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빼앗긴 내 땅 4평을 돌려주세요

기록하는 사람 2008. 9. 24.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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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에서 차없는 날 행사를 했다더군요. 저는 차가 없습니다. 원래부터 없었습니다. 운전면허도 없습니다. 앞으로도 차를 살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한국의 도로와 교통정책에 대한 문제점이 (차 있는 사람과는 좀 다르게) 보이더군요. 간단히 말하자면 우리나라는 차 있는 사람이 '정상'이고, 차 없는 사람은 '비정상'으로 취급되는 사회입니다.

저는 정치권력과 자동차 재벌이 결탁해 있다고 의심합니다. 차를 많이 팔아먹기 위해 끊임없이 도로를 개설하고 확장하면서 불법주차도 용인해주고 있으며, 대중교통의 발전에는 거의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길이 좁고, 교통난이 심각하며, 주차할 곳도 없는데, 단속이 강력하면 어쩔 수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라의 정책은 자동차 재벌에 유리하게 하면서 '차없는 날'이니 뭐니 하는 것은 그야말로 생색내기를 위한 전시행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울시의 '차없는 날' 안내문.


이와 관련 제가 예전에 써놨던 차없는 사람의 입장을 올려봅니다.

빼앗긴 내 땅을 돌려달라

한 때 승용차가 없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기자 초년 시절, 취재원으로부터 "차는 어디에 세워 두셨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였다. "없다"는 대답 대신 "두고 왔다"고 둘러대곤 했다. 그때 내 월급이 70만원 가량이었는데 '100만원이 넘으면 차를 사겠다'고 생각했었다.

그후 100만원이 넘고, 200만원도 넘었지만 결국 차를 사지 않았다. 누가 물으면 오히려 자랑스레 "차가 없다"고 대답한다. 불편하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도 간혹 있는데, 사실 없는 게 더 편하다.

가까운 곳은 자전거로 다니고, 먼 곳은 택시나 버스를 타면 된다. "언제 어디서든 운전기사까지 딸린 승용차(택시)가 항시 대기 중"이라는 농담도 한다. 주차할 곳을 찾아 뺑뺑이를 돌 필요도 없고, 음주운전 걱정도 없다.

도로 폭에 숨어 있는 음모

하지만 생각해보면 할수록 억울하고 불공평한 점이 있다. 차 가진 사람들에게 내 땅을 빼앗기고 있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내가 사는 아파트만 해도 엄청난 땅을 차량들이 점유하고 있다. 주차 1면 공간(2.3×5m)과 통로 등을 합치면 차량 1대가 약 4평 가량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만일 24평 아파트에 사는 가구가 차량 1대를 보유하고 있다면 실제로는 28평을 쓰고 있는 셈이다. 반면 나처럼 차가 없는 사람은 그만큼 공유면적을 빼앗기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아파트는 가구당 차량 1대의 주차비를 무료로 하고 있다. 1대가 더 있을 경우에도 고작 월 15000원 정도만 내면 된다. 4평의 땅에 대한 부동산 가치로 따지면 턱도 없는 금액이다.

그렇다고 해서 차 없는 사람에겐 관리비를 깍아주는 것도 없다. 이렇게 차 없는 사람은 차 있는 사람들 때문에 훨씬 쾌적한 공간에서 살 권리를 희생당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인도에 접한 차선은 너무 넓다. 불법주차가 되어 있어도 버스 한 대가 더 지나갈 정도다. 그러니 불법주차를 할 수밖에...


그 뿐인가? 집을 나서면 거의 모든 이면도로에 양쪽으로 불법주차가 돼 있다. 나는 마산 산호동 삼성타운아파트에 사는데, 상공회의소에서 용마초교를 지나 산호시장을 거치는 모든 도로가 밤이고 낮이고를 불문하고 불법 주차차량으로 점령돼 있다.

이 땅도 마산시민의 공유면적인데, 차 있는 사람만 쓴다. 그런 걸 단속하라고 재산세도 내고 주민세도 내고 갑종근로소득세도 내지만, 마산시는 간선도로가 아니어서인지 1년 가야 단속 한번 하지 않는다. 직무유기다. 도로변에 가게를 가진 사람들은 점용료도 내지 않고 아예 전용주차장처럼 땅을 쓴다.

2차로 도로인데, 이런 불법 양쪽주차 때문에 우회전하려는 차들도 직진신호를 받을 때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차가 밀릴 땐 신호가 두세번씩 바뀌도록 기다려 겨우 우회전에 성공하는 경우도 많다. 택시요금의 시간-거리 병산제 때문에 밀리는 시간만큼 최소한 몇백원의 요금을 나는 더 부담해야 한다.

그러고 보면 참 이상한 일이다. 우리나라만큼 부동산에 대한 욕심이 많은 곳도 없는 듯 한데, 불법주차 차량들이 차지하고 있는 땅의 면적에 대해서만은 너무 관대한 곳이 또한 우리나라인 것 같다.

이상한 건 또 있다. 웬만한 다른 불법행위에 대해선 대개 신고포상제가 있는데, 불법주차는 그게 없다. 또 교통체증이 심하다는 이유로 차량통행을 줄이거나 제한하는 정책은 없고 줄기차게 도로를 새로 뚫거나 넓히기만 한다. 거기에 드는 천문학적인 돈도 모두 우리 호주머니에서 나간다.

뿐만 아니다. 이상하게도 우리나라의 도로는 인도와 접한 차로의 폭이 턱없이 넓다. 이차로 도로도 실제 폭은 차량 4대가 거뜬히 교행할 수 있는 너비다. 처음 도로를 닦을 때부터 불법 주차공간을 염두에 두고 만든 게 아니라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자동차가 불편토록 해야

일본 도교의 차도. 인도에 인접한 차선도 딱 차 한 대만 지나갈 수 있도록 좁다.


업무 또는 관광차 일본을 여러번 다녀온 적이 있다. 일본은 전혀 달랐다. 이차로이면 딱 차 2대만 교행할 수 있는 너비였다. 따라서 불법주차가 1대라도 있으면 그 도로는 마비되고 만다. 그래서 일본은 불법주차라는 게 아예 없었다.

10여년 전 유럽에 가봤을 때도 그랬다. 우리나라만큼 도심지의 도로가 넓은 곳이 없었다. 도로가 좁다 보니 시민들이 도심에 나올 땐 아예 차를 갖고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대중교통이 활성화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의심한다. 우리나라의 이런 이상한 도로정책이 자동차 재벌과 정치권력의 결탁에서 나온 것이라고. 차를 많이 팔아먹기 위해 엄청난 세금으로 계속 도로를 넓히고 불법 주차공간까지 용인해주고 있는 거라고.

나는 제안한다. 아니, 차 없는 시민의 권리로 요구한다. 쓸데없이 넓은 도로를 뚝 잘라 자전거 도로를 만들어달라. '자전거 도시'를 추진하고 있는 박완수 창원시장은 "자동차 타기 불편한 도로를 만들겠다"고 했다. 대통령이 이런 정책을 내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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