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언론

숭례문 방화범을 옹호할 뜻은 없지만…

기록하는 사람 2008. 2. 19.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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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완의 지역에서 본 세상]보상 문제 외면하는 언론 관행
 
 2008년 02월 18일 (월) 09:32:00 경남도민일보 김주완 기자  kimgija@naver.com 
 
국보 1호 숭례문을 불태워버린 방화범을 옹호할 생각은 전혀 없다. 보상금이 터무니없이 적었다는 그의 주장이 얼마나 타당한 지도 나는 모른다.

다만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억울함을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해서였다”는 그의 말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실제로 기자들은 보상금 문제로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회적 약자들을 간단히 무시해왔고, 나 역시 그런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보상 받을 땅이라도 있는 사람은 좀 괜찮은 편 아니냐.’ ‘법대로 감정해 보상한다는데, 그보다 더 받으려는 건 이기적인 욕심 아니냐’는 게 기자들의 편리한 논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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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일보 2월15일자 12면.

소수자 희생 강요하는 재개발·재건축

법대로 기소하고, 법대로 판결할 수밖에 없는 검사나 판사의 입장에선 그럴 수 있다. 합법의 범위 안에서 공탁금을 걸고 그의 집을 강제 철거했던 건설회사도 아무 잘못은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억울함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이라고 판단할 근거 또한 없다. 이 세상에는 ‘합법’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적 약자에게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일들이 너무나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기자들은 이상하게도 보상 문제에 관한 한 개입하지 않는 게 관행처럼 돼 왔다.

가령 방화범 채모(70) 노인이 토지 보상에 대한 불만을 품게 된 재개발·재건축 문제만 해도 그렇다.

대개 재개발·재건축 사업에서 노인 가구와 저소득층은 일방적인 피해자가 되기 일쑤다. 합법적으로 산정된 보상금을 받았다 하더라도, 재개발이 진행되는 몇 년 동안 이주해있는 비용과 재입주 비용 등을 감안하면 차라리 낡은 주택이나마 그대로 갖고 있는 게 훨씬 낫기 때문이다. 설사 보상금으로 새 아파트의 재입주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별 소득이 없는 노인으로선 관리비도 부담하기 벅차다.

이 때문에 재개발·재건축 사업은 대개 그로 인해 이득을 보게 될 사람들이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여 추진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 소수인 노인 가구와 저소득층은 울며 겨자 먹기로 또 다른 외곽으로 쫓겨나게 된다. 실제로 재개발·재건축 아파트의 원주민 재입주 비율은 40~50%에 불과하다는 보도도 있다. (<경남도민일보> 2007년 8월 30일자, http://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229011 )

언론이 취재를 기피하는 이유

그럼에도 이들 소수자의 입장에서 취재해 보도하는 언론은 찾아보기 어렵다. 재개발·재건축을 둘러싼 마찰과 잡음, 비리도 끊이지 않고 있지만 기자들은 대개 외면한다. 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

우선 취재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똑똑한 사람들이 논리적으로 정리해 제공하는 주장을 앵무새처럼 전달하는 보도에 익숙한 기자들은 그런 복잡한 문제를 스스로 취재해 들어가는 데 익숙하지 않다. 멋모르고 취재를 시작한 기자들도 이해관계가 워낙 복잡하게 얽혀 있어 취재도 어렵고, 누구 말이 옳은지 판단도 어렵다. 결국 힘없고 못 배운 제보자나 민원인 보다 훨씬 똑똑한 공무원과 건설업자들에게 금방 설득당하고 만다.

그러다보니 괜히 복잡한 일에 말려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보도해봤자 득보다는 실이 많다는 이유에서다. 하다못해 아파트를 지으면 언론에 광고라도 오지만, 못 짓게 되면 그마저 없어진다는 이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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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도민일보 2007년 8월30일자 기사.


심지어 공해유발 공단 건설로 대대로 살아온 고향을 떠나야 할 시골마을 주민들의 오랜 반대투쟁도, 보상 요구가 나오는 순간 ‘이기주의’로 취급되고 만다. 환경 파괴를 내세워 결사반대하는 건 순수하지만, 돈 문제가 나오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수 년 동안 생업도 팽개치고 싸워온 주민들이 아무리 투쟁해도 막을 수 없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보상이라도 제대로 받겠다는 처지를 이해해주는 기자는 거의 없다.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지역신문보다 특히 서울지(소위 ‘중앙지’)가 더욱 심하다. 권력층의 동향이나 돈 되는 정보에 관심이 집중돼 있는 서울지들은 그들이 변방으로 생각하는 지역, 그 중에서도 작은 동네에서 일어나는 이런 일들은 아예 기삿거리로 취급조차 않는다.

같은 기자가 보기에도 역겹다

생존권 위기에 몰린 노동자와 농민들이 엄청난 비용을 들여 ‘상경투쟁’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지역에서 아무리 떠들어봐야 서울지의 지역판 한 귀퉁이에도 실리지 않는다. 서울에 가서도 점잖게 투쟁해선 소용없다. 죽창이 나오고 부상자가 생겨야 그나마 한 줄이라도 실릴 수 있다.

숭례문에 불을 지른 노인도 20여 년간 행복하게 살아온 집과 대지를 1억 원에 빼앗기고 쫓겨나는 게 정말 억울했을 것이다. 낡았지만 200여 ㎡의 대지와 건평 74㎡의 집에 그대로 살 수만 있다면, 자신이 세상을 하직할 때쯤에는 훨씬 불어난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2002년 그 돈으로는 인근에 작은 평수의 아파트 한 채도 마련할 수 없는 처지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회는 그의 호소를 철저히 묵살했고, 급기야 국보를 불태운 중죄인이 된 후에야 “오죽하면 이런 짓을 하겠는가”라며 자신의 주장을 알릴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국보에 불을 지른 행위는 결코 정당화할 수 없다. 하지만 엄호동이 <미디어스> 칼럼(숭례문 화재, 네티즌보다 못한 언론)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2005년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의 숭례문 개방을 칭송하기에만 바빴던 언론이 이번엔 방화범 노인에게만 거침없이 비난을 쏟아 붓는 행태는 같은 기자가 보기에도 역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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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완 지음 | 커뮤니케이션북스 펴냄
지역신문 기자의 고민과 삶을 담은 책. 20여 년간 지역신문기자로 살아온 저자가 지역신문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자부심을 갖고 기자생활을 하면서 겪은 일들을 풀어낸다. 이를 통해 서로 비슷한 고민을 가진 지역신문끼리 정보를 공유하는 장을 마련하고자 했다.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촌지, 살롱이 되어버린 기자실, 왜곡보도, 선거보도 등 대한민국 언론의 잘못된 취재관행을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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