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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생각-김훤주

쪽배냐 거룻배냐는 사소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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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쪽배와 거룻배가 다르다는데
블로거 거다란(http://www.geodaran.com)이 ‘거룻배와 쪽배도 구별 못하는 창녕군청’(http://www.geodaran.com/873)이라는 글을 썼습니다. 우포늪 생태공원 사이버 체험관에 ‘소벌(우포늪)에 쪽배가 다닌다.’고 돼 있는데 이는 거룻배의 잘못이라는 얘기입니다.

“제가 알기로 소벌엔 쪽배가 없습니다. 소벌을 다니는 배는 거룻배입니다. 쪽배와 거룻배는 전혀 다른 배입니다. 쪽배는 통나무를 파서 만든 배이고 거룻배는 널판지를 이어서 만든 습지에서 주로 사용하는 배입니다. 소벌에서 사용되는 배는 분명 거룻배입니다.”

그러면서 저를 끌어들여 “<습지와 인간>이란 책을 보면 알지만 저자인 김훤주 기자는 이렇게 습지와 관련된 것들의 이름을 잘못붙이는 것에 몸서리를 칩니다. 우포면 어떻냐는 어느 시인의 말에 머리를 열어보고 싶었다며 통탄할 정도입니다.” 했습니다.

이어서 “김훤주 기자가 너무 격한 반응일까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전 포스팅에서도 얘기했지만 문화가 파괴된 공간은 토건족들의 먹잇감입니다. 문화가 사라진 공간을 개발이 메꾸어 나가는 것을 볼 때 문화를 함부로 대하는 것이 바로 환경을 파괴하는 짓이 되는 겁니다.”라고도 했습니다.

고마웠습니다. 그런데 여기 달린 댓글에서는 제가 앞서 걱정했던 바가 그대로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하여가(何如歌)가 울려퍼지고 있었습니다. “거룻배면 어떻고 쪽배면 어떻습니까;; 사소한 문제 같은데... 너무 격분하시네요^^;;”

2. 사소한 사안은 그냥 지나쳐도 된다?
쪽배냐 거룻배냐가 사소한 문제로 비쳤나 봅니다. 그래서 이런 따위는 그냥 지나쳐도 되는 사안쯤으로 여기시는 태도가 뚜렷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돈과도 관련이 없고 먹고사는 일과도 관련이 없으니 사소한 것이고 그래서 그냥 지나쳐도 되는 것이고 하겠지요.

소벌의 한 부분인 모래벌(사지포)에 있는 거룻배.

그러나 세상 주류(主流)가 볼 때는 이처럼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데에 눈길을 던지고 값어치를 매기는 사람도 없지 않습니다. 블로거 거다란이 말씀한 바 ‘걸맞은 글말을 제대로 쓰지 않으면 습지는 문화가 파괴되거나 사라진 공간’이 된다는 취지입니다.

문화가 사라지고 나면 그 공간은 토건족들의 먹잇감이 되고 개발이 메워나가게 된다는 주장입니다. 문화라는 말이 핵심입니다. 문화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런저런 모양 전부를 일컫는 낱말입니다. 문화의 파괴 또는 사라짐은 곧, 사람살이의 파괴 또는 사라짐입니다.

3. 쪽배의 문화와 거룻배의 문화
쪽배는 통나무로 만들고 거룻배는 널빤지로 만듭니다. 통나무로 만든 쪽배는 너비가 좁고  길이가 짧은 반면 거룻배는 그렇지 않습니다. 쪽배는 노 따위를 저어서 움직이고 거룻배는 기다란 상앗대로 물 밑 바닥을 밀어서 움직입니다.

여기 즈음에서 짐작을 한 번 해 봅니다. 쪽배는 사람이 타고 여기저기 옮겨다니는 데 주로 쓰이는 것입니다. 반면 상대적으로 바닥이 넓은 거룻배는 사람보다는 물건을 실어나르는 데 주로 쓰입니다. 쪽배는 여객운수업이고 거룻배는 화물운송업입니다.

그렇다면, 소벌에서 사람들이 배를 타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이쪽 언덕에서 저쪽으로 건너가기 위해서일까요? 아니지요, 자동차가 있는데 왜 그리 하겠습니까? 소벌 곳곳에 쳐놓은 그물을 걷고 안에 들어간 물고기들을 거두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소벌에 쪽배가 있다.”는 말과 “소벌에 거룻배가 있다.”는 말은 역사와 문화에서 울리는 내용이 다릅니다. 쪽배가 있다고 하면 사람들이 소벌에서 나무개벌로 나무개벌에서 쪽지벌로 건너다니는 데 배를 쓴다는 얘기가 됩니다.

지금 사실 관계와 맞아떨어지게 거룻배가 있다고 하면, 그것은 늪 안쪽으로 들어가 그물에 걸린 붕어나 잉어 따위를 실어내는 데 배를 쓴다는 얘기가 됩니다. 그러므로 이 두 낱말을 구별 않고 한 데 뒤섞는 것은 그와 관련된 문화와 역사를 헝클어버리는 잘못이 됩니다.

4. 소벌과 우포도 같지 않다
말이 나온 김에 소벌과 우포(牛浦)가 어떻게 다른지도 한 번 짚어보겠습니다. 물론 소벌이든 우포든 그것이 가리키는 땅덩이는 하나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옛날에 그 말을 쓴 사람들이 달랐고 그 사람들은 소벌을 바라보는 관점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포’라 하면 어딘지 모르게 조금 떨어져 지켜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으십니까? 행여나 “그렇다.”고 대답하실 수 있다면 그것이 정답입니다. 대신 ‘소벌’은, 아등바등 딱 붙어 있는 듯한 기분을 주지 않으십니까? “그렇다.”는 생각이 들면 이 또한 정답입니다.

소벌은 예로부터 소벌 일대 지역 주민들이 대대로 써 온 낱말입니다. 소벌과 이웃한 동네 사람들은 여기에 소를 몰고 와서 꼴을 뜯겼으며 붕어와 잉어도 잡았습니다. 또 허리까지 오는 긴 장화를 신고 논고동을 캤으며 마름 열매 말밤도 땄습니다.

반면 우포는 행정관청의 아전이나 만석꾼 천석꾼 부자집 마름이 주로 써온 중국글입니다. 아전이나 마름들은 사람이나 토지를 관리하는 데 이 낱말을 썼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다보니 소벌 또한 그들에게 생활 터전이라기보다는 주로는 관리의 대상이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소벌’이라 하면 이 낱말을  쓴 바로 그 옛날 농사꾼들의 생활과 관점과 문화와 역사를 이어받게 됩니다. 반면 우리가 ‘우포’라 한다면, 옛날 이 우포라는 말을 쓰면서 소벌 둘레 인간과 토지를 소유 또는 관리하던 아전과 마름  따위의 후예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물론 소벌은, 소벌이라는 이름이 어떻게든 소와 관련돼 있다는 정도는 곧바로 알게 할 정도로 쉽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반면 우포라 하면, 사람들이 여기 이 습지서 손쉽게 소를 떠올리지 못합니다. 어려운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포’는 어려운 중국글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쓰지 않아야 합니다. 대신 ‘소벌’은 토종말이 좀더 쉽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적극 널리 쓰이도록 해야 좋겠다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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