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불도저에 맞설 싸움의 기술은 없나

기록하는 사람 2008. 10. 2.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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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이명박 대통령은 '통치의 기술'에 상당히 능한 것 같다. 촛불집회에서 드러난 민심 따윈 아무런 장애물이 되지 못한다. 아니, 촛불까지 이겨냈으니 이제 두려울 게 없다는 생각인 듯 하다.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 파동에 이어 방송 장악과 낙하산 인사, 신문·방송 겸영 추진, 촛불 주동자 구속·수배와 인터넷 통제, 시민단체와 통일단체 수사 등 공안정국 조성, 공기업 사유화와 교육 시장화, 혁신도시 및 행정복합도시 힘빼기, 수도권 규제완화, 그린벨트와 군사시설 보호구역 해제, 부동산 부자 세금깍아주기 등등등…. 거칠 게 없다.

그의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뭔가 해보려 하지만 역부족이다. 아니 너무 전방위적이고도 전면적이어서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 야당이 있지만 실질적으로 뭔가 해볼 수 있는 게 없다.

두려울 게 없는 이명박 정부

그래, 이왕 하려면 이렇게 확실히 밀어부쳐야 한다. 집권 초기에 못하면 영원히 빌빌대다 노무현 정권 꼴이 날수도 있다.

사실 노무현 정부는 너무 순진했다. 아니 멍청했다.

'기회주의자가 득세하는 풍토를 청산하겠다'던 취임사까지는 그럴 듯 했다. 그런데, 집권하자마자 '검사와의 대화'니 뭐니 하며 질질 끌려가는 모습을 보이더니 권력의 핵심이랄 수 있는 '검찰권력'과 '국정원권력'을 놔버렸다. 언론권력에 대해서도 변죽만 울리다 모두에게 만만한 존재가 돼 버렸다. 누더기가 된 채 겨우 통과한 몇몇 개혁입법이 있긴 했지만, 이라크 파병과 한·미FTA에 묻혀 버렸다.

반면 한나라당의 전신이었던 신한국당의 김영삼 정권은 '학실히' 달랐다. 권력을 쥐자마자 검찰을 틀어쥐고 부정과 비리를 척결한다는 명분 하에 이른바 '사정(司正) 정국'을 주도했다. 초반에 그렇게 해서 구(舊) 기득권 세력의 군기를 '학실히' 잡았다. 그런 덕분에 금융실명제와 토지공개념 같은 개혁정책도 아무 거리낌 없이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갱제를 학실히 살리겠다'던 그는 IMF로 나라경제를 말아먹고 말았다.

나는 어떤 정권의 방식이 옳은 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정권의 의도를 확실히 관철시키기 위한 '통치의 기술'로만 본다면 김영삼·이명박 정부의 방식이 효과적인 것 같다.

원래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렇다. 사고만 치고 다니면서 애 먹이던 자식이 안부전화 한 통이라도 걸어오면 눈물이 나도록 고맙다. 하지만 천하의 효자이자 착하기만 하던 자식이 외박 한 번만 해도 집안이 발칵 뒤집힌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런 사람의 심리를 잘 아시는 분 같다. 아무리 반대가 있어도 속된 말로 그냥 생 까고 밀어붙인다. '불도저'다운 통치방식이다.

이러니 이른바 신자유주의라 불리는 강자독식·시장만능주의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도대체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민주노총은 소위 '공기업 민영화' 공세에 대응하느라 바쁘고, 언론노조는 언론장악을 막아내느라 바쁘다. 언론노조 안에서도 방송은 방송대로, 신문은 신문대로 각자 자기들이 처한 상황에 대처하느라 정신 없다. 전교조는 전교조대로, 시민단체와 환경단체는 그들 나름대로 목조르기에서 벗어나느라 힘겹다.

80년대 변혁노선이 그립다

예전 같으면 그린벨트 해제 하나만 해도 엄청난 논란이 벌어질법한 일이건만 반대 목소리가 있었는지조차 모르게 풀려버린다. 부자 세금(종부세) 깍아주기로 좀 시끄럽긴 하지만, 이 역시 현 정부 의도대로 관철될 게 뻔하다. 지난 6월 골프장 내 산림 및 수림지 의무확보율 40% 규정이 아예 사라져 버렸지만, 그 사실을 알아채고 이의제기를 해본 단체조차 없다. 도대체 어디에서 뭐가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알아차리는 것도 버겁다. 이럴 때일수록 '연대'라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그런 걸 생각하기엔 제각각 제 코가 석자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차피 막아내지 못할 바에야 한 발 물러서서 구경이나 하고 있어야 할까. 아니면 더 처절하게 깨져야 할까. 지켜보고 있자니 민중의 삶이 불안하고, 깨지자니 승산없는 싸움에 힘만 소진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글을 쓰면서 오늘처럼 답 없는 이야기만 늘어놓은 것은 처음인 것 같다. 80년대 민주화운동 시절 많고 많던 '변혁론'과 '투쟁이론' '조직노선'이 새삼 그립다. '통치의 기술'은 보이는데, 거기에 저항할 '싸움의 기술'은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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