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생각-김주완

'건국 60년' 정면비판한 함세웅 신부

기록하는 사람 2008. 8. 15.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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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나라가 일제 강점에서 해방된 제63주년 광복절이며, 올해는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지 9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아침에 느즈막히 눈을 떴더니 동사무소에서 방송을 하고 있더군요. "오늘은 대한민국 건국 6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아직까지 태극기를 달지 않은 가정에서는 모두 태극기를 달아주시기 바랍니다."

이윽고 아파트 관리사무실에서도 세대별 스피커를 통해 똑 같은 방송을 하더군요. 짜증이 났습니다.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는 '건국 60주년'을 동사무소에서 버젓이 방송하고 있다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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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일 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발행하는 소식지 [희망세상] 8월호가 배달돼왔습니다. 이사장인 함세웅 신부가 책머리에 '8.15 광복절 단상 - 대한민국 90년을 기리며(1919~2008)'이라는 글을 쓰셨더군요.

함 신부는 이 글에서 8월 15일의 의미를 이렇게 썼습니다.

"8월 15일은 광복절 또는 해방절이라고 합니다. 또한 일본이 패전하고 항복한 날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리고 미국과 러시아, 유럽 등 이른바 제2차 세계대전의 주전국들은 이날을 승전일(勝戰日)이라 부르며 개선가를 부릅니다. (...)
일본은 이 날을 종전일(終戰日)이라고 부릅니다. 패전과 항복이라는 굴욕적 용어를 꼭 피하고 싶은 것입니다. 결국 종전이란 일본이 사실을 기묘하게 왜곡한 표현입니다. 같은 사건의 같은 날이 이렇게 서로 다르게 표현되는 것을 고찰하면 참으로 재미있고 그 표현에 담겨진 숨은 뜻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함 신부는 올해가 왜 대한민국 건국 60주년이 아니라 90주년인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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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9월 1일 관보 제1호는 대한민국 30년 9월 1일이라 명시했습니다. 당시 새로 출범한 정부는 1919년 3월 1일 기미독립선언에 근거하여 그해 4월 11일에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근거로 1948년을 건국 30년으로 선언했습니다. 매우 바람직한 역사인식입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는 바로 1919년 3.1독립정신을 기초로 설립된 상해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있음을 만천하에 장엄하게 선언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앞에서 언급한 "같은 사건의 같은 날을 이렇게 다르게 표현되는" 또다른 사례로 현 정부의 건국 60주년 행사를 정면으로 비판합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2008년, 새 정권은 느닷없이 올해를 건국 60주년이라 설정하여 행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입니다. 이른바 수구적 인사들과 조중동이 어이없게 우상화하는 이승만 자신도 1948년을 건국 30년이라 고백했으니 그들이 진정 이승만을 확인하고 그를 우상화하고 싶다면 그가 외쳤던 1919년을 건국의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역사와 민족 앞에 정직한 선택이며 고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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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패전일' '항복일'을 '종전일'로 왜곡해 부르듯이, 이명박 정부는 '광복절'을 '건국절'로 고쳐부르고 싶어 합니다. 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요? 함세웅 신부는 이명박 정권의 이런 시도가 일본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이야기하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자, 이처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에 따라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 장관이 임명한 기념사업회 이사장이 이렇게 현 정부의 역사관을 정면으로 비판했습니다.

현 정부에 밉보여 무작스럽게 해임되고 체포까지 당한 정연주 KBS사장이 떠오릅니다. KBS사장은 대통령에게 '임명권'은 있으되 '임면권'이 명시돼 있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임명권이 있으면 면직권도 있다며 밀어부쳐 해임시키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은 행자부장관에게 임명권도 있고 면직권도 있는 걸로 법에 명시돼 있습니다. 정부가 임면권을 갖고 있는 기념사업회 이사장이 정부의 역사관을 정면으로 비판했으니 과연 얼마나 자리를 지킬 수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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