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대한민국은 하루빨리 사라져야 한다

김훤주 2008. 3. 1.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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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7년 3.1절을 맞아 썼던 글을 한 번 옮겨 와 봅니다. <‘대한민국’은 하루빨리 사라져야 한다>는 제목을 달고 있습니다. 오늘 89주년 3.1절 기념식에서도 ‘대한독립만세’가 외쳐졌습니다. 그래서 지난해 문제의식이 올해도 유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유관순이 이끌었다는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까지도 제 날짜를 잃어버리고 2월 29일로 앞당겨 재연됐더군요. 이것은 지역의 관점에서 한 번 따져볼만한 소지를 안고 있습니다. 서울에 대한 지역 종속의 극단적 표현이라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1. 100년 전 의병들도 ‘대한 자주독립’을 소원했을까요?


2월 28일치 우리 신문 <경남도민일보> 7면 머리기사는 제목이 “나의 소원은 ‘대한 자주독립’”입니다. 이어지는 내용은 1906~10년 지리산 일대에서 일본군에 맞서서 무장투쟁을 벌인 70여 명을 찾아냈다고 일러주고 있습니다.


1910년 이전이면, 명목뿐이기는 하지만 대한제국이라는 나라가 있었던 시절입니다. 저는 이 제목을 보면서 과연 그 때 사람들이 ‘대한’의 자주독립을 소원으로 삼았을까 생각을 해 봤습니다. 또 제목이 말하는 ‘자주독립’의 내용이 무엇일지도 함께 생각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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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항일독립투쟁사연구소 정재상 소장(오른쪽)이 2007년 2월 27일 진주보훈지청에 의병 공적 기록을 내는 장면(출처 : 경남도민일보 자료사진)

저는 이들이 일본군과 맞서 싸운 사실은 인정될지언정 목적이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대한’의 자주독립이라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기사에는 이들의 무장투쟁 목적이 무엇인지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저는 이들을 정치 측면에서 규정한다면 근왕(勤王:임금이나 왕실에 충성을 다함)이 목적인 민병이었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봅니다. 당시 상황에 비춰본다면, 무너지는 왕실과 왕국을 지탱하고 나아가 유지․강화하려는 왕당파일 개연성이 더 높지, 공화정을 바탕으로 삼는 ‘민(民)국’을 지향하는 집단이었을 개연성은 아주 낮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까닭이 일본군과 맞서 싸웠던 이들의 공적을 깎아내리는 데 있지는 않습니다. 왕정복고를 지향했든 새로운 해방세상을 위했든, 아니면 경제 약탈 저지를 위했든 침략자 일본을 상대로 무장투쟁을 벌인 사실은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마땅합니다. 1905년 전후 상황을 어림짐작해 보면 폭력이든 비폭력이든 반일저항은 모두 선(善)이고 의(義)였습니다.


2. 1919년 유관순도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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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경남도민일보

또 당시 왕국 이름이 조선이 아니라 대한제국이었음은 사실이지만, 그렇다 해도 이들이 ‘대한’을 머리나 가슴에 새기고 무장투쟁을 벌였을 개연성은 적다고 저는 봅니다. 1919년 3월 1일 나온 선언서 첫머리가 어떻게 시작하는지를 생각해 보면 바로 답이 나옵니다. ‘조선’입니다.


기미독립선언서는 “吾等은 玆에 我 朝鮮의 獨立國임과 朝鮮人의 自主民임을 宣言하노라.”로 시작됩니다. 우리말로 옮기면 “우리는 이에 우리 조선이 독립국이고 조선 사람이 자주민임을 선언한다.”가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조선’이라는 낱말을 두 번 볼 수 있는 반면 ‘대한’은 눈을 씻고 봐도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착각하는 것처럼, 일제 이전과 일제시대는 물론 8․15 해방 이후에도 많은 이들이 ‘대한’이라 하지 않았음은 분명합니다. 대신 ‘조선’이라 일렀습니다. 그러므로 그 때를 재연하거나 재현한다면서 ‘대한’이라는 말을 함부로 쓸 일은 못됩니다. 그것은 대부분 무지한 소치로 의도적인 왜곡에 놀아나는 잘못일 뿐입니다.


지난 3월 1일 창원과 진주에서 치러졌다는 ‘3․1절 태극기 몹-으랏차차 코리아’도 여기에서 자유롭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88년 전 선조들이 선언한 내용이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과, 선조들이 외쳤다는 만세의 주체 또한 ‘조선독립’임을, 행사 주체가 뚜렷하게 깨닫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3. 잘못된 ‘대한 독립 만세’에 덧씌워져 있는 이데올로기는 무엇일까요?


우리 신문의 3월 2일치 기사를 보면 이들은 행사에서 ‘대한 독립 만세’와 ‘대한민국 만세’를 함께 외쳤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무심결에 88년 전인 1919년에도 ‘대한 독립 만세’가 외쳐졌고 1945년 해방이 됐을 때도 마찬가지로 ‘대한 독립 만세’가 외쳐졌다고 여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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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초등학생들의 만세 재연 사진. 이들에게 대한독립만세의 대한은 곧바로 대한민국으로 이어질 것입니다.(사진 출처 경남도민일보)

그러면서 사람들은 똑같이 무심결에 ‘만세’를 외쳤을 때 들어 있는 ‘대한’을 지금 있는 ‘대한민국’과 동일시하는 잘못을 저지릅니다. 마침내 1906년 지리산에서 일본군에 맞섰던 민병대도 ‘대한의 자주 독립’을 소원했다고 기억됩니다. 그러니 1919년과 1945년 국면에서도 말할 나위 없이 당연히 독립 만세의 주체는 ‘대한’이 됩니다.


우리들 의식 속에서 이것은 지금 있는 ‘대한민국’의 영원 존속 또는 불변으로 나타납니다. 물론 대한민국의 뿌리도 훨씬 길어지고 깊어집니다. 적어도 우리 머리 속에서는, 대한제국 시절에까지 대한민국의 뿌리가 가 닿는 것입니다.


아울러 대한이 아닌 다른 ‘것들’을 부정하게 하는 효과도 냅니다. 이는 ‘대한민국’의 지배집단과 그 충성집단이 노리는 바이기도 합니다. 지난 오랜 세월 그렇게 해 왔기 때문에 대한민국 구성원 대다수가 그리 여기는 경향 또한 현실입니다.


항일투쟁 단체 가운데 하나였을 뿐인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우리 헌법에 대한민국의 유일한 법통으로 올라 있다는 사실은 이 같은 ‘대한 독립 만세’의 원인인 동시에 결과입니다. 이를 확인하려고 이북에 있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덭어 보는 수고까지는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당시 대중으로부터 폭넓게 지지를 받았다는, 그러나 미군정 탄압으로 깨지고 만 1945년의 ‘조선’건국준비위원회와 ‘조선’인민공화국이 우리들 역사 기억에서 소리조차 없이 지워진 데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4.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빨리 사라질수록 좋은 국호입니다


‘대한민국’의 수명은 짧을 것입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운명도 마찬가지입니다. 둘은 대립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언제든 이 대립이 사라지면 그 실체와 함께 이름 또한 없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겨레에게 통일이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에게 잡아먹히는 식으로 오지 않고 평화적으로 달려온다면, 어느 한 쪽 나라의 이름을 새로 만드는 나라의 이름으로 삼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뛰어난-적어도 제가 보기에는- 학자 조동일은 <우리 학문의 길> 273쪽에서 “통일 후의 국호를 ‘우리나라’라고 하자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조동일은 “누구나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좋은 이름이고, 이름 때문에 벌어질 논란을 모두 배제할 수 있다. ‘朝鮮’․‘韓’․‘高麗’에 상응하는 역사성이 없는 것이 오히려 장점이어서, 그 셋을 하나로 포괄할 수 있다.”고 이어 적었습니다. 저는 ‘역사에서 대한민국의 퇴장’이 장차 오래지 않아 일어날 일이고 또 그래야 한다는 방증으로 이 글을 여기에 옮겨놓습니다.


분단은 일제 식민지배의 결과로 우리에게 남아 있는 커다란 상처입니다. 이 상처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프로메테우스의 간처럼 날마다 갖은 독수리들에게 새로 쪼여먹혀 절대 아물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른 상처를 덧내기까지 합니다. 그러니까 분단 극복(≒통일)은 우리 겨레 해방의 완성입니다.


분단을 딛고 일어서 해방이 완성되면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국호는 바로 박물관 수장고 신세가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삼일절과 광복절을 기념하면서 새겨야 할 것은 바로 어떻게 해야 식민 잔재인 분단을 극복할 수 있겠는지입니다. 이는 달리 말씀드리면,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빨리 문 닫게 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겨레 구성원 대다수에게 희망은 전쟁이나 폭력이 없이 평화로운 과정을 거쳐 오는 통일입니다. 평등하고 자유로우며 사람과 생태가 한가지로 값어치를 인정받는 새 세상입니다. 자본의 값어치는 인간과 생태에 종속되고, 무한 착취가 사라진 사회입니다.


2007년 3월 3일 18시 6분

김훤주(전국언론노동조합 경남도민일보지부 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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