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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생각-김훤주

정말 무서운 당신들의 체벌 본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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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친한 친구 정부권이 체벌에 관한 글을 올렸습니다.  제목이 ‘초등학생 체벌 사태를 보며 드는 잔혹한 추억’ (http://go.idomin.com/83)입니다. 끔찍합니다. 우리는 그래서 수학여행 갔을 때 반쯤은 장난을 섞어서, 보복을 하기도 했습니다.

김주완 선배도 저랑 같이 운영하는 블로그에다 체벌 관련 글을 올렸습니다. ‘체벌 충동 억제하신 선생님에 대한 기억’(http://2kim.idomin.com/499)입니다. 제가 다닌 학교에도 이런 좋은 선생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제게도 물론 체벌에 얽힌 기억이 있습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지금이니까 무슨 ‘체벌’이라는 낱말이나마 공식 채택돼 쓰이지, 그 때는 주로 ‘빳다’ 같은 말뿐이었습니다. 또 그냥 ‘뒤지게 터졌다.’(죽도록 맞았다)고 하는 정도밖에 없었습니다.

1. 우는 아이 때려서 그치게 하는 선생님
그래도 저는 이런 학교폭력(절대 체벌이 아니지요.)이 요즘은 사라지고 없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제 딸이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면 말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이던 2005년에 “아빠, 우리 학교에 우는 애를 때려서 그치게 하는 선생님이 있어요.”, 그랬습니다.

“설마……” 제가 이랬는데, 우리 딸 현지는 “아니에요. 운동장에서 그래서 나만 본 게 아니고 다른 애들도 다 봤어요.” 했습니다. 1학년인가 2학년짜리 우는 아이를 두고 선생님 한 분이 “안 그치나! 안 그치나!!” 이러면서 손바닥으로 머리를 계속 소리 나도록 때렸다는 것입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맞는 아이 처지가 돼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환장할 노릇 아니겠습니까? 아파 죽겠고 억울해 미치겠는데도 자기를 도와줄 이는 하나도 없습니다. 앞에 있는 선생님은 그냥 선생님이 아니라 누구도 거역하거나 맞설 수 없는 절대권력입니다.

이것은, 눈물 자국을 눈물로 씻어내는 격입니다. 피로 얼룩진 검붉은 상처를 또 다시 피를 흘리게 해서 말끔하게 다스리겠다는 얘기입니다. 아이도 자기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인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짓입니다.

2. 열 살 때 이미 교실에서 피범벅이 됐었다
저도 국민학교 3학년 때 이런 일을 당했습니다. 1972년 당시 저는 반장이었습니다. 담임선생님은 무슨 바쁜 일이 있었던지 우리더러 자습을 하라 하셨습니다. 당연히 교실은 시끄러워졌습니다. 그런데도 선생님은 교탁 옆 책상에서 숙인 고개를 들지 않았습니다.

저는 어린 나이에 반장으로서 책임감을 못 이기고, 담임선생님께 다가가서 너무 시끄러우니 어떻게든 조용히 좀 시켜주십사 말씀을 드렸습니다. 선생님께서 “알았다.”고 하시기는 했지만 아무런 조치도 하시지 않았습니다.

한참 지나 제가 한 번 더 담임선생님께 갔습니다. 같은 얘기를 되풀이했습니다. 그랬더니 선생님께서 불 같이 화를 내셨습니다. “이 건방진 새끼가!! 선생님한테 이래라 저래라 말을 해?” 이런 투였지 싶습니다. 선생님 성함은 이○○였습니다.

진짜 죽도록 맞았습니다. 솥뚜껑만한 손으로, 열 살짜리 어린아이 여린 뺨을 사정없이 잇달아 내리쳤습니다. 곧바로 코피가 터졌습니다. 울면서 사정했지만 선생님은 듣지 않으셨고 제 얼굴은 순식간에 피범벅이 됐습니다. 급기야, 부끄럽게도, 오줌까지 싸고 말았습니다.

바지를 타고 내린 오줌에, 마루 바닥이 거뭇거뭇 어두운 색깔을 띠며 젖어왔습니다. 나이가 어리기는 했어도 부끄러움은 있었기에, 오줌을 지린 사실을 들키고 싶지가 않았지만, 제게는 계속 내리치는 선생님 매질을 몸으로 감당하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심한 폭력은 어쩌다 한 번씩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다지 심하지 않은 폭력은 거의 날마다 겪었습니다. 이번에는 고등학교 2학년 교실로 한 번 가져가 보겠습니다. 물론 얻어맞는 주인공 배역은 제게 주어졌습니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한 장면. 당시 교련 선생은 군복이 정장이었지요.


3. 감기몸살 다음날, 밀걸레 자루 세 개가 부러졌다

제가 감기 몸살로 결석한 다음날 아침입니다. 담임선생님께서 들어와 조회를 하셨습니다. 저는 전날 큰형이 써 준 결석계를 뒷주머니에 넣고 있었습니다. “야, 너 어제 왜 결석했어?” 이런 식으로 물어 주시면 냉큼 드리려고 말입니다.

선생님은 제게 아무것도 묻지 않으셨습니다. 그냥 끝날 때 즈음해서, 문득 생각이 난듯이, 낮은 목소리로 “김훤주, 따라 와.” 하셨을 뿐입니다. 교무실로 따라갔습니다. 선생님은 제게는 아무 말 없이, 다른 선생님들과 어울려 웃으시며 담배를 피우실 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1교시 수업 시작 종이 울리자 우두커니 서 있던 제게 다가와 “인마, 여기 꿇어 앉아 있어.”, 낮게 말씀하셨습니다. 꿇어앉았습니다. 지나가던 다른 선생님이 왜 그러냐고 물으셨습니다. 진짜로 저는 제가 왜 꿇어앉아 있는지 영문을 몰랐습니다.

쉬는 시간마다 담임선생님이 오셨지만 제게는 눈길 한 번 제대로 주지 않으셨습니다. 다른 선생님들은 지나다니시면서 길다란 출석부로 제 머리를 장난삼아 툭툭 치곤 하셨습니다. 4교시 마친 뒤 점심 시간이 돼서도 담임선생님은 마찬가지셨습니다.

제가 교무실에 꿇어 앉아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지는 않으셨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걱정은 제가 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은 바깥에 나가 점심을 잘 들고 오시더니 밀걸레 자루를 몇 개 뽑아오셨습니다.

저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이 때도 우리 담임선생님은 제게 일언반구 묻지를 않으셨습니다. 다만 낮게 “엎드려 뻗쳐!” 하셨을 뿐입니다. 선생님 매질은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밀걸레 자루 세 개 정도가 부러져 나갔습니다.

제가 키만 크고 몸집은 메말라 제대로 견디지 못했으리라 여기는 이들이 적지 않을 텐데요, 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제가 국민학교 때부터 심지어는 곡괭이 자루로 엉덩이를 얻어맞을 정도로 단련이 돼 있었거든요.

4. 때리기 전에는, 아무것도 묻지 않으셨다
우리 담임선생님은, 당신의 매질을 그치고 나서야 제게 물었습니다. “뭣 때문에 결석했어?” 저는 바지 뒷주머니에서, 이제는 맞아서 너덜너덜해진, 큰형이 써 준 결석계를 끄집어내어 드렸습니다. 담임선생님은 의아스런 표정을 지으셨습니다.

다 읽고 나시더니, 이랬습니다. “야 인마, 와 인자 이걸 내노?” 저는 정말이지, 맞는 까닭이 결석에 있다고는 꿈에서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제가 미처 떠올리지 못한 큰 잘못이 있는 줄 알았다가, 선생님께서 그리 말하는 바로 그 순간에, 억울하고 분하다는 느낌이 한꺼번에 치밀었습니다.

삐질삐질, 눈에서 물이 스며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야, 가 봐!” 바깥으로 나왔을 때, 학교는 조용했습니다. 이미 5교시 수업이 시작된 것입니다. 얼굴을 씻으러 수돗가에 갔습니다. 꼭지를 트니까 물 쏟아지는 소리가 꽤 컸습니다. 꼭지 아래에 머리를 디밀었습니다. 울음이 큰 소리로 터져 나왔습니다.

지나가던 여자 선생님 한 분이 가던 걸음을 멈추고 쳐다보고 계셨습니다. 어떤 심정이셨는지는 제가 헤아리지 못합니다. 수돗물 쏟아지는 소리와 눈물 쏟아지는 소리가 잘 어울렸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날 오후 햇살은 아주 따사로웠습니다.

스탠드에 앉아 나머지 시간을 보냈는데, 이상하게도, 엉덩이나 허벅지가 따갑거나 아팠다는 기억은 제게 남아 있지 않습니다. 졸업 앨범 보면 나오겠지만, 담임선생님 성함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별명만 떠오르는데, 학생을 사람으로 대접할 줄 모르시는 ‘꺼벙이’셨습니다.

김훤주

습지와 인간
카테고리 시/에세이/기행
지은이 김훤주 (산지니,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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