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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생각-김훤주

21세기 ‘빨갱이’와 150년 전 ‘천좍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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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860년대의 공포 천좍쟁이

천좍을 아시나요? 아마 모르실 테지요. 하지만 우리나라 국어사전에 떳떳하게 실려 있는 이른바 ‘표준말’입니다. 제가 지어낸 얘기가 아니라는 말씀도 됩니다.

천좍은요, 천주학(天主學)이 줄어든 낱말입니다. 그러니까 천좍쟁이는 천주학쟁이가 본디말이겠고, 천주학을 하는(또는 믿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 됩니다.

천주학은 가톨릭을 이릅니다. 개신교는 그보다 나중에 들어왔지요. 1784년에 이승훈이 우리나라 역사에서 처음으로 영세를 받고 가톨릭 신자가 됐습니다.

그리스도교는 당시 억눌리던 이들에게는 해방하는 메시지였습니다. ‘하느님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는 교리 앞에, 상놈과 여성은 물론 몰락 양반까지도 크게 동감했습니다.

반상(班常) 차별과 남녀(男女) 유별 논리를 등에 업고 갖은 권력과 땅과 돈을 오로지하던 양반에게는 이런 천주학이 아마도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을 것입니다.

조금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조상 제사 지내는 문제가 사단이 됐음을 알 수 있으나, 만약 그 문제가 불거지지 않았어도 당시 양반 사회는 천주교를 어떻게든 적대하고 탄압했을 것입니다.

(지금 관점에서 비판하자면 우리나라 선교를 맡고 있던 프랑스 파리 외방선교회가 이 문제를 지금 천주교처럼 부드럽게 대처했다면 천주교가 피 흘리는 충돌 없이 들어오지 않았겠나 말을 할 수는 있습니다만.)

이렇게 해서 신해년(1791) 신유년(1801) 기해년(1839) 경신년(1860) 병인년(1866)에 사옥(邪獄)이 생겼는데 특히 흥선대원군의 병인사옥 때는 8000명 남짓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포졸들이 눈에 불을 켜고 돌아다닙니다. 천주학을 하는 것들을 잡으려고 말입니다. 그러다가 ‘천좍을 하는 것들이 어디 모여 있다.’는 얘기를 듣습니다.

천좍쟁이들은 그러면 죄다 끌려가 신앙을 버리지 않고는 살아나지 못합니다. 반면 ‘천좍쟁이’를 일러바친 사람들은 이리저리 포상금을 받습니다.

여기저기서 ‘천좍쟁이’를 일러바치는 수군거림이 일어납니다. 나중에는, 천주학과는 상관이 없어도 자기한테 밉보인 사람이라는 이유로 ‘천좍쟁이’라 거짓으로 아뢰는 일도 생깁니다.

드디어 ‘천좍쟁이’는 공포 바이러스에 감염됐습니다. ‘천좍쟁이’는 이제 저주와 마법에 걸린 낱말이 됐습니다. 누구든 ‘천좍쟁이’라는 딱지를 받는 순간 죽음 그늘이 내려옵니다.

그래서 지금도 전라도인가 충청도 어느 한 구석에서 나이 드신 어른들 사이에서는 “천작을 할 놈”이라는 욕이 남아 있답니다. ‘망할 녀석’쯤이 되겠지요.

2. 1950년대의 저주 빨갱이

빨갱이는 아시나요? 아마 다들 잘 아시리라 봅니다. 이 또한 우리나라 국어사전에 당당하게 실려 있습니다. ‘공산주의자’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네요.

미국 공산주의자 존 리드를 다룬 '레즈'.

빨갱이의 대표격인 레닌 선생.

그러나 지금 현실에서 공산주의자만으로 범주를 좁히기는 어려울 것 같고요, 사회주의 일반에 대한 신념과 실천 의지를 간직한 사람이라 보는 편이 더 합당할 듯합니다.

사회주의는 아시는대로 자본주의에 맞서는 개념으로 생산수단의 사회화와 민주주의를 통해 사회 구성원 전체의 평등을 지향하는 사상이고 운동입니다.

빨갱이의 유래는 무엇일까요? 제가 미뤄볼 때,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나중에 공산당)의 군대조직인 적군(赤軍)에서 왔을 것입니다. 중국 공산당도 자기 군대조직을 홍군(紅軍)이라 했지요.

적군은 1917년 혁명에 성공한 뒤 짜르 잔재와 지주․자본가 등 반동(反動)세력과 내전을 벌이거나 또는 제국주의 세력의 간섭에 맞서는 전쟁을 치러냈고 결국은 이겼습니다.

빨갱이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낱말이 아닙니다. 영어권에서도 Reds(레즈)라는 말이 광범하게 쓰입니다. 일본에서는 중국글로 赤(적)이라 쓰고 아카(あか)라 이릅니다.

빨갱이는 빨치산과 관련은 있지만 그 자체는 아닙니다. 알려진대로 빨치산은 비정규 유격부대를 뜻하는 러시아말 Partizan(그리고 프랑스말 Partisan)에서 왔습니다. 빨치산에서 빨갱이가 유래되지는 않았습니다.

1945년 해방 공간 이후 1950년 한국전쟁을 거치며 빨갱이도 공포 바이러스에 감염돼 갔습니다. 천좍쟁이와 규모와 절차에서 조금은 다르지만, 크게는 같은 과정을 거쳤습니다.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상황에서 그냥 ‘빨갱이’로 찍히면 끝장이었습니다. 소설 <태백산맥>에도 나오지 않나요? 누군가가 “저 새끼 빨갱이야.” 하면 바로 끌려 나가야 했던 상황.

전투 중에 잡힌 진짜 빨갱이 같으면 차라리 괜찮았습니다. 전투와는 아무 상관없는 민간인을 두고 빨갱이라 할 때 공포와 저주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경남은 물론 곳곳에서 드러난 민간인 학살 현장에는 그런 공포와 저주가 어려 있습니다. 한 마을을 그냥 몰살하기도 했지만 대체로는 엉터리로나마 빨갱이를 추려내는 과정을 거쳐 처분했습니다.

같은 마을이나 이웃에 사는 사람의 증언 또는 지목은 치명적이었습니다. 누군가가 자기를 일러 토벌대에 ‘빨갱이’라 한 마디 하면 그로부터 그는 바로 파리보다 못한 목숨이 됩니다.

3. 4.3항쟁 있었던 제주서는 ‘폭도’가 욕설

좀 벗어나는 얘기지만, 1948년 4.3항쟁이 터졌던 제주도에서는 그런 저주와 공포의 낱말이 ‘폭도’였다고 합니다. 1982년 대학 1학년 때 처음 제주도 사람을 만났고 그 사람이 같은 학과 동기생이었는데 제주도서는 ‘폭도’가 욕으로 쓰였다 했습니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간간이 쓴다고 했는데 이런 식입니다. “야 이 폭도 새끼야.” 아마도 보통 우리가 지금 쓰는 식으로 옮기자면, “야 이 뒈질 녀석아.”가 되겠지요.

그렇습니다. 4.3항쟁 당시 뭍에서  “빨갱이야.”라는 지목이 가졌던 바와 똑같은 무게로, 같은 동네 이웃이 누군가를 일러 “저거 폭도야.” 이르기만 하면 곧바로 죽음을 겪어야 했다는 얘기입니다.

제주도 전체의 4분의1이 4.3항쟁과 관련돼 이런저런 피해가 났다니, 이 와중에 겪어야 했을 공포와 저주와 혼란은 오죽했을까요? 그 극심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3. 주술에 쓰이는 말 : 천좍쟁이, 빨갱이, 폭도

150년 전 ‘천좍쟁이’와, 비슷한 시절 제주도의 ‘폭도’가 그랬듯이, 1950년대 전후 맹위를 떨친 ‘빨갱이’도 요즘 들어 욕설로 전화하는 낌새가 뚜렷하게 느껴집니다.

맘에 들지 않는 이를 통칭해 ‘빨갱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독재에 반대하고 생각이 반자본적이거나 민주주의 지향이 센 이를 몰아치는 경우가 좀더 많은 것 같습니다.

박정희를 일러 ‘공공의 적’이라 하고 ‘유신헌법’을 두고 잘못됐다 비판하면 곧바로 “빨갱이” 또는 “좌빨” 딱지를 붙입니다. 힘을 못 쓰게 하는 주술을 부리고 싶은 모양입니다.

지금 와서는 별 의미도 없지만, 어쨌든 박정희나 유신헌법에 반대하는 이들 가운데에는 ‘빨갱이’보다 빨갱이 아닌 사람이 더 많습니다. 아니 대부분이 ‘빨갱이가 아닙니다.’

옛날에는 이것이 통했습니다. 빨갱이 아닌 이들을 빨갱이로 몬 다음 반공법 따위로 탄압을 합니다. 김지하식으로 말하자면, ‘멀쩡한 사람이 적색 오징어포로 가공’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대부분 사람들은 “나는 빨갱이가 아니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실제로 빨갱이가 아니라서 그런 사람도 있고 내심 빨갱이면서도 탄압받지 않으려고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이렇게 되면서, 적어도 현실 속에서는 ‘빨갱이는 기피해야 할 그 무엇’이 됐습니다. 현실에서는 어쨌든 손해를 끼치는 ‘마이너스’ 존재니까 말입니다. 90년대까지는 그랬습니다.

4. ‘빨갱이’ 주술은 당당하게 긍정할 때 사라진다

2000년대 들어 (큰 줄기에서 볼 때) 사상 탄압은 구닥다리가 됐습니다. 국가보안법이 아직 죽지는 않았지만, 제대로 힘을 쓰기는 어려운 조건입니다. 주술의 효력은 여기서 끝이 나고 있습니다.

사회주의에 고유한 평등 정신과, 세계 여러 혁명에서 나타난 연대 정신을 드높이고 자본주의 국가(state)의 폐해(비정규직 문제나 빈부격차 심화 등)을 비판하는 데 대해서는 더더욱 주술의 효력이 없습니다.

이처럼, 반대파 사람을 죽이는 마녀사냥을 할 수 없는 조건에서는 이런 주술이란 그냥 중얼거림밖에 안 됩니다.
이런 상황에 힘입어 저는 저를 그런 식으로 비난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제가 빨갱이 되는 데 무엇을 보태주셨다고 그리 빚쟁이처럼 구시나요? 받을 빚도 없으면서 그러다가는 부당 추심(推尋) 혐의로 처벌 받으실 수도 있어요. 하하하.”

어떤 경우는 “저는 제가 빨갱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운데요.”라 대꾸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제가 글로 나타낸 이런저런 부분에 대해, 같은 빨갱이로서 동질감을 갖고 있다고 표현을 해 주시는 분도 통 없으시지는 않습니다.

김훤주

레즈를 위하여
카테고리 정치/사회
지은이 황광우 (실천문학사,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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