분들도 있었다. "최저임금에도 못미치는 저임금으로 가장의 책임을 다하긴 너무도 힘이 드네요"라는 문자를 보내온 분도 있었다.


목수정의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도 정치적인>(레디앙)이라는 책을 보면 프랑스 사회가 문화예술인을 어떻게 대접하는지를 알 수 있다. 예술인의 노동자성을 인정해 최저임금을 보장하는 것은 물론이고, 일정 급여를 받지 못하는 미취업 예술인에게는 실업급여도 지급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문화예술은 배고픈 직업'이라는 현실적 명제를 넘어 '배가 고파야 문화예술이 된다'는 말도 안되는 논리를 강요하고 있는 수준이다.

이번 기회에 음악 전공자들이 가장 취업하고 싶어하는 시립교향악단의 월급봉투를 열어봤다.

비상임 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마산시향 단원의 월급은 100만 원 선, 진주시향은 60만 원 선이다. 부양가족이 있는 가장은 말할 것도 없고, 혼자 사는 사람이라도 이걸로는 도저히 생활이 어려운 액수였다.

물론 비상임 시향의 경우, 매일 출근하지는 않고 일주일에 3일, 하루에 4~5시간 정도 근무한다는 조건이다. 하지만 다른 직장을 갖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느 회사 치고 주 사흘씩, 그것도 평일날 출근하지 않겠다는 직원을 채용해줄 곳은 없기 때문이다. 또한 공연이 임박한 시기에는 주 3일 근무 조건은 무시되기 일쑤다.

음악 전공자라면 대부분 선망하는 시립교향악단.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의 이면엔 열악한 보수와 근로조건이 단원들을 괴롭히고 있다. 사진은 드라마 베토벤바이러스 월페이퍼.


그래서 음대 지망생들을 대상으로 한 개인 레슨이나 야간 아르바이트를 뛰고 있지만, 이를 통해 얻는 수입도 많으면 월 50만~60만 원, 적으면 20만~30만 원 정도에 불과하다. 월 보수와 합쳐봐야 100만~150만 원 수준이다.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2~3군데를 뛰어야 한다.


호른을 불던 한 시립교향악단의 단원은 레슨이나 방과후 학교에서도 수요가 없어 야간에 주차안내요원을 했다. 그러다보니 자신의 연주기량을 갈고 닦는데 아무래도 소홀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몇 년 전 오디션에서 탈락함으로써 퇴출당했다. 그는 지금 한 제조업체의 노동자로 일하고 있지만, 음악에 대한 떨칠 수 없는 열정과 좌절감으로 괴로워하고 있다.

상임 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창원시향의 단원들은 마산이나 진주보단 조건이 나은 편이다. 기본급은 60만 원 정도에서 시작하지만, 가족수당과 직책수당, 예능연구수당, 명절휴가비, 기말장려수당 등이 붙어 최소 100만 원에서 평균 150만 원, 좀 경력이 많으면 200만 원이 좀 넘는 정도의 급여가 보장된다. 또한 노동조합도 있고, 오디션도 2년이 아니라 3년에 한 번씩 받는다.

하지만 이들 역시 비정규직이긴 매한가지다. '위촉직'이라는 좀 특수한 고용형태다. 게다가 악기도 시향에서 사주는 게 아니다. 피아노와 콘트라베이스, 타악기 등 큰 악기들 말고는 모두 개인이 구입하고 유지해 항상 최상의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 그 비용도 만만찮다.

창원시향은 모두 84명으로 구성돼 있다. 지휘자 1명과 부지휘자 1명, 악장 1명, 수석 12명, 부수석 9명, 단원 55명이다. 행정적으로 시향의 살림을 챙기는 단무장과 함께 악보, 기획, 악기를 담당하는 사람도 각 1명씩 있다.

시향은 시립예술단에 속해 있는데, 함께 속한 합창단은 60명, 무용단은 38명으로 근로조건과 보수는 시향과 거의 동일하다.

정기연주회는 연 8회, 기획연주회 연 4~5회를 하도록 되어 있고, '찾아가는 음악회', '런치타임 음악회', '기업사랑 음악회' 등과 각종 외부초청 연주회까지 합치면 연간 약 70~80회의 공연을 한다. 결코 적지 않은 횟수이며, 노동강도 역시 센 편이다.

창원시립교향악단과 피아니스트 김영호 교수와 협연 리허설 장면.


지난 6일 성산아트홀 대극장에서 열린 정기연주회에는 1층 1200석이 꽉 찰 정도로 시민들의 호응이 좋았다. 10월 연주회 때는 1·2층 1700석이 모두 차기도 했다. 마산이나 진주시향도 창원보다는 횟수가 적지만, 비상임 악단 치고는 왕성한 연주를 하고 있다.


경남도립 교향악단은 없지만, 부산광역시에는 있다. 부산시향의 보수와 근로조건은 창원보다 약간 나은 편이다. 한국 최고의 대우를 받는 곳은 역시 서울시향이다. 서울시향 단원들은 대부분 해외 유학파로 한국 최고의 연주기량을 자랑한다. 하지만 한국 최고라는 이들 단원들의 보수 역시 5급 공무원 급여와 비슷한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한국에서 음악하는 사람들은 그 분야의 최고라 하더라도 다른 직종에 비해 턱없이 열악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상임이든, 비상임이든 시향 단원을 뽑는 오디션에는 전국의 음악 전공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든다. 음대 지망생이 97년 IMF 이후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3명을 뽑는 시향 오디션에 100명 정도가 응시하고 있다.

이처럼 돈은 안되지만, 음악에 대한 사랑으로 충만한 예술인들의 순수한 열정을 지방자치단체가, 아니 우리 사회가 악용해 살인적인 임금과 근로조건을 강요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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