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왜 아등바등 서울에 사세요?

기록하는 사람 2008. 10. 16.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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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대중교통업계에서 최고의 소비자를 뽑아 주는 상이 있다면, 아마 내가 받아야 할 것이다.

아예 자가용 승용차를 가져본 적이 없는데다, 워낙 많이 싸돌아다니기 때문에 버스나 기차, 택시업자에겐 최고의 고객이다. 정확히 따져보진 않았지만, 지금까지 쓴 대중교통요금만 모으면 아파트를 몇 채 사고도 남았을 것이다.


특히 택시는 최소 하루에 서너 번은 탄다. 모르긴 몰라도 마산·창원의 택시 기사 중 지난 17년간 한 번쯤 나를 태워보지 않은 분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요즘은 구면인 기사님들도 꽤 있다.

지역에 오면 삶이 윤택해진다

자주 다니는 서울이나 대전, 진주, 남해도 그렇다. 나는 타지역에서 택시를 탈 때마다 사납금과 만근 일수, 월수입 등을 물어본다. 그 결과 서울이나 마산이나, 대전이나 남해나 다들 일하는 조건은 조금씩 달라도 월수입은 대개 150만 원 내외로 거의 똑같았다. 서울이라고 더 많이 버는 것도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럴 때마다 서울의 기사님에겐 꼭 물어본다. "같은 수입으로 물가도 싸고 한적한 다른 지역에 가서 살면 훨씬 삶의 질이 높아질 텐데, 왜 굳이 서울서 사십니까?"

돌아오는 답 역시 대동소이하다. 자식교육 때문이라는 거다. '서울에서 공부시킨다고 그 자식이 출세할 확률이 높아지느냐'고 다시 묻고 싶지만, 차마 그 말은 하지 못한다.

서울에서 살면 행복할까?

어쨌든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확실히 출세해서 대한민국 최상위 계급에 들어가지 못할 바에야 서울보다 집값도 싸고 공기도 맑고 경치도 좋은 지역에서 사는 게 행복지수는 훨씬 높다고 말이다.

집값만 해도 그렇다. 서울에서 20평 아파트를 팔고 마산에 오면 40·50평형대 아파트도 살 수 있다. 전세금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지금 내가 사는 24평 아파트도 시세가 9600만 원인데, 이것도 좀 비싼 편이다. 조금만 더 외곽으로 나가면 더 싸다. 아예 농촌지역으로 가면 주택이나 아파트를 사고도 남는 돈으로 논 몇 마지기쯤은 너끈히 살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시골에서 택시운전을 해도 150만 원쯤은 벌 수 있다. 그럼에도, 서울에서 고작 150만 원 벌면서 왜 아등바등 힘들게 사느냐 말이다.

얼마 전 한국언론재단 대전교육센터에서 '도시 재개발'에 관심이 있는 전국의 지역신문 기사들이 모여 연수를 받은 적이 있었다. 나도 거기에 참석했는데, 기자들에게 이런 말을 해봤다. 그랬더니 서울에서 온 기자들이 말했다. "아무래도 서울에는 '한 방'을 노릴 기회가 많기 때문이 아니겠느냐." "아무래도 서울에서 벗어나면 한국사회의 주류에서 밀려나는 듯한 느낌 때문일 것이다."

기회? 주류? 그들의 분석이 맞다고 해도 절대다수의 서울 사람들은 엄청난 착각이나 환상에 빠진 것 같다. 서울에서 자란 아이 중 서울대나 연·고대에 갈 수 있는 비율이 과연 몇 퍼센트이며, 서울에 부자나 권력자들이 많다고 해서 그들이 흘리는 떡고물을 얻어먹을 수 있는 서울 사람은 얼마나 될까?

문제는 이 나라의 기득권세력이 서민들에게 그런 착각과 환상을 가지도록 끊임없는 선전·선동을 하고 있다는 데 있다. '너희도 노력하면 우리처럼 잘살 수 있어' 하면서 경쟁을 영원한 숙명으로 세뇌시킨다. 경쟁에서 뒤처진 사람은 잘못된 사회구조 때문이 아니라 노력이 부족하고 무능하기 때문이란다.

서울사람들이 불쌍하다

서울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지방'으로 떠나면 패배자로 간주된다. 아울러 서울로 '진출'하지 못하고 '지방'에 사는 사람은 거의 미개한 '원주민' 취급이다. 그래서 지역에 사는 사람들도 기를 쓰고 서울에 '진출'하려 노력하고, 자기가 안되면 자식이라도 서울로 보내려 한다.

이런 데서 좀 여유롭게 살 순 없나.

이런 환상 또한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무한경쟁주의' '강자독식주의'의 또 다른 발현이다. 한국의 기득권세력은 서민들이 이런 환상에서 깨어나는 걸 가장 두려워한다. 그 환상이 그야말로 환상임을 알게 됐을 때, 서민들은 한국사회가 얼마나 '부자들만을 위한 세상'인지를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마산 사는 내가 볼 때 1억 원이라는 거금으로 소형아파트 전세도 못 얻는 서울 사람들이 너무 불쌍하다. 서울사람들이 무능하거나 게을러서가 아니다. 불가능한 환상 때문이다.

서울사람들이여! 지금 여러분이 할 일은 '경쟁'이 아니다. '복지'와 '평등'을 요구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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