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본 곳

슬몃 젖어든 자연-고성

김훤주 2021. 10. 23.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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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생물 공존하는 들판 위 보물창고

국가중요농업유산 '둠벙' 많아

물고기·곤충·물풀 어우러져

자연존중 배우는 수리시설

생태공원·고분군 가족 나들이

해안가 '해지개길'걷기 좋아

 

둠벙

고성에는 둠벙이 많다. 해안과 골짜기를 따라 펼쳐지는 농촌 들판 곳곳에 흩어져 있다. 둠벙은 논에 물을 대려고 만든 작은 웅덩이를 말한다. 옛날에는 지금보다 훨씬 많았다. 물이 땅 밑에서 솟아나거나 지표를 흐르다가 고이는 곳에 만들어져 있다.

둠벙은 논이 발행해 준 생물다양성 보증수표다. 사람들은 필요에 따라 논에 물을 채우거나 뺀다. 환경이 바뀌는 데 따라 거기 사는 생물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논이 살기 어려우면 둠벙으로 옮겨가고 논이 살 만해지면 다시 논으로 들어간다. 둠벙은 인간이 이룩한 습지의 가장 현명한 활용 가운데 하나다.

둠벙은 추억의 보물창고이기도 하다. 1960~80년대 농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이들에게 그렇다. 먼저 그 둘레에서 자라는 물풀과 들꽃으로 기억된다. 기억은 개구리로도 이어지고 논고둥과 메뚜기로도 이어진다. 흐릿한 둠벙 물속에는 미꾸라지를 비롯한 물고기도 많다.

고성 둠벙은 201911'고성군 해안지역 둠벙관개시스템'으로 '국가중요농업유산 제14'로 선정됐다. 우리가 오랫동안 지역 환경과 사회·풍습에 적응하면서 형성해 온 가치로운 농업자원으로 인정된 것이다.

둠벙은 농사에도 도움이 되고 생태적으로도 이로우며 경관 차원에서도 빼어나다. 벽면이 예쁘고 둘레가 아름답다. 벽면은 흙을 바르기도 하고 돌로 담장처럼 쌓아올리기도 했다. 모두 주변에서 손쉽게 구해지는 재료들이다. 논두렁으로 이어지는 둘레에는 안팎으로 갖가지 물풀들이 자라나 있다.

둠벙(삼봉리 315-7).

가만히 앉아 들여다보면 풀벌레들이 소리를 내고 여러 가지 개구리들이 폴짝댄다. 둠벙 물결이 잔잔해지면 구름과 해를 담은 하늘이 얼굴을 적신다. 해오라기·백로·왜가리가 조용히 날갯짓을 하면서 보이는 너울너울 몸짓도 한 번씩 물에 어린다.

둠벙만 보고 찾아가면 아무래도 좀 밋밋하다. 함께 즐길거리가 하나 정도 있으면 금상첨화다.

역사나 문화가 있는 마을이 있어도 좋고 고분군이나 고인돌 같은 문화재 또는 갈대밭을 끼고 있어도 좋다. 그 들판이 시원하게 바람 불어오는 너른 자리면 더 멋지다.

거류면 화당리 408-2 둠벙은 포구가 그럴듯한 화당마을을 끼고 있는데 이순신 장군의 적진포해전 승전지여서 그 유적을 둘러볼 수 있다. 거류면 거산리 320·200-1·195-1 둠벙은 바로 옆 거산리지석묘가 그럴듯한 데다 갈대밭 산책도 겸할 수 있어 좋다. 동해면 양촌리 174-2·내산리 631 둠벙은 근처 내산리고분군을 고즈넉한 느낌으로 거닐 수 있다. 삼산면 삼봉리 315-7·316-2 둠벙은 둘러싼 들판 자체가 멋지고 시원하며 바로 아래 솔섬·목섬도 한나절 노닐기 좋은 자리다.

거산리지석묘.

거산리지석묘

고인돌은 보통 납작하게 덮개돌만 있거나 아니면 납작한 받침돌 위에 놓여 있지만 거산리지석묘는 이와 달리 높다란 축대 위에 있고 오르내릴 수 있는 돌계단도 마련돼 있다. 논 한가운데 있는데 벽면은 돌로 쌓아 둥그렇게 둘렀다. 위에 올라가면 평평하고 널따란 덮개돌이 20도 정도 기울어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적당한 상승감을 느낄 수 있는데 그래서 사람들은 2000년 전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하늘에 제사를 올리던 제단이리라 짐작한다. 거류면 거산리 326-7.

바로 옆에는 마동호갯벌이 있다. 경남에서 가장 너른 갈대밭이다. 지석묘 있는 데서 논두렁을 타고 들어가도 되고 간사지교를 건너 산기슭을 따라 들어가도 된다. 이리저리 거닐면서 안쪽으로 깊숙하게 들어가 조그만 콘크리트 다리 세월교를 건너면 한 바퀴 돌 수도 있다.

내산리고분군.

내산리고분군

당항만 들머리에 있다. 임진왜란 때 왜적이 맞은편까지 뚫려 있는 바다인 줄 잘못 알고 들어갔다가 이순신 장군한테 참패했다(당항포해전). 고성 본토로 들어가는 해상관문 위치다. 그래서 사람들은 고성의 옛적 가야 세력 고자국을 지키는 수문장들이 묻혀 있다고 본다. 봉토 높이가 달리 높직하지 않아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아래로는 논밭과 바로 이어져 있으며 위로 올라가도 가파르지 않아 마음을 늦추고 천천히 거닐기 좋은 자리다. 동해면 내산리 산191.

절반은 해안을 따라 평탄하게 걸어가고 나머지 절반은 바다 위를 거니는 길이다. 덱로드를 걸으면서 아래로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으니 어린아이들이 특히 즐거워한다. 베이힐스펜션 가까운 바닷가(고성읍 신월리 546-6)에서 고성남산공원오토캠핑장 앞 물양장(고성읍 공룡로 3166)까지인데 길이가 1km 정도로 둘 또는 셋이서 두런두런 얘기 나누며 걷기에 알맞다.

함께 사진을 찍으면서 추억을 쌓을 수 있는 데도 적지 않고 아래로 내려가 모래를 만질 수 있는 곳도 있다. 걷다가 좀 아쉬운 느낌이 들면 육지와 이어진 똥뫼산(고성읍 신월리 산 10-7)까지 300m를 더 걸어가도 된다. 계단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바다를 눈에 담을 수 있는데 탁 트인 느낌이 괜찮다.

수남유수지생태공원..

수남유수지생태공원

주위에 갈대 억새가 우거져 있고 한가운데는 물이 고여 있다. 얼핏 보면 연못 같지만 원래는 바다와 이어지는 물줄기 끝자락이었다. 안으로 들면 조용하고 아늑해서 편하게 쉬었다 가는 자리가 되어 준다. 그래서인지 사람뿐 아니라 새들도 들러 지친 날개를 쉬곤 하는데 이것이 또 사람들에게 정취 어린 볼거리가 되고 있다. 갈대와 개흙과 바닷물이 어우러지면서 빚어내는 풍경 또한 나쁘지 않다. 고성읍 수남리 511-39.

고성생태학습관.

고성생태학습관

고성군상하수도사업소 바로 옆에 있다. 하수처리장에서 나오는 방류수를 활용해 만든 생태학습시설이다. 사람이 생각만 바꾸면 생활하수에서도 자연친화형 공간이 나올 수 있음을 일러준다. 작지만 독특하고 알차다는 평을 듣는데 닥터피시 체험관, 1급수 담수생물 수족관, 철갑상어 터널 수족관 등이 있다. 터널형으로 마련된 수조에서는 가물치·잉어 같은 대형 민물 물고기를 볼 수 있다. 꽤 너른 연꽃밭까지 조성해 놓았는데 제법 소문이 나서 젊은 부모들과 어린아이들 발길이 붐빈다. 연중무휴. 055-670-4407. 고성읍 송학리 134-1.

해지개길도 있습니다.

 

※ 경남도민일보 2020년 8월 28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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