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시민 노무현' 홈페이지 유감(遺憾)

기록하는 사람 2008. 3. 1.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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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5일 귀향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고향사람들의 환영행사에서 인사말을 무려 한 시간 넘게 했다고 한다. 현장에 다녀온 기자들에 의하면 그날따라 날은 춥고 간간이 비까지 오는 가운데 연설 내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 여간 고역이 아니었단다.

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이던 2003년 1월 말 부산에서 열렸던 토론회를 취재했던 적이 있다. 그 때도 당선자의 연설이 아주 길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고 보니 5년 전 대통령 당선 직후나, 5년 후 대통령 퇴임 직후 등 시작과 끝을 모두 긴 연설로 장식한 셈이다.

이렇듯 노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동안에도 '말이 많다' 또는 '연설이 너무 길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하긴 정치는 '말'로 하는 일이고, 정치인은 '말'로 먹고 사는 직업일지도 모른다. (나도 2003~2004년 노동조합 위원장을 하면서 참 '말'을 많이 했고, 노조 행사 때마다 위원장의 인사말이 너무 길다는 지적도 받았다.)

어쨌든 정치인 노무현과 대통령 노무현은 그동안 참 많은 말을 했다. 퇴임과 함께 개설된 '노무현 공식 홈페이지(http://www.knowhow.or.kr/)'에 올라 있는 '글'들도, 사실은 그동안 노무현 대통령이 각종 특강이나 연설, 인터뷰에서 한 '말'을 글로 옮겨놓은 것이다.

나는 얼마 전 '귀향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할 일(http://100in.tistory.com/25)'이라는 글에서 이제는 '진솔한 글쓰기'를 해보실 것을 권한 바 있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 홈페이지에 대한 기대가 적지 않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홈페이지 팝업창을 통해 "오늘 문을 여는 이곳이 만남과 소통, 공감의 장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홈페이지를 둘러본 결과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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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공식 홈페이지 메인화면 캡처

우선 디자인과 구조가 마치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후보의 선거용 홈페이지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첫 페이지에 커다랗게 뜨는 얼굴 사진과 '걸어온 길', '일정과 소식', '말과 글', '회원게시판', '자료실' 등의 메뉴도 그렇거니와 올라 있는 글이나 자료도 참여정부의 업적을 자화자찬하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물론 '말과 글'에 올라있는 그의 특별강연 내용을 정리한 것들은 차분히 읽어볼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 그동안 언론을 통해 단편적으로, 또는 왜곡된 그의 말들만 접해온 사람들로선 이런 글을 통해 노무현의 가치와 이념은 물론 그동안 논란이 많았는 각종 정책의 추진배경들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시간을 갖고 간간이 글을 골라 읽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말과 글'에 지금까지 올라 있는 글들로 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직접 인터넷 앞에 앉아 글을 올리는 용도는 아닌 듯 하다. '자료실' 역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직접 쓴 글이 아니라 대통령 재직시절 홍보라인에서 만든 각종 홍보용 책자가 대부분이다.

유일하게 노 전 대통령이 누리꾼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메뉴는 '회원게시판'인듯 하다. 그러나 말 그대로 이 게시판은 '회원'만이 글을 쓸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다. 회원 가입을 하지 않은 사람은 글을 쓸 수 없음은 물론 댓글도 남길 수 없다.

회원 만으로 글쓰기를 제한하면 결국 '노무현 지지자들만의 놀이터'가 되기 십상이다.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만 둘러싸여 운영하는 홈페이지라면 소통의 의미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이미 1만 개가 넘은 회원게시판의 글들은 지지자들의 찬사만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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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홈페이지 팝업창.

따라서 나는 이 홈페이지에 블로그 기능을 붙여넣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시민 노무현의 글이 홈페이지를 찾는 지지자들 뿐 아니라, 메타블로그나 포털 등을 통해 '비지지자'들에게도 노출되어야 하고, 그들의 반응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자신의 글에 걸리는 트랙백을 통해 같은 주제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글도 읽어보고 의견도 남겨주면 좋겠다. 그래야 시민 노무현이 '지지자'라는 우물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말을 많이 하기도 했지만, 말을 참 잘하기도 한다. 그래서 '노사모' 또는 '노빠'라는 적극적인 지지자그룹을 만들어내기도 했고, 동시에 극단적인 반대세력도 존재한다.

'말'이라는 건 정치에 유용한 수단이기도 하지만, 한 번 뱉어내면 주워담을 수 없고, 분위기와 말투, 표정, 맥락을 무시한 왜곡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위험한 수단이기도 하다.

하지만 글쓰기는 기본적으로 성찰을 바탕으로 할 뿐 아니라, 써놓고 퇴고하는 과정에서 수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말보다 훨씬 덜 위험하고 진지한 수단이다.

홍보비서라인에서 쓴 '참여정부 국정운영백서'보다 이제 시민 노무현의 진솔하고도 자기성찰이 담긴 글을 보고 싶다.

그는 귀향하는 KTX 안에서 기자들에게 "지금 홈페이지는 옛날 자료만 잔뜩 있고 서로 얘기를 나눌만한 광장이 충분치 않은데 다듬어서 홈페이지를 통해 사람들 얘기를 듣고, 하고 싶은 얘기를 서로 하고 싶습니다"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블로거 노무현의 글을 올블로그와 다음 블로거뉴스에서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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