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새와 습지 한눈에

가을을 맘껏 들이키고

 

삼랑진 탁 트인 풍광

'여백의 한가로움' 가득

수리시설·적산가옥 등

역사 흔적 고스란히

 

삼랑진생태문화공원

삼랑진은 세() 물결()이 만나는 나루(). 서쪽에서 낙동강이 흘러오고 북쪽에서 밀양강이 내려오며 남쪽에서 남해 바다가 밀물 때 올라온다. 삼랑진생태문화공원은 밀양강과 낙동강이 합류하는 지점 바로 아래 강변에 있다. 물과 물이 부딪히면 흐름이 느려진다. 그러면서 여태 싣고 왔던 토양 성분과 유기물질을 내려놓게 된다. 공원은 이것들이 오랜 세월 동안 쌓이면서 만들어진 강변 둔치에 들어서 있다.

탐방의 시작점은 신대구부산고속도로의 낙동대교 다릿발이 우람하게 내리뻗은 자리다. 주차장과 운동장, 잔디광장을 비롯해 여러 편의시설이 마련돼 있다. 휴일 한나절에 찾아오면 텐트나 파라솔을 쳐놓고 아이들과 함께 느긋하게 한때를 보내는 젊은 부부들이 많은 곳이다. 이들은 장만해 온 음식을 먹고 간단한 마실거리를 즐긴다. 삶의 고단함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일상의 소소한 따뜻함이 환히 빛나는 자리다.

지금은 여기에 가을이 머물고 있다. 공원 둔치는 가로 길이가 4남짓 된다. 군데군데 물웅덩이가 생겨나 있고 그 둘레를 억새가 무리지어 자라나 있다. 억새꽃은 햇빛을 받으면 하얗게 빛나고 그렇지 않아도 물기를 머금어 단정하고 청초하다. 그런 사이를 자전거가 달리고 사람들이 걷는다.

삼랑진생태문화공원 .

안으로 들면 억새에 파묻히고 바깥으로 나오면 넘실대는 강물이 눈앞에 가득하다. 마침 밀물 때인지 하류로 흘러가는 기색은 없고 강폭 너머까지 출렁대기만 한다. 넓기는 바다 같고 잔잔하기는 호수 같다. 살결을 스치는 바람은 습기 없이 뽀송뽀송하다. 둔치에서 제방으로 오르면 전체 모습을 즐길 수 있다. 억새와 습지 풍경에 낙동강 물결까지 한눈에 담긴다. 전체를 다 도는 데에는 느린 걸음으로도 2시간이면 충분하다. 자전거로는 1시간은커녕 30분만 해도 충분하다. 낙동대교 다릿발 그늘이나 제방 가로수 아래에서 그냥 쉬기만 해도 된다. 공원의 공간은 대체로 넉넉한 편이다. 비어 있는 여백의 한가로움도 나쁘지는 않다. 그래도 적절하게 삼랑진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볼거리를 군데군데 마련해 두면 더욱 좋을 것 같다. 삼랑진읍 송지리 493.

 

삼랑진 후조창 유지 비석군

삼랑진은 지형 특성 때문에 오랜 옛날부터 영남 내륙의 교통 요지였다. 이런 역사를 알려주는 유적이 삼랑진생태문화공원 가까이에 있다. 삼랑진 후조창 유지 비석군인데 밀양강과 낙동강이 합류하는 야트막한 산기슭 오목한 데 자리 잡고 있다.

조선 조정은 1765년 일대에 삼랑창(후조창)을 설치하고 백성들한테서 조세를 걷었다. 쌀과 베를 가득 실은 조운선은 남해로 빠져나가 서해를 거쳐 서울까지 갖다 바쳤다. 여기 비석들은 당대에 선정을 베풀고 배꾼들의 고달픔을 달래준 벼슬아치들을 기리는 내용이다. 길 따라 조금 올라가면 오우정·압구정 같은 정자들과 500년 전 민씨 형제들의 우애를 기리는 빗돌이 있다. 정자 마루에 앉거나 서면 낙동강의 넉넉한 풍경과 그 위를 가로지르는 다섯 개 다리를 눈에 담을 수 있다. 삼랑진읍 삼랑리 612.

오른쪽에 작원잔도 흔적이 보인다.
복원관 작원관. 원래 자리는 아니다.

작원관과 작원잔도

삼랑진 일대는 수운뿐 아니라 육로 교통의 요지이기도 했다. 새로 만든 작원관과 그 아래 작원잔도가 증명하고 있다. 작원잔도는 옛날 낙동강 변 가파른 벼랑에 석재를 덧대어 만든 길인데 사람 둘이 지나치기에도 좁을 정도였고 작원관은 이 길을 지키는 관문이었다. 작원관에서 작원잔도로 가려면 하류 쪽으로 계속 가다가 경부선 철도 굴다리를 지나 왼쪽으로 접어들면 된다. 2정도 가면 철도 터널이 나오는데 그 아래 벼랑에 작원잔도 흔적이 남아 있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걷는 길이다. 삼랑진읍 검세리 110.

삼랑진역 급수탑.

삼랑진역 급수탑

삼랑진 교통 요충의 역사는 근대에 접어들면서 삼랑진역으로 옮겨왔다. 삼랑진역은 경부선에서 경남 내륙으로 들어가는 경전선이 갈라지는 기점으로 1970년대까지만 해도 어깨가 부딪힐 정도로 붐비는 역이었다.

삼랑진역 급수탑은 1923년에 만들어졌는데 달리는 기관차에 물을 공급하는 중요 시설이었다. 지금 기차는 전기로 달리지만 그때는 장작을 때서 물을 끓이고 거기서 나오는 증기로 기차를 움직였다. 둥근 기둥 모양에 지붕을 갖춘 급수탑은 100년이 다 됐는데도 전혀 흐트러지지 않고 단정하다. 근대 철도 교통의 한 축을 담당했던 이 급수탑은 가을이 되면 몸통을 둘러싼 담쟁이덩굴이 단풍으로 물든다. 삼랑진읍 송지리 155-10.

삼랑진 적산가옥 거리.

삼랑진 적산가옥 거리

삼랑진역 맞은편 원불교 삼랑진교당이 있는 골목 일대에 들어서 있다. 삼랑진역이 이렇게 번창했으니 일하는 사람들도 당연히 많았다. 들어서면서 보는 오른쪽 건물들은 당시 노동자들이 묵는 기숙사였다는데 그 위에는 공동 우물이 흔적으로 남아 있다.

왼쪽과 공동 우물 위쪽에는 역장이나 경찰 파출소장 등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살았던 건물들이 있다. 적산가옥은 벽면을 흙이나 돌이 아니라 나무로 마감한 것과 축대를 직각이 아니라 70도 정도 기울어지게 쌓은 것이 특징이다. 우리나라 근대 역사의 아픈 한때를 보여주는 현장이다. 삼랑진읍 송지313.

수산제 돌수문.

수산제역사공원

밀양 수산제는 김제 벽골제, 제천 의림지와 함께 삼한시대 수리시설이다. 제방은 모두 사라지고 지금은 수문만 남았는데 자연 암반을 높이 2m 남짓에 길이 20m가량으로 뚫은 것이다. 밀양이 오랜 옛날부터 곡창지대였음을 일러주는 유적으로 내려가서 볼 수 있도록 길도 만들어 놓았다. 기계나 화약이 없던 시절에 어떻게 뚫었는지 신기하다.

또 어린아이들이 놀기 좋게 꾸며져 있다. 연못과 물풀·수풀은 기본이고 놀이터도 있다. 옛날 농촌과 농사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마당과 모형도 여기저기 마련돼 있다. 적으면 5~6, 많으면 20명이 넘게 들어갈 수 있는 대청·평상과 정자가 많은 것이 특징적이다.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단체로 와도 괜찮을 정도인데 가족 단위 나들이라면 더욱 넉넉하겠다. 하남읍 양동리 671.

 

경남도민일보 20201023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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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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