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조센징 노동자'와 비정규직, 뭐가 다를까

김훤주 2008. 3. 3.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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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운동이 터진 기미년에, 조선 사람들이 일제 식민 치하에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지 않았을 개연성이 더 높다는 말씀은 이미 한 번 드렸습니다.('대한민국은 하루빨리 사라져야 한다') 그렇다면 그 때 사람들은, ‘조선’ 독립 만세라도 제대로 외쳤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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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문화원의 양산출신 독립운동가 달력(사진 출처 경남도민일보)

조선 독립 만세도 별로 안 외쳤다?

‘대한’ 독립 만세보다는 ‘조선’ 독립 만세를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이 불러댔을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는, ‘대한’이든 ‘조선’이든, 대부분 사람들이 ‘독립’이나 ‘만세’를 현장에서 그다지 입에 올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제가 살고 있는 경남에서 지역사를 공부하고 있는 박영주라는 선배가 있습니다. 이 분은 학교에도 또 기관에도 몸담고 있지 않지만, 자료와 증언은 우리 지역에서 어느 누구 못지않게 많이 확보하고 있는 줄 압니다.

함성 내지르며 억압기구 향해 돌진

박 선배 얘기가 그렇습니다. 선배는 경남에서 만세운동이 벌어진 현장을 다니며 채록이나 녹음을 했습니다. 당시 군중들은, 손으로 낫이나 괭이 같은 농기구를 움켜쥐고서, 입으로 “우~” 또는 “와~” 하는 소리를 내지르면서 헌병대 분견소나 면사무소 같은 데로 달려갔다고 제게 말해줬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따로 무슨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민중을 억압하던 기구가 일제 통치 기관이었고, 이들의 심각한 착취수탈로 당시 민중들 생활은 조선 왕조 말기보다 더 어려워져 있었기 때문입니다.(제가 알기로는 농지 경작권 박탈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삼일운동, 민족주의와 별무관련

저는 당시 사람들이 ‘대한’ 독립 만세를 덜 외쳤을 개연성이 더 높다면서, ‘대한민국’ 이데올로기에 빠지지 말자고 말씀드렸습니다. 아울러 당시 민중들은 ‘조선’ 독립 만세도 그리 많이 부르지 않았다더라 전하면서,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와도 거리를 두자 덧붙이고 싶습니다.

지금 제가 그런 책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책방에서 손쉽게 장만할 수 있는 역사책 가운데서도, 대한제국 패망 직후와 일제 시대 전반을 조금이라도 성실하게 기록한 책이라면 이와 관련된 내용이 종종 나옵니다.

항일무장투쟁에 대한 일본 군대경찰의 수사 기록에 자주 나오는 얘기입니다.
“조선을 패망시켰다고 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다. 먹고 살 방도가 없기 때문에 싸웠다. 조선 왕조나 너희들이나 똑같다.”
1926년 조선 마지막 임금 순종 인산날인 6월 10일 다시 만세운동이 터졌을 때도 같은 태도가 나옵니다.

민중은 이처럼 같은 겨레든 다른 민족이든 가리지 않고 자기를 착취수탈하면 반드시 그런 집단과 맞서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는 제대로 먹고 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옛날 조센징 노동자와 오늘날 비정규직이 얼마나 다른지?

그러니까, 착취와 수탈이 일제가 물러간 ‘지금’ ‘여기’에도 그대로 남아 있다면, 민중은 아직 독립을 이루지 못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적어도 민중의 관점에서 보면, 옛날 일제의 식민 지배 세상이나 지금의 재벌 위주 세상이나 사실 별로 다를 바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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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대선에서 비정규직 철폐 등을 요구하며 집회하는 장면(사진 출처 경남도민일보)


16~18시간 오래도록 노동을 하면서도 임금은 내지인(일본인) 노동자의 절반 정도밖에 못 받았던 조센징 노동자나, 지금 여기 대한민국에서 정규직보다 더 힘든 일을 더 많이 하면서도 임금은 그 60%밖에 못 받는 비정규직이 어디가 얼마나 다른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산업 자체가 죽는 바람에 어느 듯 할 일이 없어져 산업예비군(실업자)에 편입될 적지 않은 농민들, 아니면 나이가 많아 남은 일생을 농지에 붙박아 두고 살 수밖에 없는 이들이, 일제 때 2대8 낮은 소작료에 찌들려 죽어가던 소작농과 무엇이 다른지도 저는 알지 못합니다.

일제 시대 조선 민중들의 해방 정신을 기리려면,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대한민국이여 영원하라’ 따위 얼빠진 행사나 하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겨레가 다른 민족의 지배를 받은 데만 매달려, 겨레 내부의 착취수탈에서 고개를 돌려서도 안 됩니다. 나아가 우리 겨레끼리 잘 해보자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에 정신이 팔려도 안 됩니다.

바로,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누가 어떻게 얼마나 착취 수탈을 하는지 주체를 뚜렷이 밝히면서 확실하게 맞서야 합니다.

김훤주(전국언론노동조합 경남도민일보지부 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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