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에서, 10월 28일과 29일 이틀 동안 전국언론노동조합 신문통신협의회 대표자 회의가 있었습니다. 저도 경남도민일보지부 지부장인지라 가서 말석에 끼였습니다.
공식 회의를 마치고 뒤풀이를 했습니다. 지역신문협회 사무국장까지 겸하고 있는 저는 이에 앞서 지역신문협회 정책위원회 회의까지 치러야 했습니다. 조금 힘이 들더군요.
아시는 대로, 지금 신문은 하나 같이 어렵습니다. 또 조중동의 불법 경품을 통한 독자 매수 때문에도 다 같이 버거워합니다. 그래서 동병상련(同病相憐)도 깊습니다.
뒤풀이 자리에서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폭탄주가 돌았습니다. 맥주잔에 소주를 조금 부어 넣고 맥주를 5분의3쯤 채우는 식입니다. 노동자의 술입니다.
어떤 이는 사치스레 여기기도 하는데 언론노조 신학림 전 위원장은 영어로 boilermaker라고, 영국 탄광 노동자들이 빨리 취해 자기 위해 마신 술이라고 알려 줬습니다. 위스키+맥주입니다.
서울신문 후배인 김성수
노조운동을 하느라 수배 당해 쫓겨 다니던 권 의원을 김 지부장이 만난 적이 있답니다. 술을 한 잔 같이 나누다 궁금해 물었답니다. “뭣 때문에 그리 힘들게 수배까지 당해 가면서 사시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김 지부장은 그러면서 “권 의원이 그 때는 무슨 노동 의식이 투철한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했습니다. 이어서 “권 의원은 ‘노조를 하면서 사람을 만났고, 그런 사람 때문에 노조를 계속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덧붙였습니다.
서울신문 선배인 권영길
김 지부장은 여기서 선한 웃음을 머금더니, “단병호, 무슨 이런 사람들을 만났는데, 이게 무식하기만 하고 한 것이 아니라 마음에 진정이 있더라는 얘기였습니다.”라 했습니다. 권영길이 만난 사람이 단병호 하나만은 아니겠지만, 뭉뚱그려 이리 말했겠지요.
어쨌거나, 간난신고를 무릅쓰고 주어진 제 할 일을 하게 하는 힘이 바로 사람이라더라는 것입니다. 저는 사람을 믿지 않고, 나아가 사람을 믿으면 꼭 그만큼 속거나 다친다고 아는 사람입니다만, 그 순간만큼은 사람을 믿고 싶어졌습니다.
10년 세월을 넘어, 멀리 떨어져 가물거리던 기억 속에서, 사람에 대한 믿음을 길어 올린 김 지부장이 갑자기 까닭도 없이 고마워졌습니다. 제가 이러고 있는 사이에, 김 지부장은 이미 다른 쪽으로 얘기를 가져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제 앞에 놓인 폭탄주를 남김없이 마셨습니다. 그런 사람을 하나 가슴에 담고 사는 김 지부장이 부러워졌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어떠신지요. 제게는 없습니다만, 당신에게는 이런 사람이 하나 정도는 있으시겠지요?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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