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생각-김훤주

10.26만 되면 생각나는 사람

김훤주 2008. 10. 26.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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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79년 10월 26일의 일상

1979년이면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입니다. 그 해 10월 26일도 저는 별 일 없이 지냈습니다. 쌀쌀한 날씨에 체육을 한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 집은 동아일보를 보고 있었는데, 제 기억으로는 다음날 저녁 신문에 ‘박 대통령 有故’라고, 주먹만하게 활자가 찍혀 나왔습니다.

아시는 대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쏜 총알에 맞아서 경호실장 차지철과 함께 당시 대통령 박정희는 안가(安家)에서 술을 마시다 처참하게 숨지고 말았습니다.

저는 어린 마음에 ‘권력이란 좋은 게 못 돼.’ 생각했고, 한 달 남짓 뒤에 미국 잡지 타임인가에 ‘General Chun Takes Power.’ 기사가 실렸다는 글을 본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전 장군 권력을 잡다, 쯤이 되겠는데요, 아무튼 10월 26일 그 날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최루탄 냄새가 몇 차례 우리 학교 교정을 스쳐지나갔습니다. 발원지는 가까이 있는 무슨대학교였습니다.

2. 10.18로 끌려가 감옥에서 맞은 10.26


저는 이리 평범하게 10.26을 맞았습니다. 그러나 평범하지 않게 경찰인가에 끌려가 고문을 받고 수사를 받는 가운데에서 10.26을 맞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제가 아는 한 사람은 마산에서 10.18 항쟁에 참여했다가 경찰에 끌려갔었다고 했습니다. 아시는대로 10월 18일 마산에서는 대학생들이 박정희에 맞서 들고 일어났습니다.


물론 앞서서 부산에서 봉기가 먼저 있었고 이것이 마산과 창원으로 번진 셈입니다. 당시 정부 당국은 위수령을 내리고 군대를 동원해 점령군 행세를 했습니다.


제가 아는 이 사람은 아마 10.26이 터지지 않았다면 곧바로 구속돼 감옥살이를 적지 않게 했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10.18에 이은 10.26은 우연 속 필연이었고, 그 이는 곧 풀려났습니다.


이 이는 갇히고 차단된 속에서도 10월 26일이 지나니까 분위기가 달라지더라 했습니다. 상대방이 불안해하는 기미가 느껴졌고, 대우도 덜 폭력적으로 달라졌다고 했습니다.


3. 민주주의자와 독재자(또는 앞잡이)의 차이는?


석방이 며칠 남지 않은 시점이기는 하지만 그 석방이 당사자에게 알려져 있지는 않은 그런 시점에, 이 이는 자기를 맡고 있던 요원(要員)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주대환

이 이는 이런 것들을 그냥 흘러가는 이야기로 해 줬습니다. “야 인마. 박정희가 죽었으니까 좋지?”

이해관계로 따지면 박정희의 죽음을 이 이는 그야말로 반겨 마지 않았아야 할 일이었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그것이 당연했고, 그 요원도 충분히 그리 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이는, “사람이 죽었는데 뭐가 그리 기쁘겠습니까?” 했답니다.

이 이가 이 얘기를 해 줬을 때 같이 있던 어느 누구도 귀를 기울이거나 재미있어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도 이미 말머리를 다른 쪽으로 돌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게는 아주 즐겁고 감명 깊었습니다.


독재자 또는 그 앞잡이가 사람의 죽음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나름대로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독재자는 자기 생각과 이익이 다른 무엇보다 앞서니까, 그들은 자기와 맞지 않는 사람이 죽으면 아주 즐거워할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아는 그 사람과 같은 민주주의자는, 그가 누구이건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는 크든작든 연민(憐憫)을 느낍니다. 사람을 같은 인격으로 생명으로 존중하는 태도를 기본으로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는 그 사람의 이름은 주대환, 입니다. 저는 그 뒤로 줄곧 그 이를 존경합니다. 저의 길과 그 이의 길이 절대 같지 않고, 앞으로도 같아질 개연성이 그다지 크지는 않지만 말입니다.


김훤주

습지와 인간
카테고리 시/에세이/기행
지은이 김훤주 (산지니,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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