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언론

MBC '민영화' 저지 투쟁은 백전백패다

김훤주 2008. 3. 5.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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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화, 쓰면 쓸수록 불리한 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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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전을 앞두고 이런 얘기를 하기는 정말 싫지만, MBC '민영화' 저지 투쟁은 하나마나 백전백패입니다. 중요한 고지 하나를 빼앗긴 상태에서 하는 전투고, 헤게모니를 상대방에게 넘겨준 채 하는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에 맞서 이기려면 '민영화'가 아닌 '사유화' 저지 투쟁을 해야 합니다.(그래도 이길까 말까 합니다만) 저들은 실제로는 사유화를 추진하면서도 겉으로는 민영화라고 떠듭니다. 그래야 자기네들한테 유리한 여건이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알려진대로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의 신문 방송 정책은 일반 상품들과 마찬가지로 이른바 시장을 통한 무한경쟁을 바탕으로 삼고 있으며 여기에는 독과점 차단과 매체 공공성 제고와 여론 다양성 보장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습니다.

특정 개인 또는 사기업이 신문과 방송을 모두 갖도록 하는 신문 방송 겸영 허용이 그렇고 KBS 2TV와 MBC의 (민영화가 아닌) 사유화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것들은 (이명박 홍보지 노릇을 해온) 조중동에 대한 보은이라는 성격도 띠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국언론노동조합과 산하 MBC본부는 물론이고 대다수 신문 방송 본부.지부들에서도 이처럼 공공성과 다양성을 깔아뭉개는 권력에 맞서 한 판 붙지 않을 수 없다는 판단이 대세를 이뤄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실제 내용을 보면 명백한 사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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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MBC 홈페이지.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의 MBC에 대한 정책은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가 갖고 있는 MBC 주식 70%를 특정 개인 또는 사기업에 팔아넘기겠다는 것입니다. 방문진은 80년 이른바 언론 통폐합 당시 KBS로 넘어 갔던 MBC 주식을 1988년 12월 방문진법이 제정되면서 넘겨받았습니다.

(나머지 30%는 정수장학회 소유로 돼 있습니다. 정수장학회는 1962년 박정희 집권 시절 중앙정보부가 김지태 씨의 부일장학회를 빼앗아 이름만 바꾼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 대통령 박정희의 맏딸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이사장으로 있기도 했습니다.)

이런 우여곡절이 있기는 하지만 방문진 자체가 법률에 따라 만들어졌기에 공공기관으로 간주할 수 있으며 따라서 MBC도 거의 모두 광고수익으로 운영하지만 공영방송이라 할 수 있습니다.(SBS하고는 좀 많이 다르지 않습니까?)

아시다시피 민영화는 공공기관에서 하던 기업을 (소유 형태는 손대지 않고) 민간인이 운영하도록 넘기는 일을 이릅니다. 사유화는 공공의 소유로 돼 있던 것을 개인이나 사기업에게 소유권을 넘긴다는 뜻입니다.

방문진의 MBC 주식을 민간에 팔면, 그것이 민영화가 아닌 사유화임은 누가 봐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MBC를 사유하게 되는 개인 또는 기업은 아마도 재평가를 통해 엄청난 이득을 챙김과 동시에 새로운 매체 권력으로 곧장 떠오를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민영화라 우겨대고 있으며 그러다 보니 그에 반대하는 이들조차 별 생각없이 그냥 따라 하고 있습니다.

'민영화'를 고집하는 까닭은?

그들이 민영화라는 말을 고집하는 까닭을 잘 헤아려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민영화라는 말에서 좋은 느낌을 받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래서, '민영화' 저지 투쟁이라 하면 '좋은 쪽으로 바꾸겠다는데 왜 반대하지?', 은연 중에 생각하게 마련입니다. 이렇게 대중의 지지와 동감을 얻지 못하면 지게 마련입니다.

따라서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의 매체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민영화 대신 사유화라는 개념을 정확하게 쓰고 나아가 널리 퍼뜨려야 합니다. 사실과도 딱 맞아떨어질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사유화'에 대해서는 좋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사유화' 저지 투쟁을 벌인다고 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공공의 소유물을 개인(또는 사기업) 소유로 돌리면 잘못이지.', 이렇게 여기기 십상입니다.

'민영화' 저지 투쟁에서 패배한 사례, 한국중공업 노조

경남에는 이미 <'민영화' 저지 투쟁은 백전백패>임을 입증하는 보기가 있습니다. 지난 90년대 창원에 있던 공기업 한국중공업을 정부는 '민영화'하겠다고 했습니다. 해당 노조를 중심으로 지역에서 반대 운동을 벌였습니다만, 2000년 지는 쪽으로 판가름이 나고 말았습니다.

2001년, 사실상 국가 소유였던 한국중공업은 주식을 넘겨받은 재벌그룹의 이름을 따서 두산중공업으로 바뀌었습니다. 민영화라는 포장 아래 정부와 자본은 사유화를 완전하게 이뤘습니다. 노조 등은 두 눈을 뻔히 뜨고도 막지 못했습니다. 노조의 저지 투쟁은 나라 재산을 지킨다는 정당한 내용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지역민들에게 '제 밥그릇 챙기기' 이상으로 인식되지는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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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중공업의 신문광고


이를테면 '공권력', '분규'도 헤게모니 투쟁의 하나

이처럼 민영화냐 아니면 사유화냐 하는 낱말 하나가 커다란 구실을 하는 보기는 성격을 달리해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공권력'이나 '분규'를 들 수 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70년대 박정희 유신 시절에만 해도 긴급조치로 대학에 군대를 투입하면 신문이나 방송에서 "군대 병력 진주(進駐)" 따위로 표현했지 공권력이라는 말은 쓰지 않았습니다.

또 제 기억으로는, 일제 시대 이래 줄곧 '쟁의(爭議)'라는 낱말이 쓰이다가 80년대 전두환 시대 들어 '분규(紛糾)'라는 표현으로 죄다 바뀌어 버렸습니다.

군대(또는 경찰) 투입과 공권력 투입이 어떻게 다른지, 쟁의와 분규가 어떻게 다른 느낌을 주는지는 쉬 알 수 있습니다.

군대(경찰)라는 말은 권력의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표현일 뿐이지만 공권력은 추상적이면서 한편으로 공적인 권력이라는 뜻을 풍김으로써 일반 국민들은 맞설 수 없는(또는 맞서면 안 되는) 대상으로 다가옵니다.

또 쟁의는 누가 옳고 그른지를 두고 노동자와 사용자가 또는 소작인과 지주가 다툰다는 뜻인 반면, 분규는 마치 원래는 화합해야 할 두 집단이 서로 갈라져서 말썽을 일으키는 것처럼 보이도록 만듭니다.

기본에서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는 '언어결정론'을 전폭 지지하지는 않지만(그리고 사실은 잘 모르지만), 어떤 낱말을 쓰느냐에 따라 사람 생각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음은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실제로는 '사유화' 저지 투쟁을 하면서도, 상대방이 쳐 놓은 보이지 않는 덫에 걸려 '민영화'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민영화' 저지 투쟁을 벌이는 이상, 거기에는 백전백패 0% 승률밖에 있을 수 없다고 봐야 마땅합니다.

김훤주(전국언론노동조합 경남도민일보지부 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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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지음 | 산지니 펴냄
<절망 사회에서 길 찾기>는 변화하는 진보가 가야 할 길을 시시각각 모색하고, 그것을 현장에서 찾는다는 것을 모토로 삼은 무크지『현장』의 첫 번째 결과물이다. 두 꼭지의 좌담과 현장 활동가 6인의 글을 통해 노무현 정권 5년을 평가하고, 이명박 정부 5년의 진보운동을 전망해본다. 이데올로그들의 논평이 아닌 현장 노동자와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것을 초심으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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