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돈 안되는 음악, 왜 하냐고 물었더니…

기록하는 사람 2008. 11. 12.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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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향악단 단원이 되는 것은 음대를 나온 악기 연주자 대부분의 꿈이다. 그러나 그들 중 단 1~2% 정도만 꿈을 이룰 수 있다.

음대 또는 대학원까지 나온 음악인들은 그동안 들어간 교육비 만으로 흔히 의사들과 비교되곤 한다. 어린 시절부터 각종 레슨과 악기 구입 등에 든 비용을 생각하면, 6년제 의대를 나온 의사들보다 월등히 많은 비용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늘구멍을 통과해야 될 수 있다는 시향 단원들이 받는 보수는 의사와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하다. 물론 각 시향마다 다르긴 하지만, 비상임 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시향의 경우 그들의 보수나 근로조건은 처참할 정도다. 심지어 근로기준법에 규정된 최저임금도 지급하지 않는 시향이 많다. 그마나 좀 낫다는 상임 시향 단원들도 최저임금을 겨우 넘는 정도다.

물론 비상임 시향의 경우, 매일 출근하지는 않고 일주일에 3일, 하루에 4~5시간 정도 근무한다는 조건이다. 하지만 다른 직장을 갖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느 회사 치고 주 사흘씩, 그것도 평일날 출근하지 않겠다는 직원을 채용해줄 곳은 없기 때문이다. 또한 공연이 임박한 시기에는 주 3일 근무 조건은 무시되기 일쑤다.

♬관련 글 : 화려한 교향악단, 월급봉투 열어봤더니…
♬관련 글 : 시향 지휘자가 본 베토벤 바이러스
♬관련 글 : 시향 연주자들이 본 베토벤 바이러스

뿐만 아니라 원칙적으로 겸직 자체도 금지돼 있다. 공무원에 준하는 품위유지 의무도 있다. 그래서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카바레나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건 불가능하다. 몰래 하려고 해도 요즘은 클래식 연주에 대한 수요가 없다. 재즈나 7080 대중음악만 요구하기 때문이다.

창원시립교향악단이 정기연주회 리허설을 마친 뒤 지휘자와 악장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앞서 '화려한 교향악단, 월급봉투 열어봤더니…'라는 포스트에서 교향악단 단원들의 월급수준을 공개했더니, 여러 네티즌이 익명의 댓글을 통해 '월급은 적어도, 레슨을 통해 수 백~수 천만 원을 번다'거나, '입시생 한 명을 시향단원이 가르치면 월 100만 원'이라는 등 문제를 제기했다.

물론 시향에서 받는 60만~100만 원의 보수로는 생계가 어렵기 때문에 단원들은 '보따리 장수'라 부르는 개인 레슨이나 방과후 학교의 특기적성교육 교사를 겸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도 바이올린이나 첼로, 클라리넷, 플룻 등 일부 인기종목에나 해당되는 말이다. 수요가 많은 종목이라 하더라도 시간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1~2명 이상 레슨을 하기는 어렵다. 방과후 학교 교사도 마찬가지다. 2개 학교를 뛰어봐야 많이 벌면 100만 원 선이다. 게다가 이건 안정적인 수입이 아니라 유동적이다.

그렇게라도 과외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사람은 제한돼 있다. 음대 지망생 중에서도 성악과 피아노, 작곡 전공자를 빼면 악기 레슨을 필요로 하는 관현악 전공자는 더 줄어든다. 그런데, 경남도내에만 3개의 시립교향악단이 있고, 이들 시향에 속한 단원 수만 200여 명에 달한다.

또한 호른이나 튜바, 비올라, 콘트라베이스, 타악기 등 비인기 종목은 아예 레슨 수요가 없다. 그런 비인기종목의 연주자들 중에는 야간에 주차안내요원이나 대리운전을 하는 이도 있다.


문제는 시향 단원이라는 게 끊임없이 실력을 갈고 닦지 않으면 가차없이 도태된다는 것이다. 드라마에서는 주야장창 전체 단원들이 모여 합주 연습을 하는 모습만 나온다. 하지만, 현실 세계의 시향 단원들은 출근하지 않는 날에도 개인적으로, 또는 파트별로 자기 악기에 대한 연습을 게을리할 수 없다. 실력을 계속 업그레이드하지 못하면 2년 만에 한 번씩 있는 재오디션에서 영락없이 탈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렇게 해서 시향을 떠나야 했던 단원들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몇 년 전 마산시향이 무더기 오디션 탈락으로 심한 갈등을 빚었던 것도 그런 배경이 있다. 창원시향에서도 몇 년 전 10여 명이 오디션 탈락으로 시향을 떠나야 했다.

결국 시향 단원은 자본주의 사회의 보편적 개념으로 볼 때 '좋은 직업'은 못됐다. '돈도 안되고, 고용도 불안한 직업'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음악하는 사람들은 왜 그토록 시향 단원이 되고싶어 할까? 바늘구멍보다 더 좁다는 시향에 들어가기 위해 4년제 음대를 나오고도 모자라 다시 대학원까지 진학하는 그 무모한 열정은 뭘로 설명할 수 있을까?

취재에 응한 연주자들의 대답은 똑 같았다. 그냥 '음악이 좋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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