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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본 세상

수능 코앞에 둔 고3들 소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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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능 닷새 앞두고 치른 소등식
밤 10시 남짓 돼서 고등학교 3학년인 아들 녀석이 집에 들어왔습니다. 평소보다 조금 이른 때인지라 제가 아들에게 “웬 일이야?” 물었겠지요.

“아빠, 오늘 마지막 모의고사 쳤는데 잘 나왔어요. 그리고 아마 끌 소(消) 등불 등(燈) 같은데, 소등식도 했어요. 아니 하지는 않았지만 한 셈 치기로 하고 마쳤어요.”

제가 조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있으려니 아들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5시 모의 수능 치고 바로 소등식 하고 학교 마쳤어요. 학교 마치고 독서실 갔다 오는 길이에요.”

“앞으로는 보충 수업도 없고 야간자율도 없어요. 이제 7교시만 마치면 바로 학교 끝나요.” 날이 어두워지고 나서까지 학교에 남아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수능이 13일, 앞으로 닷새밖에 남지 않았으니 학생들 스스로 정리하고 공부할 수 있도록 학교에서 아이들을 잡아두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빠, 그래서 내일 토요일이지만 학교 안 가요. 여태까지는 놀토(둘째와 넷째 토요일)도 학교 갔지만……. 그런데 선생님 얘기가 지금이 가장 많이 풀어지는 때라네요.”

저는 이런 소등식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어쨌거나 아들 얘기에 맞장구는 쳐줘야겠기에 “잘 됐네.” 한 마디 하고는 “내일 학교 안 가 좋겠네, 수능도 알아서 잘 하리라 믿어.” 덧붙였습니다.

2002년 11월 아들 현석이 초등학교 6학년 때 사진. 딸 현지는 초등학교 2학년이었고.


2. 입학 3년만에 처음 제 때 하교하는 고3
가만 생각해 봤습니다. 이제 드디어, 고등학교 1학년 들어가자마자 시작된 보충수업과 야간자율학습에서 3년만에 아이들이 풀려났습니다.

아들과 친구들은 밤 10시 학교를 마쳤습니다. 집에 바로 들어가면 11시쯤이 됩니다. 게다가 아침에는 8시 30분 정상 등교보다 1시간 이른 7시 30분까지 학교 정문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아들을 쳐다봤습니다. 중학교까지 열심히 놀던 아들이 고등학교 가더니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커서 그림을 그리겠다 마음을 먹고, 거기에 맞춰 가고 싶은 대학교를 정한 뒤끝입니다.

본인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저는 그동안 보기가 안쓰러웠습니다. 밤 11시 집에 들어와서도 나름대로 공부하느라 새벽까지 책상머리에 붙어 앉아 있었습니다.

(2학년 2학기부터는 야자 대신 학원에 다녔지만 전체 상황은 같았습니다. 오히려, 친구들은 학교에 남아 공부하기 때문에 그만큼 더 공부해야 한다고 조바심을 내기도 했습니다.)

물론 아이가 그래도 느긋한 편이라 일요일에는 놀러도 나갔지만 평일에는 보통 새벽 2시가 잠자리에 드는 시각이 됐습니다. 그러고도 이튿날 아침 6시 30분에는 일어나야 했습니다.

저 때랑은 하늘과 땅 차이였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1981년 고3일 때 저는 야간자율은커녕 보충수업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정규 수업을 마치고 운동장에서 내기 축구를 해도 될 정도였습니다.

어쨌거나 이로써 아들은 고달픔에서 조금 풀려났고, 저는 안타까움에서 조금 자유로워졌습니다. 피 말리는 상황이 끝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너무 지쳐서 새벽에 옷을 벗는 도중에 쓰러져 잠드는 일은 이제 없겠지요.

3. 보충수업과 야간‘자율’학습에 대한 생각
그러면서 조금 더 생각해 봤습니다. ‘소등식이라? 이름 하나 참 잘 지었구나. 어두울 때는 말고 날 밝을 때만 공부시킨다는 얘기지? 보충수업 야간자율학습 없이 정규 수업만 한다는 것이거든.’

사실 저는 보충수업과 야간자율학습이 많이 불만스럽습니다. 야간자율이 더 그렇습니다. 보충수업은 이미 문제풀이가 돼서 벌써 보충수업이 아니고, 야간자율학습은 더욱 심해 아예 자율로 진행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야간자율은 이미 자율이 아닌 타율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며칠 전 대구 한 여고에서 학생들이 선생님께 체벌 폭력을 당한 사건이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이 ‘자율’로 학습을 하지 않고 일찍 학교를 나갔다고 때렸습니다.

이처럼 학교에서 자율은 강제 또는 타율과 같은 뜻입니다. 자율이라 하면 아이들은 강제라 다들 알아듣습니다. 자율이라 해도 자유로 자기 마음대로 했다가는 벌 받거나 혼나는 줄 잘 알기에, ‘알아서 기기만 할 따름입니다.’

이를테면 이렇습니다. 학년 시작할 때 학교는 으레 보충수업 야간자율학습을 할는지 희망 여부를 파악하고 신청을 받습니다. 아이들은 자기 생각대로 하는 대신 “어차피 안 될 건데……” 하며 ‘희망’과 ‘신청’에 동그라미를 칩니다.

심지어 어떤 때는 선생님까지 몸소 나서셔서, “반대하고 동그라미 치지 않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으니 그냥 희망, 신청, 해라.”고 하시기도 합니다. 이쯤 되면 정신 분열이 오고 말 것입니다.

더욱 무서운 것은, 이런 소식을 전해 들었어도, 대부분은, “아니 ‘자율’이라 해 놓고는, 자율로 그 학습을 하지 않았다고 때리고 벌을 세우다니 말도 안 된다.”고는 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습니다.

학생뿐 아니라 학교 울타리 바깥에 있는 모든 사람들도 중독이 되고 마비가 됐습니다. 자율이라 해도 강제라 알아듣고, 강제라 해도 강제라 알아듣습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4. 4년 안에 소등식이 없어지면 좋겠다
모든 현실이 언제나 존재 이유가 합당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강제로 하는’ 야자 같은 정신 분열 소지는 합당하지 못하고 따라서 없애야 합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하지 않으면 가장 좋겠만, 보충과 야자를 하되 그것을 하고말고는 학생 스스로 결정하게 하면 됩니다.

아무리 시켜도 공부 안 할 사람은 안 하고요, 아무리 안 시켜도 공부 할 사람은 꼭 하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강제로 하는 보충과 야자는, 학교 당국이 아이들 길들이고 관리하는 데 편할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중2인 딸 현지만큼은 소등식을 치르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올해가 마지막이면 아주 좋겠지만 어려울 테고, 적어도 현지가 고3이 되는 4년 뒤에는 꼭 사라지고 없기를 진정으로 바랍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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